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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구연산 Dec 23. 2020

취미로 춤을 좀 췄어요

입이 떨어지질 않아요

입이 떨어지질 않는다. 결국 취미로 춤을 좀 배웠어요, 라고 대꾸한다. 가끔 춤을 출 일이 있을 때 '춤 배우셨어요?' 나 '댄서세요?'라는 질문이 들어오면 항상 이렇다. 내적 갈등이 심하다. 왜 나는 댄서라고 떳떳하게 말을 할 수 없을까. 사실 답은 나와 있다. 뭔가 찝찝하고 떳떳하지 않아서. 불확실함과 불안정 때문에.


나에게 직업이란 업으로서 자신의 생활비를 충당할 수 있는 무언가이다. 그런 의미에서라면, 돈을 내고 배우는 춤은 내겐 직업의 기준에 걸맞지 않다. 몇 번의 잔돈벌이와 용돈벌이는 되었다. 심지어 친구의 소개로 잠시 학원 강사 일을 맡기도 했지만, 실력도 모자랐고 학생이 한 명을 빼곤 모두 외국인 영어강사인 탓인지(원래 강사이던 친구는 미국인이었다) 방학 기간이 되자 몇 주만에 수강생 수가 줄어든 탓에 케이팝 강사를 해보면 어떻겠냐는 원장의 제안을 들었다. 무슨 자존심인지 그건 싫다고 하고는 잘리기 전에 그만두고 나왔다. 이른바 명예로운 퇴사. 경력보다는 잠깐의 경험으로 남은 나의 일. 춤.


중,고등학교 시절부터 춤을 추고 대학을 진학한 사람들도 춤 자체만으로 벌어먹기 힘든 세상이다. 강사 일 하나 얻기도 어렵고, 그 학원 강사도 월 수는 어느 학원, 화 목은 어느 학원 이런 식으로 다른 지역을 넘나들며 강사 일을 해야 한다. 그럼에도 생활이 빠듯히 가능하다는 사실도 잘 안다. 그런 세상에서 스물이 넘어 춤을 배운 나는 갈 곳이 없다. 절실함도 없었다. 하지만 하고는 싶어 자꾸 기웃댔다. 그 여파는 학점으로 드러났다.그렇게 학교도, 춤도 미묘하게 어영부영. 학생으로서의 생활과 댄서로서의 생활 역시 100%를 쏟아붓진 않아 결국 학점은 박살이 났다. 춤? 춤 실력도 내 기대치와는 굉장히 멀었다. 나는 그저 그런 사람이 되었다.


사람이 어영부영해지면, 내가 특별히 잘하는 게 없다는 느낌이 들면 자존감이 낮아진다. 자존감이 낮아지면 자존심만 높아진다. 내실 없고 알맹이 없는 그 허상. 허울뿐인 간판. 내가 춤을 출 줄 안다는 사실은 순간의 환심을 사기 좋다. 와 춤 추시는구나. 이런 말을 들으면 순간 으쓱하지만 나는 사실 잘 알고있다. 내가 정말로 댄서다운 댄서라면 있어야 할 곳은 춤판인데 자꾸 춤을 전문적으로 추지 않는 사람들 사이에 껴서 우월함을 느끼고 자괴감에 결국 휩싸일 것을. 무엇보다 내 실력은 별로임을.


한 달쯤 전, 한창 유명세를 탄 앰비규어스 댄스 컴퍼니의 워크샵을 들으러 갔다. 워크샵을 듣던 중  춤을 췄냐는 무용수 분의 말에 괜히 얼버무렸다. 아..예..취미로 좀. 속이 차갑게 식는 기분이었다. 쉬는 시간 마주친 다른 수강생은 춤을 잘 춘다고 나에게 칭찬을 건넸다.얼마나 추셨어요? 7년이라고 대답하려다 괜히 1년을 내려 6년이라고 대꾸했다. 7년이나 6년이나 매한가지겠지만, 7년 춘 춤의 실력이 이거라고 하면 내가 너무 부끄러웠다. 이날 수업은 재밌었다. 기뻤다.하지만 기쁜 만큼 슬펐다. 간만에 춤 다운 춤을 추고 즐거웠다. 그날의 일기에도 생생하게 적혀있다. 다만 집에 돌아오는 기차에서 나는 내내 속으로 혼란스러웠다. 멍했다. 왜 나는 저들의 발뒤꿈치도 못 따라잡았지? 나는 왜 필사적이지 않았지?


나는 왜 아무것도 아니지?


학교를 진학하지 않아서 그래. 핑계다. 내가 아는 학원의 강사는 대학을 가지 않고서도 인정받고, 많은 수강생을 가르치고 있다. 나보다 나이도 훨씬 어린 분이다. 나는 열심히 하지 않았을 뿐이다.


내 선생이던 휘는 종종 말하길 댄서는 본인의 마음가짐에 따라 달라진다 했다. 돈을 벌지 않더라도, 아직 춤 실력이 충분지 않더라도 스스로에게 떳떳하고 자신감을 가져야 하는 업이라고 했다. 그게 있어야 댄서다울 수 있고, 없으면 만들어서라도 마음에 지녀야 할 마음가짐이라고. 내가 가진 걸 확실하게 보여줄 수 있고 남들보다 못해도 그것에 위축되지 않는 그런 모습을 가져야 한다고. 사람이라면 응당 나보다 잘하는 사람에게 열등감을 느낄 수도 있지만 그래선, 그 순간만큼은 아니어야 한다고. 춤을 거진 처음 배우던 2013년의 어느날의 선생님께서도 말했다. 춤을 추는 순간만큼은 네가 세상에서 가장 멋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해, 라고.  


그 마음가짐이 충분히 자리잡지 못했었구나. 그래서 온갖 핑계와 변명을 가져다 댄 것이다. 어느 하나 무게 없고 타당하지 않은 이유가 아니란 걸 알지만, 내가 선택한 길에는 누가 대신 보험을 들어주지 않는다. 뒤를 봐주지 않는다. 떨어지는 나를 잡아줄 사람은 없다. 내가 선택한 길이라면 오롯이 내가 해내야만 한다. 업으로서가 아니더라도 스스로에게 당당한 댄서가 된다는 것. 마음에 찔리는 것 없이, 거리낌없이 나다운 댄서가 된다는 것. 새로운 목표.


현생을 유지하기 위한 단기 아르바이트도 끝났다. 이제 다시 슬슬 학원으로 돌아갈 차례다. 연습실 바닥이 그립고 소리와 몸이 맞춰지는 순간이 그립다. 당당하게 댄서라고 말할 수 있는 나를 상상해본다.


만난 무용수들을 닮고 싶어 아이패드 케이스에 받아온 사인들. 볼 때마다 왠지 찔리는 기분이 들지만, 가끔은 동기부여가 된다






- 퇴고하여 올리는 지금, 코로나와 그로 인한 염려로 인해 한동안 학원을 가지 못했다.(않았다, 라고 써도 어느 정도는 맞겠다만)그래도 1월에 시작하는 2달짜리 클래스를 수강하겠다 신청해 두었다. 감염에 대한 염려 없이 학원을 갈 수 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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