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와 하연
79.
-하연아, 나 할 말 있어.
-무슨 말을 하려고 이렇게 진지하게 와.
-음···
-뭔데.
-갑작스럽고, 진짜 이상하게 들릴 거 아는데···
-그냥 얘기해.
-나는 스킨십 하는 게 좀 그래.
-갑자기? 아, 저번에 손잡은 거 때문에?
-아니··· 뭐 딱히 콕 집어서 그거 때문은 아니긴 한데, 이제 사귀는 사이기도 하고··· 미리 말해 줘야 될 거 같아서.
-왜 그런지 물어봐도 돼?
왜 그런지, 왜 그런지··· 왜 그렇다고 하는 게 좋으려나.
-아, 이거 진짜 부끄러운 건데. 말을 해도 되나.
-괜찮으니까, 말해봐.
하연이 사뭇 진지하게 내 말을 듣고 있었다.
-어렸을 때, 새벽에 잠이 안 오는 거야. 그래서 티비를 틀었다?
-그때 공중파에만 머물러 있어야 됐는데··· 쓸 데 없는 호기심에, 채널을 위로 올린 거지. 도라에몽이 보고 싶었는데, 내가 봤던 건, 도라에몽이랑 공통점이라고는 홀딱 벗고 있는 사람들이 나왔다는 거 밖에는··· 아마 그때부터였던 거 같아. 그때부터는 좀 다 역하더라고.
하연이 내 말을 듣고, 웃어줬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어이없는 이유라며, 웃음을 대가로 적당히 어물쩡 넘어가줬음 했다. 하지만 하연은 이야기를 마치고, 내가 머쓱한 표정으로 웃고 있을 때도, 진지한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때가 몇 살이었는데?
-그때? 글쎄 한 6살, 7살?
-트라우마로 남을만하네.
하연이 말을 마친 후에도, 무언가 찝찝한 구석이 남아 있었는지, 생각을 멈추지 않는 듯 보였다.
-저번에 내 손목 예쁘다고 했었지.
-응, 그랬었지.
-한 번 잡아볼래?
하연이 소매를 걷어 손목을 내 앞에 내놓았다.
-어?
-아무런 일도 안 일어나. 한 번 잡아봐.
얼떨결에 잡았던, 하연의 손목은 바라봤을 때보다도 훨씬 더 얇았다. 손목을 감았던 엄지가, 중지 끝마디를 거의 모두 덮을 정도로. 이렇게 얇은 손목으로, 이것저것 어려운 일들을 척척해내는 하연이 대견했다.
두근거림이 느껴졌다. 하연의 맥박 소리였는지, 내 심장이 뛰는 소리였는지, 두 쪽 다였는지는 헷갈렸지만, 무척이나 그랬다.
-이번엔 내가 잡아봐도 돼?
역시 하연이 하는 말에는, 어딘가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힘이 있었다.
-어때? 지금 역해?
-아니···
-그치, 역하지 않지.
-응.
-내가 도와줄게.
-응, 고마워.
어떤 걸 도와준다는 건지, 나는 뭐가 고마웠던 건지.
할 수 있었던 말이 고맙다는 말뿐이었는지, 딱딱하게 얼어서 아무런 소리나 뱉어댔던 건지, 나는 지금부터가 혼란스러웠는데, 하연이는 이제서야 찝찝한 구석이 없어진 듯 웃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