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메리카노

세상의 목소리 82

by 익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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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 학교 동문회장 된 게 썩 기분 좋은 아저씨와 그에게 형님 형님 하지만 거의 친구 같은 또 다른 아저씨가 카페에 자리를 잡는다. 뒤늦게 오는 일행에게 적당히 카페 위치를 설명해두고 커다란 메뉴판을 훑듯 둘러본다. 서로 익숙한 척 호기를 부려보지만 누구 하나 턱 하니 주문을 하는 이는 없다. 동문회장 아저씨가 겨우 아메리카노를 읊어내자 반대편에 앉은 아저씨는 ‘그 왜 뭐 들어가서 좀 부드러운 거 있는데.’라고 중얼거리다 머리 위에 느낌표가 터지며 ‘라떼!’를 외친다. 생소한 이름에 호기심을 느낀 동문회장님은 ‘그게 단 건가?’ 하더니 덩달아 ‘나도 그럼 그거’라며 주문을 마친다.

왁자하고 웃음이 잔잔하게 깔리는 주문 광경을 바라본다. 추운 날이다. 그들의 삶도 어느 순간엔 오늘의 날씨보다 차가운 바람이 불었을 것이고, 지금도 그런 순간을 스쳐가고 있을지도 모른다. 다만, 문 밖에 매서운 바람이 불더라도 이 곳은 몸을 녹일 만큼 따뜻한 곳이듯, 가벼운 농담으로 웃음 짓는 이 순간이 퍽 따뜻한 시간 이리라 짐작해본다. 그들의 삶에서도, 그런 그들을 바라보는 나의 시간 속에서도.


그림 / 정아 (https://www.instagram.com/lint3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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