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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언제나봄 Nov 13. 2020

사랑만으로는 되지 않아서

낭만주의자로 살아온 20대에게, 안녕



“나... 사랑했었어?”

“그럼. 사실은 지금도 사랑하고 있어.”


헤어지고 두 달 뒤, 우연히 만나 마주 앉은 그가 꽤 담담한 표정으로 말했다. 사실은 지금도, 아직도, 여전히 사랑하고 있다고. 그게 마지막이었다. 우리의 만남은.


 



조금은 촌스럽지만 낭만적인 사람 



따뜻하고 밝은 사람이었다. 유쾌하고 활기가 넘쳤다. 처음 만난 자리에서 엄마에게 걸려온 전화를 빼앗듯이 집어 들고 너스레를 떨던 귀여운 사람, 좋아하는 시 한 두 편 정도는 언제든 가만가만 읊어댈 줄 알던, 늦은 밤엔 전화를 걸어 자장가라며 노래를 불러주던, 조금은 촌스럽지만 낭만적인 사람. 작은 것에도 크게 감탄하고, 언제나 예쁘다 멋있다 칭찬을 아끼지 않던 다정한 사람. 한창 외롭고 힘들었던 시기에 나의 마음이 넘어가지 않을 수 없었고, 순식간에 활짝 피어나는 새하얀 벚꽃 이파리처럼 또다시 사랑이 시작되었다.



그와 함께하던 날들엔 유난히 비가 많이 내렸다. 싱그러운 여름의 기운을 안은 채 쏟아지는 빗줄기를 바라보며 아무도 없는 바닷가 조그마한 커피숍에 앉아 가만히 턱을 괸 채 나란히 앉아 있던 우리는, 즐거웠고 다정했지만 너무 가깝지 않았다. 한 해 한 해 사랑의 경험과 이별의 상처가 더해질수록 새로운 사람을 또 다른 사랑을 소화해내는 건 점점 더 어려운 일이 되기 마련이니까. 한 걸음 한 걸음 다가가는 모든 눈짓과 손짓과 몸짓이, 신중하고 조심스러웠다.  



바닷길을 따라 발끝을 적시는 빗물을 오롯이 느끼며 걷던 어느 밤, 한 걸음 앞에서 걷던 그의 등에서 조용조용 노래가 흘러나왔다.  

 


“난 아직 그대를 이해하지 못하기에

그대 마음에 이르는 그 길을 찾고 있어.


그대의 슬픈 마음을 환히 비춰줄 수 있는

변하지 않을 사랑이 되는 길을 찾고 있어.


어디서 찾을 수 있을까 그대 마음에 다다르는 길,

찾을 수 있을까 언제나 멀리 있는 그대.


기다려줘, 기다려줘,

내가 그대를 이해할 수 있을 때까지.

기다려줘, 기다려줘,

내가 그대를 이해할 수 있을 때까지.”



우산을 타고 내리는 빗방울이 반짝 빛을 내더니 이내 똑 똑 똑 떨어졌다. 발끝 닿는 곳마다 고인 웅덩이에서 가만히 물 그림자가 비 그림자가 퍼져 나갔다. 혹시 들킨 걸까. 내 마음 한 구석에 늘 고여 있는 슬픔을. 슬퍼 보일 일 하나 없는 밝고 고운 일상에 감추어진 지독한 고독과 진득한 슬픔을. 달도 뜨지 않는 깜깜한 바닷가를 드문 드문 비추는 노란빛의 가로등 불 아래 그의 노래를 들으며 가만히 걸었다. 돌아선 그와 눈이 마주치자 입가에 수줍은 웃음이 빙긋이 피어난다. 점점 크게 번져가는 물 그림자, 비 그림자처럼.






새벽 두 시 



장마철을 좋아한다. 문득 찾아오는 짙은 우울과 슬픈 감상을 구구절절 설명하거나 변명할 것 없이 창 밖을 가리키며 날씨 탓을 할 수 있어서. 쏟아지는 빗줄기를 하염없이 바라보며 가사도 없는 구슬픈 노래를 밤낮으로 틀어 놓고 한 손에 들어오지도 않을 만큼 커다란 머그잔에 커피를 가득 담은 채 홀짝여도 전혀 어색하지 않은 시기이니까. 그런 계절에 찾아온 사랑이라니. 어쩌면 슬픈 운명을 안고 태어났는지도, 어쩌면 빗줄기 같은 눈물을 머금고 태어났는지도.  


 

날이 개고, 뜨거운 여름도 지나고, 사뿐사뿐 구름 위를 걷는 듯한 행복하고 즐거운 날들이 이어졌다. 한층 더 가볍고 한 걸음 더 가까워진 날들, 만나면 즐겁고 헤어지면 아쉬운 순간들이 이어지던 어느 날, 자정이 한참 지난 새벽녘에 요란하게 전화벨이 울렸다.  

 

“자고 있었죠? 미안해요.”

“괜찮아요. 무슨 일 있어요?”


“음... 그게... 제가 얘기를 안 한 게 하나 있어요.

사실... 저희 집이 원불교예요.”



아들에게 새로 생긴 여자 친구가 궁금하고 보고 싶다며 집으로 초대를 하셨던 부모님께서, 내가 기독교인인 걸 들으시고 만나지 않겠다고 하신 거다. 생각지도 못한 데서 훅 들어온 공격에 잠시 정신이 아득해졌다. 원불교라는 건 전직 대통령 장례식에서 4대 종교 중 하나로 제의를 올릴 때나 본 건데, 혹은 그 옛날 국사책 한 페이지에서나 지나치듯 보았던 단어인데, 이 새벽에 그의 입에서 들을 수 있는 단어라고는 상상조차 할 수 없는 그 한마디가 순식간에 상을, 아니 삶을 뒤엎었다. 게다가 그 이유로, 결혼 승낙이라도 받는 자리가 아니라 그냥 얼굴 한 번 보자는 약속을 깨버린다니, 어안이 벙벙했다.



“너무 미안해요... 이제 어쩌죠?”


빗소리처럼 젖어드는 그의 마지막 한 마디에 정신이 퍼뜩 들었다. 한창 행복하고 사랑하고 즐거웠던 이때, 살면서 부딪히게 될 수만 가지 일들 중 어쩌면 정말 사소하고 보잘것없는 이 정도 일 앞에서 우물쭈물하는 그를 보아버린 것이다. 착하고 고운 그는, 그 착하고 고운 마음 때문에 이렇게 부딪치고 결정해야 할 모든 일 앞에서 주저하고 고민하고 조심하겠구나. 사랑에 눈이 멀어 부모님들의 반대에 맞서 싸우며 전의를 불태우기엔, 우린 너무 바르고 착했으며 이미 어른이 되어 있었다. 열여섯 로미오와 줄리엣이 될 수는 없는 노릇. 그냥 하루라도 빨리, 더 가까워지고 좋아지기 전에 마침표를 찍어야 했다.



“내가 아는 00 씨와 나는, 착한 아들과 착한 딸의 역할을 절대 버릴 수가 없어요. 부모님의 마음을 상하게 하는 일은 우리 스스로를 더 아프고 힘들게만 할 거고, 그래서 그렇게 못할 거고... 너무 속상하고 아쉽고 슬프지만, 그만 해요 우리.”


 

차마 끊지 못한 전화기를 붙잡은 채로 한숨과 침묵이 이어졌다. 종료 버튼을 누르는 순간 정말 모든 게 끝이 나는 걸 우리는 서로 알았기에, 그 누구도 쉽게 누르지 못한 채로 깊고 깊은 밤을 그렇게 지새웠다. 종교적인 문제가 아니었다. 삶의 태도와 방식에 관한 문제였다. 제사를 지내든 제단을 쌓든 그런 건, 내가 믿는 것과 상관없이 얼마든지 해낼 수 있다. 나의 사랑을 낳고 길러 주신 부모님의 마음을 향한 효도로 생각하면서. 하지만 남은 삶을 오롯이 그 균형을 맞추는 데만 소진하려니, 하루하루가 애달프고 고달플 것이 자명했다. 무엇보다 이 정도에 머뭇거리기 시작한 그와 과연 끝까지, 무사히, 이 삶을 이어갈 수 있을지, 자신이 없었다. 두려웠다. 놀랍도록 침착하고 차가워진 마음이 한 계절을 가득 채운 낭만을 밀어냈다. 나는 그렇게, 그와 이별했다.


 

차라리 비나 쏟아졌으면 좋았으련만, 도저히 잠을 이룰 수 없어 모자를 푹 눌러쓰고 이른 새벽 조깅하듯 해변을 향해 달렸다. 하얀 안개가 자욱한 해변은 어디까지가 하늘이고 물인지 분간을 할 수 없었다. 눈을 감았다. 숨을 한껏 몰아쉬고 내쉬며 상한 마음을 털어내 본다. 짠내음을 싣고 불어오는 이른 아침 바닷바람이 차다. 가을이 오나 보다. 나는 다시 또 혼자가 되었다.






사랑만으로는 되지 않아서 


 

서로의 사소한 단점을 발견하고, 지리하게 이어지는 일상에 권태로움을 느끼며 조금씩 멀어지는 이별이 아닌, 교통사고처럼 한 순간에 팡 하고 끝나버린 연애는 그저 한여름 밤의 꿈같았다. 그저 설레고 좋았던 기억만 있기에 미워할 수도 없고, 바꿀 수 있는 게 없기에 돌아갈 수도 없는, 꿈과 현실의 모호한 경계에 선 채로 하루하루가 천천히, 아주 느릿느릿하게 흘렀다.  


 

빛바랜 사랑 탓을 할 수 없으니 다른 곳으로 생각이 흘렀다. 열성적인 신도들은 ‘예수 천국 불신 지옥’ 띠를 두르고 이게 다 여러분의 영혼을 구하기 위함이라며 지하철에서 소리도 치며 다니는데, 나는 혹시 나에게 주어진 영혼들을 구원하지 않고 외면하며 도망친 것은 아닌가. 모든 것이 신의 섭리 가운데 있다면, 많고 많은 사람들 중에 우리가 이렇게 만나 사랑하게 된 것 또한 운명이라면 운명일진대, 혹시 내가 믿음 없이 비겁하게 도망치는 건 아닌가. 혹은 언어적으로 재단해놓은 이 모든 종교들이 가르치고 추구하는 건 결국 다 같을 텐데, 한낱 피조물에 불과한 우리가 그 큰 뜻을 이해하지 못하고 이러고 있는 건 아닌가. 부질없는 종교적인 고민에 철학적인 사유가 끝을 알 수 없을 만큼 파고들었다. 갈 곳 잃은 두 발은 매일 밤과 아침이면 바닷가를 헤매었다. 알고 있었다. 이별 뒤에 오는 모든 상념과 마음들은 그저 홀로 오롯이 꼬옥꼭 씹으며 삼켜야 한다는 걸. 그 시간들을 모두 견뎌내야 비로소 사랑도 이별도 완성된다는 것을.



시린 가을비가 흩날리던 어느 밤, 바다를 향해 난 큰 창가에 기대앉은 채 뜨거운 커피잔에 두 손을 포개고 있을 때 들려오던 익숙하고도 낯선 음악. 노래 경연에 참여했던 젊은 가수가 다시 부른 그때 그 노래였다.



“난 아직 그대를 이해하지 못하기에

그대 마음에 이르는 그 길을 찾고 있어.


그대의 슬픈 마음을 환히 비춰줄 수 있는

변하지 않을 사랑이 되는 길을 찾고 있어.


어디서 찾을 수 있을까 그대 마음에 다다르는 길,

찾을 수 있을까 언제나 멀리 있는 그대.


기다려줘, 기다려줘,

내가 그대를 이해할 수 있을 때까지.

기다려줘, 기다려줘,

내가 그대를 이해할 수 있을 때까지.”


 

우리가 김광석 세대까지는 아닌데, 그 사람은 나에게 왜 이 노래를 불러주었던 걸까. 피식. 웃음이 나왔다. 어쩌면 그는 처음부터 알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우리의 설레고 즐거웠던 한 때가, 정말 그저 사진 한 장, 영화 속 한 장면처럼 순간의 추억에 머물게 될 것을. 돌아갈 수 없고 붙잡을 수 없을 만큼 멀리 있게 될 거라는 것을. 서로의 마음과 삶에 다다르는 길을 찾지 못한 채, 어쩌면 영원히 이해하지 못한 채로 아득히 스러져갈 것을 말이다.



사랑이 전부인 줄 알았던 20대의 끝자락, 꽤나 철든 척하고 다니던 나는 사랑 뒤에 숨어있던 현실에게 제대로 한 방 얻어맞았다. 세상엔 사랑만으로 되지 않는 게 있음을, 현실의 삶이, 남들 다 누리고 사는 것 같은 평범한 일상이 그렇게 만만하지는 않다는 것을. 철저한 낭만주의자로 살아온 20대에게 안녕을 고하는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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