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순애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평일 Sep 12. 2023

순애(殉愛/純愛)

나와 하연

94.

  -이젠 너도 학교 끝나면 바로 공부 하러 가. 나 기다리지 말고. 이제 수능 진짜 얼마 안 남았잖아.

  -괜찮아.

  -조금만 있으면 돼. 이해하지?

그때부터 하연이는 나와 하교를 함께하는 대신, 언제나 11시쯤이 되면 나에게 같은 내용의 문자를 보내곤 했다.

  -[오늘 하루는 어땠어?]

사실 하연의 질문에 진심으로 오늘 하루에 대한 감상을

남겼던 적은 없었다. 내가 [개 같았어.] 라고 하거나,

[좆같았지 뭐.] 라고 해도, 이랬던 내 하루를 하연이 보상해 줄 순 없으니까. 그래서 난 항상 너한테 각져있는 말들을 보내지.

  -[괜찬맜머. 마까 먹믄 치즈 타코먀끼가 맛밌멌머.]

  -[다행이네ㅋㅋㅋㅋㅋㅋㅋㅋ 내일은 괜찮은 거 말고, 좋았으면 좋겠다.]

이건 하연에 대한 배려이기도 했다. 내가 가지고 있던, 좋지 않은 감정을 굳이 하연에게 묻힐 필요는 없었으니까. 우리의 대화는 보통은 이런 식이었다.

근데 그날은 하연의 똑같은 질문에, 왜인지 다른 답을 내놓았던 날이었다.

  -[오늘 하루는 어땠어?]

  -[별로였어.]

  -[뭐가 별로였는데?]

  -[그냥 기분이]

  -[근데 괜찮아 하연아. 이제 진짜 다 끝나가니까.]

  -[마무리 잘 짓자.]

  -[그래, 그러자.]

매거진의 이전글 순애(殉愛/純愛)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