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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언제나봄 Oct 24. 2020

나의 봄에게

2014년 4월, 잊지 못할 그 해 봄


너와 함께 꽃길을 걷는다.

살랑이는 바람에도 꽃비가 내린다.


“엄마! 꼬오~ 비이~”


내려앉은 꽃잎을 손바닥에 올려준다.

내, 네 손에서 꽃바람이 시작된다.


꺄르르 꺄르르 봄이 웃는다.

내, 네 두 눈에 봄이 담긴다.


이토록 찬란하고 눈부신 계절에

꿈결처럼 내 곁에 찾아온 너는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하늘이 주신 선물.


하지만 봄아, 우리 늘 기억하자.


이토록 아름답게 네가 찾아오던 날

차가운 바닷속 깊은 슬픔에 잠긴 사람들,


꽃잎이 반짝이며 흩날릴 때면

소리 없이 울고 있을 누군가들을.


네가 있어 누군가가 위로받기를

네가 있어 누군가가 행복해지길


언제나 따스한 봄의 숨결처럼

돌아보고 살펴보며 안아주기를.


그렇게 기도하며 너를 안는다.

그렇게 기도하며 봄을 안는다.



-너의 세 번째 생일에, 엄마가


20160418


봄아,


네가 태어날 순간만 기다리던 그날도, 오늘처럼 이렇게 세상이 아름다웠어. 연둣빛 새순이 돋아나기 시작하고, 활짝 핀 벚꽃은 아찔하게 흩날렸지. 유난히도 뱃속에서 딸꾹질을 많이 하던 너는, 아침이면 힘차게 발길질을 했고, 예정일이 하루하루 다가올수록 좁은 뱃속을 빙글빙글 도는 일도 많아졌지. 그 날 아침에도 쉴 새 없이 뱃속에서 꼼지락거리는 너를 쓰다듬으며 TV 앞에 앉았는데, 엄마는 믿을 수 없는 광경을 보게 되었어. 잿빛 하늘 아래 울렁대는 잿빛 파도, 90도로 내리 꽂힌 것 같은 커다란 배 한 척, 세월호였어. 화면 아래엔 ‘승객 전원 구조’라며 빨갛게 헤드라인이 떠 있었고, 이렇게 많은 사람이 지켜보는데 당연히 모두가 무사히 돌아올 거라 생각했었지.



하지만 이틀 뒤 네가 태어날 때도, 열흘 뒤 네가 눈을 뜨고 손발을 움직이기 시작할 때도, 몇 달이 지나 몸을 뒤집고 허우적대며 기어가기 시작할 때까지도, 너무나 많은 사람들이, 너무나 많은 생명들이 그 차가운 바닷속에 잠긴 채 돌아오지 못했어. 지금까지도... 너로 인해 나의 세상이, 아니 우리 온 가족의 세상이 이토록 환하고 아름다워졌는데, 그 순간 우리가 살고 있는 이 땅의 다른 누군가들은 영원히 그 찬란하고 아름다운 봄날을 잃어버린 거야.



해마다 너의 생일이 돌아올 때면 그 가슴 아픈 기억들이 같이 떠올라 마음껏 웃을 수도, 울 수도 없는 복잡한 기분에 빠져들게 돼. 여리디 여린 한 생명이 세상에 태어나 이만큼 자라날 시간이 흘렀구나. 눈 앞에서 자라고 있는 너를 품에 안고서도 나는 어제의, 지난날의 네가 사무치도록 그리운데, 더 이상 볼 수도, 품에 안을 수도 없는 아이들을 가슴에 묻은 그 마음은 그리움이라 부를 수조차 없겠지. 모든 순간이 아름답고 행복했던 너와의 하루하루를 곱씹을수록, 하루아침에 이 모든 걸 눈 앞에서 빼앗겼을 사람들의 마음이 더욱더 크고 아프고 무겁게 다가온단다. 이렇게 나도 엄마가, 부모가 되어가는 거겠지.



하나님을 바라보고, 가족들을 살펴보고, 이웃들을 돌아보는 네가 되기를, 따스하고 포근한 봄날의 햇살처럼 많은 사람들을 돌보아주기를, 엄마 아빠가 기도하고 바라던 대로 늘 다른 사람들의 마음을 먼저 살피고 보듬어주며 예쁘고 곱게 자라나고 있는 나의 봄, 우리의 봄아. 나의 곁에 와주어서, 우리의 삶에 와주어서 고맙고 감사해. 우리가 가장 행복하고 즐거운 이 순간, 어디선가 소리 없이 울고 있을 봄을 잃은 사람들에게도, 조금 더 따뜻하고 밝아진 새 봄이 꼭 찾아오면 좋겠다.  



사랑하고 축복해,  

나의, 그리고 우리의 봄.



2020년 4월 18일, 너의 일곱 번째 생일에 엄마가.


20200806 봄의 손을 잡고 걸었던 팽목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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