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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익군 Jan 20. 2019

때로는 멈춰야 한다

조급함에 마음이 뛰어도

최근 분 단위로 하는 일을 기록하고, 잠자리에 들기 전에는 하루를 정리하며 지내고 있다. 작년 8월 무렵 시작해본 것인데, 연말에 몇 가지 프로젝트를 급하게 마무리하며 제대로 기록하지 못하다가 올해로 넘어오면서 다시 시작한 것이다. 작년에 잘 되지 않았던 점을 보완하겠다고 이번에는 잠자는 시간, 일어나는 시간, 업무 시간, 점심, 저녁 식사 시간도 마치 학교 시간표처럼 짜 놨다. 어긴다고 뭐라고 할 사람은 없지만, 아직은 마음이 막 풀어지지는 않아서 제법 형태를 갖추며 굴러가고 있다.


낮밤이 바뀌는 게 예사였던 나의 일과를 정해진 시간표에 맞춰 진행하기 위해 가장 신경 쓰는 부분은 아침에 정해진 시간에 눈을 뜨는 일이다. 딱히 스스로에게 엄격하지 않았기에 회사를 그만두고는 오후 두세 시에 일어나거나 아예 해가 질 무렵 일과를 시작하기도 했다. 오전 열 시 정도만 해도 꽤 일찍 하루를 시작하는 것이었는데, 최근에는 그 시간을 당기고 당겨 여섯 시에는 몸을 움직인다.


굳이 왜 여섯 시여야 하는가에 대해서 마땅한 대답은 없지만, 그저 '열 시 취침 여섯 시 기상'이 주는 느낌이 좋았다. 그리고 이게 퍽 이상한 부분인데, 열 시 취침 여섯 시 기상은 가능해도 열한 시 취침 일곱 시 기상이나 열두 시 취침 여덟 시 기상은 좀처럼 쉽지 않았다. 마치 기차가 정해진 역에만 정차하듯, 여섯 시에 눈을 뜨지 않으면 다음 눈을 뜨는 시간은 아무리 빨라도 아홉 시 반쯤은 되어야 했다. 여섯 시란 역을 놓쳤으니 다음 역인 아홉 시 반, 열 시 역에 내리라는 듯 말이다.


그렇게 여섯 시 기상을 다짐하고, 처음 벽에 부딪힌 것은 아이러니하게도 여섯 시 기상이 아니라 열 시 취침이었다. 나는 잠이 많은 사람이니 여덟 시간은 자야겠고, 그러면 열 시에는 자야 여섯 시에 일어날 텐데, 열 시에 자는 것이 여섯 시에 일어나는 것보다 더 어렵게 느껴졌다. 딱히 저녁 약속이 많거나, 늦게까지 TV를 챙겨보기 때문은 아니었다. 오히려 약속이 없는 날이 더 많았고, TV는 일주일에 한두 번 기웃거릴까 싶은 정도였으니 말이다.


어렵사리 찾은 이유는 불안감 때문이었다. 예전에는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부지런히 하루를 보내도 해야 할 일은 티끌만큼도 적어지지 않았다. 하루를 아무리 알차게 사용해도 해야 할 일은 언제나 더 빠른 속도로 늘어났다. 늘어난 일이 전혀 없어도 해야 할 일 자체가 워낙 많기도 했지만 말이다. 그러니 시곗바늘이 열 시에 곧 닿을 것 같을 때면 늘 하루를 이렇게 마감해도 되는 것인가 하는 생각이 머릿속을 가득 채웠다.


처음엔 까짓것 조금 덜 자자는 마음으로 열 시를 넘겨 보기도 했다. 하지만 다음날 내가 눈을 떠서 처음 마주해야 하는 것은 어김없이 다음 역쯤 되는 아홉 시 반 혹은 열 시를 지나고 있는 시곗바늘이었다. 그렇게 몇 번 열 시를 넘겨 잠들었다 여섯 시를 훌쩍 넘긴 시간에 눈을 뜨면서 깨달은 것이 있다. 여섯 시에 일어나기 위해서는 여섯 시에 일어나야겠다는 굳은 다짐보다 열 시면 잠자리에 드는 행동 하나가 더 중요하다는 점이다.


종종 우리는 의지, 열정, 가능성에 대해 듣곤 한다. 엄청난 의지로, 활활 타오르는 열정으로, 무엇이든 가능하다는 믿음으로 등등. 내가 퍽 게으르고, 스스로에게 관대하기 때문일까. 나는 도무지 그런 것들을 삶 속에 녹여낼 수 없었다. 하루 이틀 내가 아닌 모습으로 살아갈 수는 있었다. 하지만 길어봐야 삼 일이고, 정말 대단한 의지면 일주일쯤 갔던 것 같다. 의지와 열정에 한껏 끌려다닌 몸이 자리를 펴고 주저앉는 순간 대단했던 의욕은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결국 나에겐 모든 일이 마라톤 같았다. 처음엔 가볍게 달리며 숨이 차지 않게, 서서히 속도를 끌어올려야 하고, 호흡이 흐트러지지 않게, 달리는 중간중간에도 매번 밸런스를 다시 잡아야 했다. 오늘 하루, 이번 주 한 주로 모든 일을 끝내버릴 게 아니라면 내일 여섯 시에 번쩍 눈을 뜨기 위해 오늘은 열 시에 자야 하는 것이었다. 마치 호흡을 가다듬듯이 말이다.


이런 생각이 잠들고 깨어나는 일에만 머문 것은 아니다. 25분 단위로 잘라서 일을 하다 보니 막 집중력에 물이 올랐을 때 일을 손에서 놓고 5분간 숨을 돌려야 했는데, 처음엔 이것도 쉽지 않았다. 하루 동안 해야 할 일이 많다고 느껴질 때면 자잘하게 끊어놓은 시간표가 야속하게 느껴지기도 했다. 특히 글을 쓰거나, 뭔가 집중력이 고조됐을 때 몰아치듯 해야 할 것만 같은 일을 할 때는 더욱 그랬다. 하지만, 매번 억지로 손을 떼고 몸을 뒤로 물리면 막 집중해 있을 때는 보이지 않는 것들이 보였다. 5분이라면 꽤 짧은 시간인 것 같지만 그 순간에도 매번 일을 어떻게 하면 더 잘할 수 있을까 생각하고, 지금까지 한 일을 되짚어 볼 수 있었다. 가끔 문제가 잘 안 풀릴 때는 그것을 머리 한편에 두고 푹 쉬거나 다른 일을 하라는 조언들에서 처럼 말이다.


이런 생활을 다시 시작한 지 이제 삼 주 남짓이 흘렀다. 정말 급박한 일이 몰아닥치면 또다시 일을 끊어가지 못하고, 잠자리에 쉽사리 들어가지 못하게 될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 순간이 지나면 다시 한번 생각해볼 것 같다. 그렇게 몰아치듯 달리다가 퍼지지 말고, 조금씩 끊어 가며 긴 호흡으로 했다면 어땠을까 하고 말이다. 사실 그런 생각을 뒤늦게 하지 않기 위해서 이렇게 여유를 잃지 않았을 때 이 모든 것을 기록해 보는 것이긴 하지만 말이다. 그러니 때로는 멈춰야 한다. 조급함에 마음이 뛰어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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