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와 하연
94.
-이젠 너도 학교 끝나면 바로 공부 하러 가. 나 기다리지 말고. 이제 수능 진짜 얼마 안 남았잖아.
-괜찮아.
-조금만 있으면 돼. 이해하지?
그때부터 하연이는 나와 하교를 함께하는 대신, 언제나 11시쯤이 되면 나에게 같은 내용의 문자를 보내곤 했다.
-[오늘 하루는 어땠어?]
사실 하연의 질문에 진심으로 오늘 하루에 대한 감상을
남겼던 적은 없었다. 내가 [개 같았어.] 라고 하거나,
[좆같았지 뭐.] 라고 해도, 이랬던 내 하루를 하연이 보상해 줄 순 없으니까. 그래서 난 항상 너한테 각져있는 말들을 보내지.
-[괜찬맜머. 마까 먹믄 치즈 타코먀끼가 맛밌멌머.]
-[다행이네ㅋㅋㅋㅋㅋㅋㅋㅋ 내일은 괜찮은 거 말고, 좋았으면 좋겠다.]
이건 하연에 대한 배려이기도 했다. 내가 가지고 있던, 좋지 않은 감정을 굳이 하연에게 묻힐 필요는 없었으니까. 우리의 대화는 보통은 이런 식이었다.
근데 그날은 하연의 똑같은 질문에, 왜인지 다른 답을 내놓았던 날이었다.
-[오늘 하루는 어땠어?]
-[별로였어.]
-[뭐가 별로였는데?]
-[그냥 기분이]
-[근데 괜찮아 하연아. 이제 진짜 다 끝나가니까.]
-[마무리 잘 짓자.]
-[그래, 그러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