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으악, 내 떡!”
영식의 떡이 뭉개졌다. 하루 종일 잘 간직했다 싶었는데…. 휴게소 화장실을 다녀온 사이, 선배가 그의 배낭을 뭉개고 앉아 있었다. 술 냄새가 영식의 코를 '확' 찔렀다.
“선배님, 여기는 제 자리인데요!”
“뭐라고? 자네 자리라고?”
“네, 선배님의 자리는 뒤에 있습니다.”
그는 아무 일 없었다는 듯 흥얼거리며 뒷좌석으로 갔다. 영식은 ‘아이고!’ 한숨이 나왔다. 그렇다고 화를 낼 수도 없었다. 그는 다름 아닌 ‘멋있는 A 선배’였기 때문이다.
영식은 은퇴 후 사회적 관계를 넓히기로 했다. 오늘, 친구 따라 00 동문 등산회 버스에 올라탔다. 대부분 선배 부부였다. 출발하기 전, 총무가 콩과 호박고지를 넣은 백설기와 초콜릿, 음료를 배부했다. 모두 아침 식사를 따끈한 떡으로 대신했다. 영식은 떡을 좋아하는 아내를 위해, 얼른 배낭에 넣고 물만 한 컵 들이켰다.
‘설악산 흘림골’ 입구에 도착하자, A 선배가 회원들을 2개 조로 나누었다. A 코스는 4시간 30분, B 코스는 2시간이 걸린다. 영식은 당당히 A 코스로 정했다. 친구가 걱정스럽게 물었다.
“너, 괜찮은 거지?”
“당근이지, 왕년에 춘천 마라톤도 뛰었는데.”
사실, 마라톤은 20년 전 얘기다. 그는 은퇴 후 거의 집에만 머물러 있다. 산은 주말이라 등산객들로 붐볐다. 정상까지 가파른 계단을 올라야 했다. 1시간 남짓 지나서 영식의 무릎이 아파졌다. 설상가상, 발목도 삐끗하자, A 선배가 '칙! 칙!' 파스를 뿌려줬다. 이후 30분 정도는 참고 견딜만했다. 별안간 현기증이 났고, 얼굴이 창백해졌다. 친구가 일행에게 잠시 머물다 가자고 했다. 잠시 후 다시 출발했고, 함께한 일행은 제일 뒤처졌지만 얼굴들은 밝았다. A 선배는 영식의 어깨를 토탁였다.
"자! 기운 내. 처음에는 누구나 힘든 거야. 조급하지 말고 한 걸음씩 가자고."
그는 뚱뚱한 체격임에도 등산 베테랑이었다. 그가 멋있게 보였다. 정상에 도착한 등선대는 아름다운 풍광을 보여줬다. 잠시 머물며 일행은 떡, 빵, 바나나, 초콜릿, 수박 등을 내놓았다. 영식도 초콜릿과 바나나를 꺼냈다. 하지만, 떡은 아끼며 고수했다. 이렇게 휴식을 끝내고 내려가는 길은 순탄했다. 10여분 걸어서 등산폭포에 도착했다. 영식은 주머니와 배낭을 뒤졌다.
"이런, 휴대전화가 어디 갔지?"
갑자기 머리가 띵하고 아찔했다.
“아! 내 정신이….”
친구에게 잠시 기다려 달라고 요청하고 정상을 향해 질주했다. 뒤쪽에서 누군가 외쳤다.
“아니, 저렇게 빨라!”
“저 사람 괜찮은 거야?”
정상에는 여전히 사람이 많았다. ‘분명히 여기 근처였는데….’ 아무리 두리번거려도 휴대전화가 보이지 않았다. 등산객을 통해 전화를 시도했으나 터지지 않았다. 근심이 가득한 채, 이제 내려가야 하나 망설일 때, 산들바람이 살짝 불어왔다. 저만치 돌 구석에 떨궈진 단풍이 날리고 휴대전화가 언뜻 보였다.
친구가 물었다.
“찾았니?"
"응, 다행히…."
"깜짝 놀랐겠다! 그런데 너, 왜 그렇게 빨라졌어? 어쩐 일이냐?"
“나도 몰라, 그냥 달렸어!”
누군가 외쳤다.
“날쌘 다람쥐가 왔네!”
일행은 한바탕 웃었다. 이후, 영식의 별명은 ‘날쌘 다람쥐’가 되었다.
몹시 지친 몸을 하며, 집으로 왔다. 아끼고 가져온 백설기를 배낭에서 꺼냈다. 비닐에 둘러싸여 아직도 온기가 있었다. 눌린 떡을 본 아내의 한마디가 만춘의 피로를 '확!' 날렸다.
“오! 이런 떡 됐네, 호호….”
비록 떡은 뭉개졌지만, 아내와 한 점씩 떼어먹는 재미가 쏠쏠했다. 그에게 오늘 하루는 평소의 운동관리가 얼마나 중요한 지를 느끼게 한 하루였다. 그 후 일주일을 어정쩡한 걸음으로 다녀야 했다. 이제 영식은 정말 ‘날쌘 다람쥐’가 되기로 했다.
"하나 둘, 하나 둘!"
오늘도 열심히 동네 한 바퀴를 돌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