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운 계절에 부쳐

20년 간 보내지 못한 편지

by 언제나봄

강산이 두 번 변할 만큼의 시간이 흘렀다. 기가 막히게도, 매년 이 날에는 항상 눈이 시리도록 새파랗고 맑은 하늘이 머리 위로 펼쳐진다. 2020년 9월 13일, 오늘은 아빠의 스무 번째 기일이다.





아빠,


벌써 스무 해가 지났어요. 오늘도 그 날 만큼이나 눈이 부신 아침이에요. 늘 그래 왔듯 우리는 모두 이 날을 잊지 못하고 기억하면서도 잊은 척 모른 척 일상을 보내고 있어요. 형체조차 남지 않은 유골함 앞에서 슬픈 척 고개를 떨구는 일도, 마주 앉아 밥을 먹지도 못하는데 상을 차리는 것도, 모두 의미 없고 부질없는 걸 우리는 이미 잘 알고 있으니까요.



여전히 어제처럼 생생하지만, 또 영원이라도 흐른 듯 뿌옇게 지워져 가는 아빠에 대한 기억들은 늘 이 계절과 맞닿아 있어요. 굳이 기억하려 하지 않아도, 이렇게 문득 가을의 기운이 묻어날 때면 20년 전 오늘처럼 뻥 뚫린 가슴으로 시린 공기가 드나들어 자꾸만 한숨을 몰아쉬게 되지요.



결혼을 하고, 아이가 태어나고, 이 작은 생명이 온 가족에게 얼마나 큰 기쁨을 안겨주는 지를 보면서, 아빠가 나를 품에 안았던 때를 생각하고, 이 아이를 아빠가 품에 안아보았다면 얼마나 좋았을까를 상상해 봅니다. 이제 ‘엄마’보다는 ‘할머니’로 불릴 때가 더 많은 나의 엄마를 보면서, 아빠가 살아 계셨다면 어떤 할아버지가 되었을까도 그려봅니다. 한 번 해본 적도 없으면서 “엄마, 나 낚시해보고 싶어요!”를 입에 달고 사는 딸에게 “외할아버지, 그러니까 엄마의 아빠도 낚시를 너무너무 좋아하셨어.”라고 대답하며, 내 아이의 손을 잡고 낚싯대를 드리워줄 나의 아빠가 곁에 있었으면 얼마나 좋았을까를 생각해봅니다.



죽은 뒤에 몸에서 영혼이 둥실 떠올라 이 세계 어딘가를 둥둥 떠다니는지, 저 구름 위 하늘나라에서 가끔씩 우리를 바라보는지, 혹은 정말 육신이 스러져갈 때 우리의 존재 또한 無의 세계로 영영 사라져 버리는 건지 알 수 없지만, 이 세상에 나를 있게 했고, 유년 시절 내 안에 반짝이는 순간들을 가득 채워주었고, 떠나는 그 순간까지 가장 강하고 든든한 모습만 보여주고 불꽃같이 사라진 아빠의 존재는 내가 사는 동안, 나의 기억 속에서, 나의 안에서, 늘 함께할 거예요. 지금까지 그랬듯이 앞으로도, 어쩌면 영원히 표현하지 않겠지만, 이미 아빠의 나이에 닿아버린, 얼마 후면 아빠보다 나이가 더 많아질 나의 삶 속에서, 우리 함께 늙어가요. 이 모든 것이 언제든 순식간에 홀연히 사라져 버릴 수 있다는 걸 기억하며, 지금 이 순간을 마음껏 기뻐하고 즐기고 누리며, 아낌없이 사랑하고 사랑받으며, 그렇게 살게요.



이 말을 입 밖으로 뱉기까지 꼭 10년이 걸렸고, 다시 글로 쓰기까지 또 10년이 걸렸어요.



“아빠, 사실은 나 아빠가 많이 보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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