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의 목소리 84
횡단보도 반대편에서 두 중년 여성이 잰걸음으로 이쪽으로 건너온다. 횡단보도 신호는 이제 막 점멸신호로 바뀌는 찰나. 왕복 6차로의 제법 넓은 도로지만 신호에는 아직 여유가 있다. 도로를 반쯤 건너고 서야 횡단보도 신호등의 숫자를 확인한 아주머니가 나란히 잰걸음을 걷던 아주머니에게 투정 부리듯 말을 뱉는다.
정신없이 달리다 보면 문득 내가 왜 이 달리기를 시작했는지 알 수 없을 때가 있다. 잰걸음을 걷는 사람들 틈바구니에 섞여 나도 모르게 발걸음을 재촉하기도 했고, 어디선가 들리는 목소리에 떠밀려 나도 모르게 발걸음을 옮기기도 했다. 친구들이 뛰고 있어서 뛰었고, 앞선 사람의 뒷모습만 보며 달리기도 했다. 그들이 왜 뛰고 있는지는 묻지도 않은 채.
어쩌면, 잠시 속도를 늦추고 고개를 들어보면 신호가 아직 넉넉할 수도 있을 텐데 말이다.
그림 / 정아 (https://www.instagram.com/lint31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