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와 하연
96.
수능 전 날에는 우연히 시체 같았던 탄을 만났고, 그 시체 같았던 탄을 뒤로하고 집으로 발걸음을 옮겼을 땐 의외로 이것저것 밝은 미래를 상상했다. 나와 탄에 대한 생각, 내가 다닐 학교, 미래, 하연에 대한 생각 조금… 조금에서 아주 조금 더, 아주 조금에서 조금 많이 더. 하연이 많이 보고 싶었다.
-[어디야? 얼굴 볼까?]
-[응 그러자.]
어디서 만날지는 굳이 정할 필요가 없었다. 우리 둘 다 이미 알고 있었으니까.
-오랜만이네.
-그러게 진짜 오랜만이네. 더 예뻐졌다.
-살 엄청 쪘는데···
-예쁘기만 한데 왜.
-그렇게 봐주면 고맙네.
-고생했어 하연아.
-고생은 너가 더 많이 했지. 너는 원하는 학교 갈 거야. 진짜 열심히 했으니까.
-아니 공부 말고. 나 말이야.
하연이 픽 하고 웃었다.
-그건 좀 고생 많았지.
-혹시 나 아직도 무서워?
-됐어, 이제.
-뭐가 됐다는 거야?
하연이 내 손 위로 손을 포갰다.
-손이 왜 이렇게 거칠어.
-나도 안 놀고, 열심히 공부했거든.
-손 줘.
나도 손이 거칠었던 탓에, 핸드크림을 내 손에도 양껏 짜서, 하연의 손에 문댔다.
-나 입술도 많이 텄는데···
-입술은 하나도 안 텄는데.
-아닌데, 지금 립밤 안 바르면 금방 피 날 텐데.
-그렇다고 손으로 발라달라는 말은 아니었는데.
-시험 잘 봐.
- ··· 너도 잘 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