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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순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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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평일 Sep 14. 2023

순애(殉愛/純愛)

나와 하연

96.

수능 전 날에는 우연히 시체 같았던 탄을 만났고, 그 시체 같았던 탄을 뒤로하고 집으로 발걸음을 옮겼을 땐 의외로 이것저것 밝은 미래를 상상했다. 나와 탄에 대한 생각, 내가 다닐 학교, 미래, 하연에 대한 생각 조금… 조금에서 아주 조금 더, 아주 조금에서 조금 많이 더. 하연이 많이 보고 싶었다.

  -[어디야? 얼굴 볼까?]

  -[응 그러자.]

어디서 만날지는 굳이 정할 필요가 없었다. 우리 둘 다 이미 알고 있었으니까.

  -오랜만이네.

  -그러게 진짜 오랜만이네. 더 예뻐졌다.

  -살 엄청 쪘는데···

  -예쁘기만 한데 왜.

  -그렇게 봐주면 고맙네.

  -고생했어 하연아.

  -고생은 너가 더 많이 했지. 너는 원하는 학교 갈 거야. 진짜 열심히 했으니까.

  -아니 공부 말고. 나 말이야.

하연이 픽 하고 웃었다.

  -그건 좀 고생 많았지.

  -혹시 나 아직도 무서워?

  -됐어, 이제.

  -뭐가 됐다는 거야?

하연이 내 손 위로 손을 포갰다.

  -손이 왜 이렇게 거칠어.

  -나도 안 놀고, 열심히 공부했거든.

  -손 줘.

나도 손이 거칠었던 탓에, 핸드크림을 내 손에도 양껏 짜서, 하연의 손에 문댔다.

  -나 입술도 많이 텄는데···

  -입술은 하나도 안 텄는데.

  -아닌데, 지금 립밤 안 바르면 금방 피 날 텐데.

  -그렇다고 손으로 발라달라는 말은 아니었는데.

  -시험 잘 봐.

  - ··· 너도 잘 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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