brunch

매거진 순애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평일 Aug 21. 2023

순애(殉愛/純愛)

나와 하연

79.

  -하연아, 나 할 말 있어.

  -무슨 말을 하려고 이렇게 진지하게 와.

  -음···

  -뭔데.

  -갑작스럽고, 진짜 이상하게 들릴 거 아는데···

  -그냥 얘기해.

  -나는 스킨십 하는 게 좀 그래.

  -갑자기? 아, 저번에 손잡은 거 때문에?

  -아니··· 뭐 딱히 콕 집어서 그거 때문은 아니긴 한데, 이제 사귀는 사이기도 하고··· 미리 말해 줘야 될 거 같아서.

  -왜 그런지 물어봐도 돼?

왜 그런지, 왜 그런지··· 왜 그렇다고 하는 게 좋으려나.

  -아, 이거 진짜 부끄러운 건데. 말을 해도 되나.

  -괜찮으니까, 말해봐.

하연이 사뭇 진지하게 내 말을 듣고 있었다.

  -어렸을 때, 새벽에 잠이 안 오는 거야. 그래서 티비를 틀었다?

  -그때 공중파에만 머물러 있어야 됐는데··· 쓸 데 없는 호기심에, 채널을 위로 올린 거지. 도라에몽이 보고 싶었는데, 내가 봤던 건, 도라에몽이랑 공통점이라고는 홀딱 벗고 있는 사람들이 나왔다는 거 밖에는··· 아마 그때부터였던 거 같아. 그때부터는 좀 다 역하더라고.

하연이 내 말을 듣고, 웃어줬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어이없는 이유라며, 웃음을 대가로 적당히 어물쩡 넘어가줬음 했다. 하지만 하연은 이야기를 마치고, 내가 머쓱한 표정으로 웃고 있을 때도, 진지한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때가 몇 살이었는데?

  -그때? 글쎄 한 6살, 7살?

  -트라우마로 남을만하네.

하연이 말을 마친 후에도, 무언가 찝찝한 구석이 남아 있었는지, 생각을 멈추지 않는 듯 보였다.

  -저번에 내 손목 예쁘다고 했었지.

  -응, 그랬었지.

  -한 번 잡아볼래?

하연이 소매를 걷어 손목을 내 앞에 내놓았다.

  -어?

  -아무런 일도 안 일어나. 한 번 잡아봐.

얼떨결에 잡았던, 하연의 손목은 바라봤을 때보다도 훨씬 더 얇았다. 손목을 감았던 엄지가, 중지 끝마디를 거의 모두 덮을 정도로. 이렇게 얇은 손목으로, 이것저것 어려운 일들을 척척해내는 하연이 대견했다.

두근거림이 느껴졌다. 하연의 맥박 소리였는지, 내 심장이 뛰는 소리였는지, 두 쪽 다였는지는 헷갈렸지만, 무척이나 그랬다.

  -이번엔 내가 잡아봐도 돼?

역시 하연이 하는 말에는, 어딘가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힘이 있었다.

  -어때? 지금 역해?

  -아니···

  -그치, 역하지 않지.

  -응.

  -내가 도와줄게.

  -응, 고마워.

어떤 걸 도와준다는 건지, 나는 뭐가 고마웠던 건지.

할 수 있었던 말이 고맙다는 말뿐이었는지, 딱딱하게 얼어서 아무런 소리나 뱉어댔던 건지, 나는 지금부터가 혼란스러웠는데, 하연이는 이제서야 찝찝한 구석이 없어진 듯 웃었다.

매거진의 이전글 순애(殉愛/純愛)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