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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여름 Nov 06. 2023

할머니의 마음, 밥알 가득 단술

  금방이라도 바스러질 것 같은 살얼음이 동동 뜬 차가운 국물과 달짝지근한 밥알이 있는 단술을 좋아한다. 물은 물대로 시원하게 맛있고, 밥알은 밥알대로 씹는 맛이 있다. 명절에 찾아 뵐 때면, 시어머니는 며느리가 좋아한다며 직접 만드신 단술을 냉장고에서 꺼내주셨다. '입맛이 없나, 어디가 안 좋나?' 생각이 들 만큼 밥을 깨작거리는 나지만, 단술은 단숨에 잘도 마셨다. 어머님을 뵈러 갈 때 단술 마실 생각에 더 신이 나기도 했다. 마트나 인터넷에서는 구할 수 없는, 달지 않으면서도 진한 맛이었기 때문이다.




  "어머님, 이거 어떻게 만들어요?"

  "니는 만들기 힘들 낀데." 어머님은 웃으며 가만가만 단술 만드는 방법을 알려주셨다. 엿기름을 물에 불려 체에 거르고, 거기 다시 물을 부어 맑은 물을 만든다. 엿기름 물을 하루 정도 둔 뒤, 고슬고슬한 밥을 지어 보온 상태에서 5시간 정도 보관한다. 밥알이 동동 떠오르면 냄비에 넣고 보글보글 끓인 후 식혀서 먹으면 된다.

  "할 수 있겠나? 어려블 낀데."

  "한 번 해 볼게요." 호기롭게 대답하고 덥석 단술용 보온 밥솥까지 얻어왔지만, 결국에는 시도조차 하지 못했다. 집에서 자주 만들어 먹어야겠다는 생각에 의욕만 앞섰을 뿐, 일과 육아에 지친 워킹맘은 여유가 잠시 생기면 그저 누워있을 뿐이었다. 새로운 어떤 것을 하기에는 체력이 받쳐주지 못했다. 맛있게 만들어서 아이들에게 주고 싶었는데, 현실은 늘 피곤한 엄마였다. 엿기름을 사서 불리고 거르고 기다리고 다시 끓이고 식히는 일을 하기에는 일상이 너무 버겁고 무거웠다. 그저 쉬고만 싶었다.




  손주들이 단술을 꿀꺽꿀꺽 맛나게 먹는 것이 좋으셨을까. 어머님은 아이들에게 종종 단술을 만들어주셨고, 아이들은 맛나게 먹으며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웠다. "할머니 단술 진짜 맛있어요." 아이들이 너무 좋아해서, 어른들은 아쉽지만 단술을 아이들에게 양보했다.


  "애들이 밥알을 엄청 좋아해요."

  단술을 줄 때마다 밥알을 많이 달라고 외치는 아이들이었다. 국물을 먼저 호로록 마시고는, 분홍색 아이스크림 숟가락으로 새로 꺼내서 마치 밥을 먹듯이 단술 밥알을 떠먹었다. 밥을 한 그릇 다 먹고, 단술 밥알도 저녁밥 양만큼 먹었다.

  어느 날 밥알을 잘 먹는다고 무심코 말씀드렸더니, 다음부터는 단술의 비율이 달라져 있었다. 어디에서도 구할 수 없는, 까칠이와 순둥이만을 위한 단술. 밥알이 전체의 반 가까이 되었다. 손주를 위하는 어머님의 사랑이 가득 담겨 있었다.


  "너희 밥 다 먹고 단술 먹을래?"

  아이들은 웃으며 대답했다. 컵째 받아 꿀떡꿀떡 단술을 넘길 것이다. 아이들은 그렇게 할머니의 사랑을 듬뿍 받으며 자라는 중이다.

  

할머니의 단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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