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나간 것은 지나간 대로
“딸이 엄마를 꼭 닮았네. 예쁘다.”
잊을 리 없지만 영원히 잊은 채 묻어버린 그에게서 연락이 왔다. 10년쯤 되었으려나. 한없이 철없고 싶었던 피터팬, 영원히 반항하고 싶었던 제임스 딘 같은 그였다. 늘 이런 식이다. 기가 찬 마음에 물끄러미 전화기의 화면을 내려다본다. 피식 새어 나오는 웃음이 옅은 연기처럼 공중에서 흩어진다. 저장된 적 없는 낯선 번호였지만, 어쩌면 알림이 울린 순간 본능적으로 알았던 것 같다.
“죄송하지만, 혹시 누구신가요?”
“... 아... 저 000입니다.”
쿵. 선명하게 뜬 000 세 글자가 화면 밖으로 튀어나와 내 눈가를 할퀸다. 이제는 괜찮을 줄 알았는데 아니었나 보다. 몸을 가눌 수 없는 소용돌이에 휘말린 듯 나는 어느새 그 해 겨울, 이제 막 봄을 싣고 오는 파도 앞에, 아무도 없는 백사장 위에 홀로 서 있었다.
2007년 부산, 해운대
갓 대학을 졸업하고 아직 파릇파릇한 학생의 느낌을 지울 수 없었던 여름과 가을의 경계에 선 9월, 몇 달 간의 채용과정을 거쳐 합격한 회사에서 첫 발령지가 내려왔다. 부산. 아는 언니 결혼식 때 아주 잠깐 다녀온 것 밖에는 가 본 적도, 아는 사람도 하나 없는, 어쩌면 외국만큼이나 낯선 곳.
모든 사람들은 나에게 화가 나 있는 것 같았다. 특유의 거센 억양과 “다” 혹은 “라”로 끝나는 문장들, 이를테면 “이리 쫌 와봐라.” 혹은 “알았다. 됐다. 치라.” 같은 말들은 묘하게 귀에도 마음에도 거슬렸고, 기본적으로 크고 높은 목소리들은 서로 늘 언성을 높여 싸우는 것만 같았다. 알게 모르게 위축되는 나날들. 그러던 사이, 그를 만났다. 운명처럼.
“저 사람들은 너한테 화난 게 아니야. 저 사람들은 지금 싸우는 게 아니야.”
어쩌면 지극히 당연한 말로 나를 위로해주는 그는, 구세주였다. 마음 붙일 곳 하나 없는 낯선 땅에서 만난 한 줄기 빛. 선택의 여지도 없이, 달빛이 머무는 동백섬, 바다를 바라보고 나란히 앉은 벤치에서 바닷바람을 타고 들려온 “난, 네가 참 좋아.”라는 그 한 마디에 사랑이 시작되었다. 매일 저녁 여섯 시, 퇴근 시간이 땡 하고 다가오면, 그토록 낯설고 거친 그 바닷가 동네가 분홍빛으로 물들었다. 매일 같이 아무도 없는 백사장을 걸으며 달빛이 샛노란 물길을 만드는 걸 바라보았고, 별이 쏟아지는 하늘을 한없이 바라보며 바람결에 대나무가 사각사각 속삭이는 소리를 듣곤 했다. 남들은 어쩌다 한 번, 큰 마음을 먹어야만 할 법한 여행과 데이트가 매일의 일상에 녹아 있었다. 부산. 해운대. 이 얼마나 낭만적인 곳인지, 당장이라도 도망가고 싶었던 그곳은 한 달도 채 되지 않아 영원히 살고 싶은 동네가 되었다.
한없이 다정하고 낭만적인 그는 오롯이, 또 오로지 ‘현재’에 충실한 사람이었다. 나 또한 외로움을 두려워하면서도 은근히 마음속에 차오르는 시린 듯한 고독을 즐기는 터라, 함께하는 시간이 끝나고 서로의 자리로 돌아가면 그 이후의 순간들을 굳이 침범하지 않았다. 그래 봐야 저녁 내내 함께 있다 헤어지면 자는 시간 정도밖에 남지 않았으니 딱히 외로울 것도 불편할 것도 이상할 것도 없었다. 사실은 그게 이상한 일이 맞다는 걸 깨닫기까지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뺨에 닿는 바닷바람이 살짝 차갑게 느껴질 즈음, 나를 집 앞에 바래다주며 손을 흔들고 돌아선 그는, 그 길로 홀연히 사라졌다. 마치 존재한 적 없는 것처럼, 아무런 예고도, 기별도 없이. 연락을 해도 닿지 않고 기다려도 돌아오지 않았다. 며칠이 지나 우연히 마주한 그는, 매일같이 나와 함께 하던 그 자리에, 나와 함께 했던 바로 그 모습과 그 표정으로, 다른 여자와 앉아있었다. 정지 버튼이라도 누른 듯 당황한 채 그 자리에 딱딱하게 굳어버린 나와는 달리, 나를 발견한 그는 아무렇지 않게 다가와 웃으며 말을 건넨다. “오랜만이네. 잘 지냈어? 여긴 어쩐 일이야?” 영혼이 하나도 없는 그 날의 그 인사, 내가 알고 있는 그가 아니었다. 낯선 사람보다 더 낯선 그는, 내가 알았던 적이 없는, 그냥 어떤 남자였다. 뭐라 대답할 만한 적당한 말이 도저히 떠오르지 않았다. 계속 마주 서 있다가는 눈물이 터져 나올까 봐, 그것만은 도저히 용납할 수 없었던 자존심에, 그대로 돌아서서 나와버렸다. 잰걸음으로 걷고 또 걸었다. 아무도 없는 백사장이 나타날 때까지. 시커먼 파도가 철썩철썩 몰아치는 바다가 나타날 때까지.
한 사람만 있으면 될 것 같았던 날이 있었다. 단 한 사람만 있으면 낯선 곳에서의 외로움도, 이방인으로 배척당하는 설움도, 아무렇지 않게 견뎌낼 수 있을 것 같았다. 그 단 한 사람이 위로가 된 순간들이 있었다. 하지만 찰나 같은 순간이 지나고, 영원 같은 암흑이 시작됐다. 잠시의 위로가 되었던 그는 몇 곱절의 외로움과 설움을, 시린 아픔을 남긴 채 사라졌다. 어쩌면 한 번도 존재하지 않았던 것처럼.
그와 함께한 짧은 가을이 끝나고, 겨울이 되었다. 여름엔 백사장의 모래보다 많았을 인파가 모두 빠져나간 겨울의 해운대는 쓸쓸했다. 어스름한 가로등 불빛을 따라 동백섬을 걷다가, 그와 나란히 앉아있던 벤치에 눈길이 머물렀다. 가만히 눈을 감고 숨을 크게 들이쉬었다. 익숙한 향기가 코 끝에 머물렀다. 이대로 눈을 뜨면 눈물이 날까 봐 그대로 눈을 감은 채 하늘을 향해 고개를 들었다. 들릴 듯 말 듯, 익숙한 목소리가 귓가에 스친다. 화들짝 놀라 뒤를 돌아보았다. 그가 서있었다. 고개를 살짝 숙인 채로 발끝을 톡톡 차며 조심스레 한숨을 몰아쉰다.
“미안해. 내가 잘못했어.”
“... 난 도저히... 이해할 수가 없었어. 아니, 아직도 잘 모르겠어. 이게 무슨 일인지, 어떤 상황인지.”
“미안해. 다시는 안 그럴게. 한 번만 용서해줘.”
금방이라도 울 것 같은 표정으로, 잘못하다 엄마한테 들킨 아이 같은 모습으로, 갑자기 나타나 미안하다는 말만 반복하는 그에게, 생채기가 채 아물지 못한 나의 마음이 지고 말았다. 나는 어렸고, 사실은 외로웠다. 앞으로도 이런 대화가 무수히 반복될 걸 본능적으로 알아차렸으면서도, 명석한 머리는 20대의 어린 사랑 앞에 이길 도리가 없었다.
나의 구세주였던 그는, 다시 돌아온 후 아들이 되었다. 툭하면 사라졌고, 홀연히 돌아와 빌었다. 자전거를 타고 약방을 전전하던 아버지가 제약회사의 회장님이 되셨다며, 자기는 죽어도 아버지처럼 될 수는 없을 거라며, 나는 아버지가 존경스럽지만 너무 무섭다고, 엄마 앞에서 응석 부리는 아이처럼 울었다. “예전에, 중학생 때였나. 친구들이랑 어울려서 별 거 아닌 말썽을 좀 부린 적이 있었어. 그때 우리 아버지가 바닥에 무릎을 꿇게 하시더니, 사냥할 때 쓰는 기관총을 들고 나오시는 거야. 찰칵. 나는 그때 들었던 그 장전 소리를, 아직도 잊을 수가 없어. 너무 차갑고 두려웠어. 엄마랑 누나는 그 옆에서 그냥 울고 있었어. 난 아직도 가끔씩 그 찰칵하는 소리가 들려.”
이런 얘기 처음으로 꺼내 본다며 멋쩍게 웃는 그의 떨리는 손등 위에 가만히 손을 포개 주었다. 그의 안에 웅크리고 있는 그 상처 입은 소년을 맞닥뜨린 순간, 나는 더 이상 헤어날 수 없는 덫에 걸려들었다. 이해할 수 없는 모든 상황 뒤에 그 아이가 서 있었고, 그는 툭하면 그 아이의 뒤에 숨은 채로 나를 붙잡았다. 지금 일어나는 모든 이상한 일들은 사실 그 아이 때문인 거고, 이런 나를 이해하지 못하면 너는 상처 입은 아이를 외면하는 차갑고 나쁜 어른인 거라고. 그렇게 그는 아들처럼, 다시 사춘기 소년이 된 것처럼, 엄마에게 반항하듯 툭하면 사라져 나를 흔들고, 엄마에게 사죄하듯 매번 돌아와 무릎을 꿇었다. 그런 그를 붙잡지도 내치지도 못한 채, 이해하고 받아들이고 어떻게든 다독이려 안간힘을 쓰는 동안, 겨울과 봄, 그리고 여름이 지나갔다.
“나... 더 늦기 전에 꼭 해보고 싶은 게 있어. 지금 내 나이에 이러는 거 정신 나간 거긴 한데, 나 회사 그만두고 여행을 좀 다녀올까 해. 한 일 년 정도... 가 되려나? 기다려... 줄 거지? 너는... 이해할 수 있지?”
어차피 나의 의견 따위를 물은 말이 아니었다. 입술을 살짝 깨문 채로 눈을 내리깔고 가만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데, 나. 부모님한테 이 말씀을 드리는 게 너무 겁나. 나랑 같이 가 주면 안 될까? 우리 엄마도 너 한 번 보고 싶다고 하시고...”
관계가 깊어진다 싶으면, 무언가 조금 가까워진다 싶으면, 몸서리치듯 홀연히 도망치고 사라지던 그의 입에서, 부모님께 함께 가 달라는 말이 나오다니. 믿을 수 없었다. 내가 아무리 도망가서 돌아다니며 다른 여자들을 만나봐도 결국은 너한테 돌아오게 된다는 둥, 그래도 네가 지지해주는 걸 알면 부모님도 이해해주시지 않겠냐는 둥 구구절절 이어지는 설명은 더 이상 들리지도 않았다. 어차피 나는 덫에 걸린 몸, 선택의 여지는 늘 그렇듯 없었다. 그리고 며칠 뒤, 그와 함께 그의 집에 갔다.
광안리 바다가 한눈에 내려다 보이는 높은 건물, 흐트러진 데 없이 말끔하게 정돈된 집안은 말쑥하지만 차가웠다. 그의 어머니는 웃으며 반가이 맞아주셨지만, 어딘가 모르게 어색했다. 어머니와 셋이 앉아 대화가 거의 없는 채로 저녁을 먹었다. 역시나 어색한 채로 그의 방을 한 바퀴 돌아보는 찰나, 아버지가 집에 들어오셨다. 순간 바짝 얼어붙은 그의 등이 눈에 밟혔다. 그는 반사적으로 현관으로 튀어나가더니 잠시 머뭇거리다가 이렇게 말했다. “아빠, 여기는, 제 회사 친구예요.”
순간의 정적. 그의 아버지는 기가 찬다는 듯 그를 한 번 바라보고 나를 바라보며 “회사 친구라꼬? 허허.” 알 수 없는 웃음을 지으며 우리를 가로질러 안으로 들어가셨다. 그는 아버지의 뒷모습으로 보고 가늘게 숨을 몰아쉬더니 나를 보고 “미... 안...”하며 겸연쩍은 표정으로 속삭였다. 그 순간, 모든 마법이 풀렸다. 아니 내 눈과 마음에 덮여 씌워졌던 콩깍지가 드디어 벗겨진 걸까. 이 아이, 이 소년은 영원히 성장할 수도 성숙할 수도 없다. 이 상처는 내가 치유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내가 그 일을 감당하고 있어야 할 이유도, 그럴 깜냥도 되지 않는다는 걸, 이제는 이 지리하고도 지긋지긋한 자기학대적인 이 관계를 끝낼 때가 되었다는 걸, 드디어, 그제서야, 깨달았다.
“잘 다녀와. 기다린다는 말은 하지 않을게. 아니, 기다리지 않을 거야. 잘 헤어지자. 이렇게.”
“그래도, 기다려준다고 그냥 말해주면 안 될까? 누군가 기다려준다고 해야 돌아올 수 있을 것 같아.”
“미안해. 하지만 나는... 자기의 엄마가 되어줄 수는 없어. 그만 하자, 여기서.”
수줍은 고백을 건네던, 사랑의 언어를 속삭이던, 하염없이 걷고 또 걸었던 그 바다를 마주한 채 마지막 인사를 건넸다. 가을이 지나 겨울이 오려는 그 날의 바다는 조용하고 차가웠다. 가만히 몰아쉬는 한숨소리가 파도에 묻히지도 않을 만큼. 우리는 아주 오랫동안 아무 말없이 나란히 앉아 바다를 바라보았다. 동그란 달이 반짝이는 금빛 물길을 만드는 광경을, 검은 물결이 쏴르르 모래를 집어삼키며 부서지는 모습을. 담담하게 말했지만 사실은 두려웠다. 앞으로도 매일 보게 될 이 바다를 나는 혼자 마주할 수 있을까. 가만히 눈을 감고 생각했다. 정말 할 수 있을까. 아니, 사실 나는 그가 떠나지 않기를 바라고 있었다. 그 순간에도.
2012년 서울, 퇴근길 지하철 안
“잘... 지냈지? 나 돌아왔어.”
발신자 번호가 찍히지 않은 메시지. 여덟 글자가 화면에서 어지러이 떠다닌다. 그가 돌아왔다.
“응. 돌아왔구나. 건강하지?”
“다행이다. 번호 안 바뀌었구나. 잘 지내지? 아직 부산이야?”
“아니, 서울 돌아왔지. 나는 잘 지내. 잘 지냈지?”
“응. 뭐 내 삶은 늘 그렇듯 파란만장해. 나 천벌 받나 봐. 아버지가 갑자기 돌아가시고, 아버지 회사는 어쩌다가 망하고, 어머니는 쓰러지셨어. 나는 여행하다 태국에서 잠시 게스트 하우스를 열어서 지내고 있었는데, 뭐 집안이 이렇게 되고 나니 어쩔 수 없이 급히 들어왔지. 내가 지은 죄가 많은가 보다. 아니, 많지. 그래서 너한테는 늘 미안하고...”
“힘든 시간 보냈구나. 어머니 잘 회복하셔야 할 텐데...”
“음, 뭐 일어나시겠지. 뭐 괜찮을 거야. 너는, 결혼은 했어?”
“응. 다음 달에 해. 좋은 사람 만났어.”
“그렇구나. 축하해. 잘 살 거야. 좋은 아내가 될 거고.”
“그래야지. 고마워. 잘 지내. 어머니 잘 회복하시길 바라. 건강 잘 챙기고.”
건조하고 짧은 통화가 끝났다. 지하철 안에서 겨울바다 냄새가 나는 것 같았다. 그립지는 않았지만 씁쓸했다. 한동안 잊고 지냈던 그 시절, 그 마음들이 저 깊은 곳에서 마구 요동치는 것 같았다. 이리 툭, 저리 툭, 힘들고 아팠던 기억만 튀어나왔다. 어쩌면 다행이었다. 그 시절 그 상처 입은 마음들 덕분에 나는 오늘의 사랑을 만났으니. 나를 귀하게 여기고 따뜻하게 보듬어줄 사람을 알아볼 수 있게 되었으니.
2019년 어느 나른한 오후
“딸이 엄마를 꼭 닮았네. 예쁘다.”
역시나 발신자 번호가 없는 메시지. 역시 그였다. 알면서도 모르는 척 묻는 나에게, 잠시 뜸을 들이다 자신의 이름을 이야기하는 그에게서 약간의 섭섭함이 묻어난다.
“그런가? 다들 아빠랑 똑같다던데. 예쁘지, 내 딸인걸. 하핫. 잘 지내지? 오랜만이네.”
“뭐, 나야 늘 파란만장하지. 여전히.”
“결혼은 했고?”
“음. 했었...지. 뭐 난 여전히 천벌을 받으며 사는 것 같아. 그나마 내가 계속 안 죽고 살아야 하는 유일한 이유가 내 딸이지.”
“무슨 말이 매번 그래. 딸이랑 예쁘게 잘 살면 되지.”
“그래. 내가 하도 파란만장하게 삶이 꼬이니까, 자꾸 옛날을 생각하게 되더라고. 이제 와서 내가 이런 말 하는 게 너한테 아무런 의미도 없고 뭐 그렇겠지만, 내가 너한테는 정말, 미안해. 이 말을 꼭 한 번은 하고 싶었어. 내가 참 못났고 못됐었다. 나는 그래서 벌 받으며 살아. 너는 꼭 잘 살아줘라. 행복하게.”
무슨 대답이 듣고 싶은 건지, 투명할 만큼 빤히 들여다보이는 그의 마음을 두고 잠시 생각에 잠긴다. 이미 기억 저 편에 아득하고 아련하게만 남아있는 그 시간들이, 빛을 잃은 별처럼 잠시 반짝이다 이내 어둠 속에 잠긴다. 좋은 사람으로 남아야겠지. 무엇 때문에 그 과거에 발목 잡힌 채, 자신에게 일어나는 모든 일들을 그때의 잘못으로, 그 시절의 죗값으로 여기며 지내고 있는지 알 수 없지만, 이미 10년도 더 전에 나는 당신의 엄마가 될 수 없다고 선언하고 돌아섰지만, 돌아온 탕자와 같은 저 아들을 한 번은 다독여줘야 되겠구나. 그래야 너도 여기서 헤어 나올 수 있겠구나. 나에겐 이미 흘러간 일들일뿐인걸. 그 시절의 상처와 아픔이 결국은 오늘의 나를 이렇게 단단하고 너른 사람으로 자라게 했는걸. 그 시절의 상처 받은 나의 어린 마음은 매몰차게 복수하듯 저 마음을 한 번은 할퀴어보라고 옆구리를 콕콕 찌르지만, 이미 서른 중반을 훌쩍 넘긴 나는 어른이 되었다.
“몸서리치게 외롭고 힘든 날들이 있었어. 야속하기도 하고 미워하기도 했지. 하지만 좋았던 순간들도 많았으니까. 내가 선택하고 함께했던 순간들이니까. 우리 모두 서툴고 어렸던 날들이었으니까. 나에겐 이 모든 게 이제는 아련하고 아득한 추억이야. 나에게 미안한 마음은 갖지 않아도 괜찮아. 한 때 누군가를 그렇게 사랑하고 아파했던 내 모습이, 나는 참 좋아. 찬란했던 어린 시절. 좋은 순간들을 선물했던 그대에게도, 사랑 뒤에 찾아오는 시린 바람들을 오롯이 겪게 해 준 그대에게도, 감사. 이제는 부디 행복하기를.”
앞으로 십 년쯤 지나면 또 한 번 연락이 오려나. 간간이 불어오는 찬바람에 그 시절 감정들이 흐릿하게 스쳐 지나간다. 가끔씩 이렇게 추억을 꺼내 먹는 것도 나쁘지 않다. 사실 그 시절 바닷가는 함께 했던 추억보다 홀로 거닐던 순간들이 훨씬 많았다. 잠을 이룰 수 없는 늦은 밤 해변으로 달려가 하염없이 검은 물결을 바라보던 그 날의 마음, 우연히라도 마주칠까 함께 걷던 섬 어귀를 느릿느릿 배회하던 그 날의 걸음, 아직은 한창 추운 겨울의 끝자락, 저 멀리서 불어오는 바닷바람의 끝이 둥글어진 걸 느끼며 새 봄이 다가왔음을 온몸으로 알아차렸던 그 시절, 그 바닷가... 돌아보면 부끄럽고 창피해 이불속에서 발을 동동이게 될 만한 어리고 어리석고 서툴렀던 그 날들이 파도처럼, 저만치 저 멀리 흘러가버렸다. 이 언덕은 봄이 되면 벚꽃으로 뒤덮여 분홍빛으로 물든다며, 내년 봄에 꽃이 필 때 꼭 다시 오자던 약속은 영원히 지켜지지 못했지만, 매년 봄이 시작되는 소식을 전하는 그곳의 모습을 사진으로, 영상으로 마주할 때면, 지키지 못해 괜히 아련한 약속이 문득문득 떠오르겠지. 내 아이가 자라서 사랑에 설레고 아파할 때까지 이 마음을 지킬 수 있으면 좋겠다. 아빠와의 다정한 사랑은 늘 현재 진행형이겠지만, 엄마에게도 고민하고 아파하고 실수하고 서툴렀던 어린 사랑이 있었음을, 청춘의 순간들이 있었음을, 딸과 함께 속닥속닥 꺄르르 웃으며 이야기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