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와 하연
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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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해 복 많이 받아.
-너도 새해 복 많이 받아 하연아.
-너가 쓸래?
-아냐, 너가 펜 들고 있으니까 너가 써.
-그러자, 그럼.
3학년이 시작되고, 하연이와 나는 정반대로 반이 갈라졌다. 나는 1반, 하연이는 9반으로. 하연이는 나보다 한층 더 높았던 5층에 교실이 있었다.
3학년 때부터는, 아침방송 역시도 우리가 진행하지 않았기 때문에, 우린 더더욱 의도하지 않는다면 만날 수 없었다. 가끔 쉬는 시간에 하연이 우리 반 문 앞을 서성거리는 걸 본 적 있다. 하연이는 공부를 하고 있는 내 모습을 보고 다시 반으로 돌아갔다. 반으로 나가서 잠시 하연이를 볼만한 시간적 여유가 없던 건 아니었지만, 그럴만한 정신적 여유가 없었다.
아마 그때 하연이 반으로 들어와 날 찾지 않았던 건 하연이가 말했던 ‘시간을 준다는 것’이겠지.
그럼에도 하연이는 하교할 때만 되면, 언제나 우리 반 앞으로 와서 종례가 끝나기를 기다렸다. 창문 너머로 눈이 마주칠 때면, 고개를 빼꼼 내밀어서 날 보고 손을 흔들었다. 종례가 끝나면 함께 집에 갔다.
집에 갈 땐, 별다른 이야기를 하지 않았다.
-오늘은 어땠어?
-괜찮았어.
-다행이네.
-나 안 보고 싶었어?
-보고 싶었지.
사실 옳고 그름으로 따지자면, 이맘때 즈음에 그 아이와의 관계를 정리하는 게 옳았다. 왜냐면 나에게는 예전처럼 하연에게 따뜻하게 굴어줄 만큼의 여력이 더이상 남아있지 않았으니까. 알고 있었지만, 그렇게 하지 않았던 것은 나의 이기심이었다.
그런 이기심은 공부를 열심히 해서 탄과 같은 학교에 간다면, 모든 게 해결될 것이라는 한 가닥의 희망에서부터 비롯되었다. 그래서 공부를 했다.
그래서 하연이를 만나고, 손을 잡고, 뼈가 으스러질 듯 안고 싶었지만 그럴 수 없었다. 예전처럼 하연이를 만나고, 손을 잡고 안고 싶어서 그럴 수밖에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