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밤에 비가 내리더니 몸에 스미는 공기가 차다.
이 한 문장을 적기 위해 ‘내리다’와 ‘오다’를 번갈아 입에 머금는다. 비가 내리다. 비가 오다. 어제저녁을 기점으로 내리기 시작한 비는 오늘 새벽이 오기 전에 그쳤다. 열어둔 창문을 통해 수 차례 나를 불렀지만 기어이 나를 적시지 않고 물러섰다. 비는 오지 않고 그렇게 창 밖을 흘렀다.
무더운 여름이라고 했다. 기록적인 폭염이라고도 했다. 더위를 잘 타지 않는다며, 여름은 응당 이렇게 더워야 하는 것 아니냐고 하던 나도 요 며칠은 몸을 가누기 쉽지 않았다. 그런 더위가 간밤의 비 한 줄에 자취도 없이 물러갔다. 사람들은 어제까지의 폭염을 잊은 듯 가을을 이야기한다.
언젠가부터 사계절이 뚜렷함이 꼭 장점은 아니라 생각했다. 어린 시절 교과서 정도는 무시해버릴 수 있을 정도로 머리가 굵어진 탓이다. 사시사철 따뜻하고 살기 좋은 지역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오늘 새삼 사계절을 반가이 여기는 이유는 변화의 자각 덕분이다. 누가 뭐래도 사계절이 사시사철 푸른 곳보다 살기 좋다고 할 수는 없다. 다만 이 곳에서는 결국 끝이 있고 새로운 시작이 있음을 느낄 수 있다. 내리는 비 한 줄로, 몸에 스미는 찬 공기로.
변화는 늘 빠르게 스친다. 오늘처럼 단 한 줄의 비로 예년에 없던 더위가 쫓겨 가기도 하고, 한줄기의 미풍이 바다까지 얼린 추위를 물리기도 한다. 자리에 앉아 그 순간을 잡지 못하면 어느새 익숙한 더위 속에, 견디기 힘든 추위 속에서 다음 가을을, 그다음 봄을 기다리는 내 모습을 발견한다. 하지만 오늘 아침처럼 운이 좋은 날이면, 나는 가만히 앉아서 그 뜨겁던 여름이 끝남을 온몸으로 느낀다.
지난여름은 견딜 수 없이 더웠다지만, 이젠 기억에 남을 뿐이다. 시간은 흐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