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확히 말하자면 기일의 하루 전날.
그분이 살아 숨 쉬며 존재하던 몇 해 전의 마지막 날.
죽어서 헤어진 날보다 어쩌면 그 전날을 더 기억해야 하지 않나 생각하기를 수년째. 어쩌다 보니 바로 오늘, 그렇게, 우연처럼, 한 자리에 둘러앉아 먹고 마시며 나의 아빠와 어린 시절의 나와 젊은 엄마를 추억하며 위로한다.
그 모양새가 제사일 리는 없고, 기독교식이라며 억지로 끼워 맞춰 오히려 기괴한 모양새의 추모예배일 리는 더더욱 없이, 그냥 우리의 일상처럼, 아빠가 같이 있었다면 가장 재미있어하고 좋아했을 모습으로, 음식을 준비하고 한상에 둘러앉아 좀처럼 입 밖으로 꺼내지 않던 이야기들을 한없이 가벼운 척 뱉어본다.
우연히 고3 때 다이어리를 며칠 전 발견하고 열어본 것도, 이상할 만큼 생생하고 자세하게 그 무렵의 일들이 하나하나 떠오른 것도, 사실은 우연이 아니었겠지. 계절이 돌고 돌아 그 자리에 올 때쯤, 내 몸속 마음속 어디엔가 깊이 새겨진 그 모든 기억과 추억과 아픔과 채 명명되지 못한 모든 것들이 여전히 살아 숨쉬기 때문이겠지.
딱 그때의 엄마 나이에 닿은 내가 엄마에게 말했다. “엄마, 참 대단해. 대견해. 고생했어.”
나라면 사실 못했을 거야. 결국 못 견뎠을 것 같아. 그때 내가 바라보고 느낀 엄마는 충분히 어른이고 단단하고 훌륭했지만, 그 나이에 다다라본 내가 스스로 느끼기에 난 열아홉 그 때나 지금이나 크게 차이가 없는 걸. 마흔이 넘었어도 여전히 어딘가에 의존하고 싶고 그래야만 하고 철없는 어린아이 같은 걸.
엄마가 말했다. “외롭고 힘든 시간들 너무 많았지만, 이렇게 예쁜 너희들이 있어서 잘 지낼 수 있었고 지금도 잘 지내고 있어. 난 멋있게 건강하게 계속 잘 지낼게.”
무엇 하나 부족할 것 없는 내게, 인지하지도 못할 만큼 오래도록 함께했던 결핍 하나. 울지도 못한 채 그 시간을 담담한 척 걸어온 열아홉 무렵의 나에게. 마흔셋, 너무도 젊고 어여쁜 나이였던 엄마에게. 오늘은 좀 더 다정해야지. 매일같이 맞이하는 모든 오늘을 조금 더 다정하게 살아가야지. 마치 삶의 마지막 날인 것처럼. 다시는 오지 않을 이 순간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