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부지, 하부지

세상의 목소리 32

by 익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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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까지 낯을 가리며 제법 얌전을 떨던 조카는 하룻밤을 보내더니 눈에 띄게 활발해졌다. 아침부터 신나게 방과 거실 사이를 뛰어다니다 떡국을 차려 놓자 냉큼 제 엄마 위에 자리 잡고 앉는다. 집에서 같이 챙겨 온 뽀로로가 크게 새겨진 포크로 이리저리 떡국을 헤집더니 떡을 집어 입으로 가져간다. 살짝 입에 떡을 집어넣으려다 이내 다시 꺼내 놓으며, ‘하 뜨거’. 잠시 인상을 쓰다 맞은편에 앉은 외할아버지를 부른다. ‘하부지, 호 해주세요.’ 포크를 쥔 오른팔을 앞으로 쭉 내민다. 포크를 받아 든 아버지는 소리만 ‘호, 호’ 한 뒤 다시 포크를 돌려준다. 떡이 식었을 것 같지 않지만 조카는 맛있다며 꼭꼭 씹어 먹더니 매번 포크 질을 할 때마다 ‘하부지’를 부른다.

조카는 집으로 돌아가기 전까지도 하부지를 찾았다. ‘외삼촌은 혼자 집에 있을까?’ 하니 그러라고 하며 외할아버지와 제 엄마 손을 꼭 잡고 엘리베이터를 탄다. 차에 타서도 힘겹게 ‘빠빠이’를 하고 돌아서기에 넌지시 아버지께 한 마디 건네본다. ‘손주가 그렇게 따르니 흐뭇하시겠어요?’ ‘그래, 오랜만에 봐도 유난히 잘 따르네.’ 아버지는 딱히 좋다 말하진 않지만 미소로 대답을 대신한다. 아들이 못하는 효도를 손주가 도맡아 해 한결 마음 편한 명절이다.


그림 / 정아 (https://www.instagram.com/lint3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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