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와 순애
132.
순애와 함께 우리 집에 왔을 땐, 순애는 여전히 정신을 못 차렸고, 순애를 침대에 눕혀두고 나서는 거실로 나와 쇼파에 앉아서 멍을 때리다가, 조금 더 멍을 때리다가 문득 집이 더럽다는 생각이 들었고, 이제는 다른 사람한테 혼나는 게 싫은 나이었기 때문에 조용히 청소를 시작했지. 청소를 다 하고 나니, 시간은 새벽 3시쯤이었고, 나도 슬슬 졸음이 쏟아져왔던 탓에 밖으로 나가려다, 순애가 보고 싶어서 방에 들어갔을 때 순애는 여전히 새근새근 자고 있었고, 뭐랄까, 되게 현실감이 없었기 때문에 졸음이 잠시 달아났다가, 너무 편안하게 누워있는 순애의 모습에 나까지도 피곤해져 버려서 밖으로 나가려고 했을 땐,
-왜 나가. 좀 더 보고 가지.
-안 잤어요?
-재워주는데, 이 정도 팬서비스는 해 줘야지.
-고마워요.
-내일 봐요.
-갈 거야?
-네, 졸려서요.
순애가 눈을 떠서 날 바라봤다.
-안 가면 안 돼?
-잘 데가 없는데요. 저 쇼파에서는 못 자요. 허리 아파서.
-내 옆에 누워. 침대도 넓고 좋은 거 쓰면서 왜.
-들어와, 그럴 줄 알고 내가 따뜻하게 데워놨어. 5월인데도 밤에는 춥다 그치.
-그러게요.
-어때, 따뜻하지? 안 나가길 잘했지?
-네, 따뜻하긴 한데, 저 이불 좀 주시면 안 돼요? 저 지금 반 밖에 못 덮고 있는데
-그건 안 돼. 너네 집 이불 너무 포근하거든.
-아, 뭐 네.
-더 큰 이불로 바꿔야겠다.
-뭐야? 지금 같이 살자는 거야?
-그건 아니고.
순애가 깔깔 웃어댔다. 나는 그때 순애처럼 웃어줄 여유가 하나도 없었는데.
-부탁하고 싶은 게 있어요.
-뭔데?
-제 이야기 좀 들어주시면 안 돼요?
-들어주시면, 음 들어주면, 저도 누나 이야기 들어드릴게요.
순애가 다시 눈을 감더니, 편안한 듯 기분 좋은 신음을 내며 이불속으로 파고들어 갔다.
-내일 얘기 하자. 지금은 너무 편하거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