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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순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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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평일 Aug 29. 2023

순애(殉愛/純愛)

나와 하연

85.

국어선생님은 감성적인 부분이 있으신 분이었다. 이 시대에 손편지라니. 개학 첫날, 1교시에 들어있던 국어시간에 우린 편지를 한 통 써야만 했다.

나는 편지를 쓰는 시간에 다른 공부를 한다고, 편지를 쓰지 않았다. 수업이 끝나고, 하연이는 내 곁으로 와서 종이 한 장을 내 책상에 툭 놓고 갔다.


[뾰족한 부분 없는, 내 마음은 0해.

그런 마음을 잘 이어 붙이면 우리 마음은 해. 고목나무로 만들어진 오래된 정자보다도 훨씬 오래, 픽셀 조각들처럼, 끝없이 반복되는 이진수처럼 0,1히,


아무 데서도 팔지 않는 내 사랑은 0원이고, 그걸 다 가지고 있는 너는 영원하겠구나. 영원한 건 없다지만, 영원하다는 말이 아니라면 잘 표현되지 않는 그런 마음도 있는걸.


너랑 나는 영원히 함께하겠네.

베트남이나 일본보다도 먼 곳에 언제나 같이 있겠네.]


  -읽어봤어? 너는 뭐 안 썼어?

  -나는 수학 공부했는데···

  -잘했다.

  -멋진 글인데?

  -너한테 하는 말이잖아.

  -알아, 알아. 저녁에 맛있는 거 먹자. 내가 사줄게. 이번엔 타코야끼 말고 다른 걸로.

  -웬일이야?

  -나라고 뭐, 맨날 타코야끼만 먹는 줄 알아?

  -너 맨날 그렇잖아.

  -영원하지.

하연이 날 째려보더니, 내 팔을 툭 하고 쳤다.

  -그런 데에 영원하다는 말 쓰지 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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