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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순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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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평일 Sep 04. 2023

순애(殉愛/純愛)

나와 하연

89.

  -하연아.

  -응?

  -오래오래 행복하게 지내자.

  -되게 뜬금없네.

  -저번에 우리 홍대 갔을 때, 너가 했던 말 있잖아. 안 해본 거 다 하러 다니자고. 그 대답 지금 하는 거야. 저번에 애매하게 대답했다고 안 좋아했었잖아.

  -너 무슨 일 있구나.

  -이렇게 로맨틱한 상황에서 무슨 일 있냐니.

  -아닌데, 너 지금 뭐 있는데.

  -뭐 없는데. 날씨가 안 좋아서, 그래 보이나.

  -그런가?

  -대답은 안 해줄 거야?

하연이 내 손을 꼭 쥐었다. 무언가 부족했는지 날 꽉 껴안았다. 나도 하연을 꽉 껴안았다. 그땐, 우리 둘 사이가 꼭 진공상태인 것 같았다. 하연이 아플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힘을 조금 빼야만 했다. 근데 내가 힘을 뺀 만큼 하연이 날 더 세게 안았다. 우린 여전히 진공상태였다.

문득 근거 없는 희망이 솟았다. 탄은 원하는 학교에 가겠구나. 대학교에 가선, 그래. 행복만 왕창하겠구나. 나는 그 옆에 있겠구나. 하연이랑은 오랫동안 행복하겠구나. 숫자를 세는 것에 의미가 없어질 만큼이나, 어쩌면 너가 써서 줬던 글처럼 영원히.

이 나라 저 나라를 유랑하듯 돌아다니며, 처음 먹어보는 음식들과 처음 해보는 것들을 함께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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