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 숲에서 그녀가 울었다

아이언맨 엄마의 눈물

by 언제나봄

유난히도 하얗고 말간 얼굴에 어깨선이 예뻐 흐르듯 걸치는 스웨터가 무척이나 잘 어울리던 그녀는 두 아이의 엄마라고는 믿을 수 없을 만큼 앳되어 보였다. 온몸으로 따뜻한 분위기를 내뿜는 그녀와 이제 갓 백일을 넘긴 그녀의 딸아이는 모두에게 사랑받고 환영받는 존재였다. 여섯 살 개구쟁이 아들과 젖먹이 신생아를 동시에 돌보는 일이 고될 법도 한데, 그녀는 너무도 오랫동안 간절히 원하던 딸을 드디어 낳았다며 늘 구름 위를 걷듯 행복해했다. 그녀의 주위엔 언제나 하하호호 웃음이 가득했다.



그런 그녀가 숲에서 홀로 숨죽여 울고 있었다. 그녀의 가녀린 어깨가 잎이 몇 장 남지 않은 앙상한 가지처럼 작은 숨소리에도 쉴 새 없이 흔들리고 있었다. 그녀를 둘러싼 공기가 차갑고 침울했다. 내가 아는 그녀가 아닌 듯 생경하고 낯설게 느껴질 만큼, 차마 다가가 어깨를 감싸줄 수 없을 만큼. 본능적으로 느낄 수 있었다. 그녀에게 지금 필요한 건 쏟아지는 햇살을 가려줄 숲의 그림자라는 걸. 혹시라도 소리가 새어 나갈까 가까스로 입을 틀어막고 흐느끼는 그녀에게 필요한 건, 어떠한 말보다 차라리 스산한 가을바람이라는 것을.



그 날 아침, 그녀와 나의 아이들이 다니는 숲유치원에서 조그마한 행사가 있었다. 등원하는 아이들 손톱에 유치원 화단에서 길렀던 봉숭아 꽃을 찧어 물을 들여주는 것이었다. “선생님! 저는 두 개 해 주세요!” “저는 열 개 다 해주세요!” 까르르 까르르 복작복작 아침부터 기분 좋은 소란함이 숲을 가득 채웠다. 그때였다. 한 팔에는 아기를 안고, 한 손에는 아들 손목을 꼭 붙잡은 그녀의 얼굴이 새하얗게 굳어진 것이. 이미 차오른 눈물이 햇살을 받아 반짝 빛났다. 고개를 뒤로 젖혀가며 눈물이 쏟아지는 걸 간신히 막아낸 그녀는 금방이라도 풀썩 쓰러질 것만 같았다.



재빨리 그녀의 곁으로 가 아기를 건네받았다. “고마워요.” 속삭이듯 말하는 그녀의 눈에서 슬픔과 두려움을 보았다. 그녀는 아들 손을 잡고 화단 끝으로 가서 무릎을 굽혔다. 그녀와 아들 사이에 알 수 없는 무거운 공기가, 결연하지만 침울한 무언가가 내려앉았다. 아이는 입술을 뾰로통하게 내민 채 털레털레 교실로 들어가 버렸다. 아이의 발소리가 사라지자 그녀는 쫓기듯 숲으로 뛰어들어가 흐느끼기 시작했다.



그녀의 아들은 두 번째 개흉 수술을 앞두고 있었다. 수술 중 혹시라도 발생할 수 있는 청색증을 확인하기 위해 손톱에 봉숭아 물 같은 건 절대 안 된다고, 열 개 손가락 중 단 하나도 안 된다는 의사의 단호한 이야기를 듣고 나름대로 마음의 준비는 해왔건만, 다른 아이들이 아무런 걱정 없이 깔깔깔 기분 좋게 웃으며 손톱에 꽃잎을 붙이고 있는 이 순간을, 당장이라도 친구들 사이로 달려가 손가락을 들이밀고 싶은 아들의 마음이 마주 잡은 손가락 사이사이로 타고 오르는 지금 이 순간을, 무던히 견뎌낼 수 있는 어미는 없다. 견뎌내야만 할 어미가 있을 뿐. 흔들리는 마음을 간신히 누르며, 다시 한번 아이와 눈을 맞추고 다독여 교실로 들여보냈다. 간신히 참아 왔던 서글픔이 분수처럼 터져 나왔다. 그렇게 그녀는 오래도록 꾹꾹 눌러왔던 애처로움과 서글픔과 미안함과 안쓰러움을, 슬픔과 두려움과 원망과 자책을, 아무도 없는 가을 산에 토해내었다.



태어난 지 얼마 되지도 않은, 그 조그맣고 여린 아이를 처음 수술대에 눕히던 순간이 아직도 온몸 구석구석에 세포 하나하나에 사무치듯 새겨져 있는데, 이제 몇 년 후에나 올 거라고 잊은 채 지내자고 생각했던 그 날이 쿵쿵쿵 다가와버렸다. 첫 수술을 기억할 리 없는 아이가 “엄마, 나 병원 가기 싫어, 수술받기 싫어. 수술 침대는 너무 차가워.”라고 울먹이자, 잊고 있던 그 날의 기억에 곧 다시 마주해야 할 두려움이 집채만 한 파도처럼 범람해 그녀를 삼켜버렸다. 이번에 받을 수술은 처음과 달리 그냥 간단한 거라고, 큰 문제없이 잘 끝날 거라는 의사의 호언장담 따위는 그녀의 마음을 한 치도 달랠 수 없었다. 전신마취로 죽은 듯 누워있는 그 조그마한 아이를 수술실로 밀어 넣으며 순간이 영겁 같은 아득함을 얼마나 버텨내야 할는지, 가슴을 여닫은 아이 앞에서 무너지지 않기 위해 대체 얼마나 떨리는 입술을 깨물고 풀린 다리에 억지로 힘을 주어야 할는지, 이야기를 전해 듣는 것만으로도 그저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뱃속이 아리도록 아프고 또 두려운데, 이 모든 걸 오롯이 감내해야 할 그녀의 심정이 정말 가늠조차 되지 않았다. 한 마디도 입을 뗄 수가 없었다. 우리는 그렇게 가을 숲에서 한참을 소리 없이 울었다.



내 품에 안긴 채 스르르 잠이 들었던 그녀의 딸아이가 배시시 눈을 떴다. 그녀에게 아기를 건네주었다. 그녀는 가만히 아기의 가슴에 얼굴을 묻고 냄새를 맡으며 숨을 골랐다. 조금씩 조금씩 조심스레 숨을 몰아쉬며 마음을 달랬다. 그리고 얼굴을 들어 방긋 웃으며 아기와 눈을 맞췄다. 아기와 그녀의 얼굴에 햇살이 반짝, 쏟아졌다. 아기를 어르며 그녀가 웃는다. 아직 힘이 채 들어가지 않았지만, 다시 밝고 따뜻한 엄마의 모습으로 그렇게 웃는다. 그리고 그렇게 웃으며 유치원을 마치고 달려 나올 아들을 번쩍 끌어안을 것이다. 봉숭아 물을 들이지 못해 서운한 아들을 위해 형형색색의 유아용 매니큐어 장난감과 손톱 스티커를 고르고, “우리 아들은 아이언맨처럼 특별하고 멋진 심장을 가졌지?”하고 웃으며 마치 형제처럼 친구처럼 슈퍼영웅 놀이를 함께 하면서 이 숲을 신나게 누빌 것이다.



같이 눈물을 흘리고 함께 아픔을 나눈 사람들 사이에는 끈적하고 찐득한 유대감이 생긴다. 시린 가을 찬 바람이 훅 하고 불어올 때 “우리 커피 한 잔 할까요?” 한 마디에 기꺼이 시간을 내어줄 마음이, 자정 넘어 한밤중에 “혹시 자요?”라고 수줍게 보내온 메시지 한 줄에 밤을 새워 대화를 이어갈 마음이, 버틸 수 없는 순간을 견딜 수 있게 붙잡아준다. 숲의 그림자가 필요한 모든 순간에 우리가 함께 할 수는 없겠지만, 그래도 한 순간 오롯이 마음을 주고받은 서로가 있기에, 너무 멀지도 너무 가깝지도 않은 거리에 서로가 있기에, 우리는 오늘도 아이들 앞에서 한없이 밝고 씩씩하고 재미있는 엄마들로 살아갈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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