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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구연산 Apr 19. 2023

잘 지내니

못 지낸다.

잘 못 지냈다.

고시원에서 한 달을 지내고 나왔다. 무용단에 견습조차도 아닌 무언가로 들어가서 연습을 했다. 연습실에 나간 지 이틀만에, 작년 공연에 같이 올랐던 일반인 견습이 따로 나를 불렀다. '구연산씨 눈빛이 맘에 안 든다' 라고 했다. 그런 말은 살면서 직접 듣는 게 처음이었다. 눈빛이 맘에 안 든다니. 그가 말했던 것 중 '솔직히 말해보라' 길래 한 마디 했더니 그는 나를 때리려는 시늉을 했다. 사람을 명백히 자기 아래로 봐야 할 수 있는 행동이 아닐까. '하, 내가 참는다'.


그는 서울에 살았고, 나는 서울에 살지 못했다. 그는 일을 하지 않아도 스스로를 부양할 재력이 있는 눈치였고, 1년 동안 매 연습에 나왔다고 한다. 불공평하다고 생각했다. 그 흔한 '누구는 부모 잘 만나서 서울 자가 살고' 가, 이 식상해빠진 말을 하지도, 지금까지 쓰지 않으려 했지만 그 차이였다. 그리고 그는 나를 제외한 모두에게 아주, 아주 친절했다. 그리고 그의 실력은 인정하기 싫었지만 정말 많이 늘어 있었다.


그는 나를 맥일 작정인 눈치였다. 내가 명확히 전달한 사항을 단 5분만에 반대로 전달해 나를 곤란하게 만들었고, 작년에도 생활비를 위해 돈을 버느라 서울 공연 연습에 2주 늦은 나를 힐난했다. 공연에 올라가면 안 될 사람이라고 했다. 나는 사흘 만에 그가 2주간 배운 모든 걸 따라잡았다. 개 같아서라도 잘 하고 만다는 생각으로 그렇게 했다. 그래도 화는 났다. 화가 너무 나고 부글부글 끓었다. 본가에 며칠 들러 병원에 갔다. 복장이 터지겠다고 했다. 약을 하나 추가해줬다. 먹으니 생각은 나는데 화는 덜 끓었다. 불은 켜져 있는데 다른 화구에 냄비를 올린 것처럼.


어쨌든, 예전에 대충 3일 동안 그가  14일 노력한 걸 잡았으니, 대충 계산해서 1/5 시간 안에 그의 실력을 잡겠다는생각으로 연습을 했다. 3개월. 열심히 해보자. 나의 동기가 건강하지 않아도 상관없었다. 친구는 그럴 시간에 무용수를 잡을 마음으로 열심히 하라고 했다. 오. 그거 좋지. 열심히 해봐야겠다. 의욕이 좀 올랐다.


저녁에도 연습에 나가고, 연습이 없는 날에도 나갔다. 버스랑 지하철도 안 탔다. 자전거 타고 다녔다. 연습실 숙소 연습실 숙소. 최선을 다해서 악같이 했다는 얘기는 안 하겠다. 하지만 나름 노력했다.


공연 스태프를 이틀 했다. 원래 위에 말한 사람이 텃세를 부려서 안 하려고 했고, 또 집합 시간을 맞출 수 없어(몇 주 전부터 약속한 안무가와의 인터뷰가 있었다) 그랬는데, 결국 일이 빨리 끝나는 대로 와서 일을 했다.공연은 야외에서 무료로 진행하는 공연이었다.  그나마 영어를 할 줄 알아 외국인들을 좀 많이 데려왔고, 개중 유럽 한 국가의 외교관이 있었다. 그는 정말 무용단을 좋아하는 듯했다. 말이 통하는 거지 내가 급이 되는 게 아니라서 PD를 불러 붙여 놓고 빠져나왔다.


문제는 그 다음이다. 공연이 끝나고 뒷풀이 자리가 있었다. 뒷풀이가 끝날 무렵, 흡연실에 있던 감독에게 다가가 오늘 외교관 분이랑 얘기 잘 했냐고 물었다. 그는 화를 냈다. '너 영어 잘 한다고 해외 투어라도 데려가달라는 거야 뭐야' '너 여기 와서 춤 얘기 한 번이라도 했냐. 와서 누구랑 못 지내는 얘기, 뭐 이번엔 외교관이 뭐?' '너 아니어도 알아서 잘 돌아간다. 이미 알아서 잘 진행되고 있던 일이고' 라고 말한 후 그는 나가 버렸다. 그대로 자리가 파했다.


변명같지만 나는 그냥 인정받고 싶었다. 칭찬받고 싶었다. 아무도 모르는 곳에, 아무도 날 반기지 않는 곳에 가서 나 혼자 나를 오롯이 책임져야 하는 곳에서 나는 황망하고 모든 게 어색했다. 대놓고 내게 적의를 드러내는 사람과 무관심한 타인들, 고시원에서의 소음, 모든 게 어색하고 불편하고 힘들었다. 새로운 환경에서 받던 스트레스는 뇌에게 '누가 나 한번만 괜찮다고 했으면 좋겠다' 라는 핀트 나간 생각을 하게 했고, 이 사달이 난 것이다. 와중에 연습 며칠 빠진 것도 안 좋게 보고 계셨다고 했다. 차마 복장이 터지도록 답답해서 약 처방받느라, 라고는 말 못하고 조용히 있었다.


그 다음 주, 그들은 해외로 투어를 떠났다. 그리고 나는 코로나에 걸렸다. 병원에선 간호사가 대신 호들갑을 떨어줬다. 열이 펄펄 끓는다고. 안 아프냐고. 대꾸할 기력도 없었다. 500m 거리에 있는 병원에 다녀오면서 100미터에 한 번은 주저앉았다. 한 번은 토하고, 한 번은 거의 쓰러지고. 편의점에선 뭐든 비쌀 것 같아 제일 가까운 마트를 검색해 이온음료와 죽을 사들고 들어왔다. 나중에 알고 보니 편의점이나 거기나 100원 정도밖에 차이가 안 났다. 그냥 곱게 들어갈걸.


투어 하루인가 이틀 전, 대표는 내게 전화해 연습실에 나오지 말라고 했다. 유진님과 사이 안 좋은것도 별로 좋게 보이지 않고, 여기는 칭찬받으려고 다니는 게 아니라면서. 코로나로 인해 열에 달떠 맛이 간 나의 변명과 설명 어딘가에 있는 대답을 들은 한숨을 푹 내쉬고는 다녀와서 한 번 얘기하던가..하고 전화를 끊었다. 글을 쓰는 지금, 그는 한국에 돌아온지 벌써 나흘째다. 연락은 없다.


그래서 6개월 준비하고 마음 잡은 나는 겨우 2주 연습 나가고 쫒겨났다. 남은 2주 중 1주는 아파서 골골댔고, 남은 1주는 그나마 다행히 아는 작가와 지인들을 만날 수 있었다. 끊다시피 한 술을 마셔서 많이 토하고 고생했지만, 그래도 나름.. 재밌었다.


만났던 지인 중 하나는 예술계통에 오래 종사한 선생님이었고, '네가 말 안해도 네 노고는 그분들이 다 알고 있는데, 네가 섣불렀다', 와 '더 밝고 활기차게 했어야 한다. 내가 네 성격을 아니까 하는 말이다. 너는 나쁜 사람이 아니다, 연산아. 하지만 네가 사람들에게 밝고 호의적인 인간도 아니지. 더 다가가려고 노력했어야 해' 라고 했다. 등등의 조언을 듣고 사실 이해는 안되지만 인정하기로 했다. 내가 다 맞을 리가 없고, 근 20년간 춤을 춘 선생님의 말이 맞으면 더 맞겠지 싶어서.


그래서 서울 생활을 정리하며 내려오기 직전, 날 싫어하는 그를 찾아가 내가 지방에서 올라와 서툴렀다, 어색하고 적응하느라 쉽지 않아서 더 딱딱한 모습 보였다. 만약 다시 볼 수 있다면 조금 더 편안하게 뵐 수 있으면 좋겠다고 했다. 내 최선의 언어였다. 그를 다시 보건 못 보건, 반갑지는 않겠지만, '갖다 받아버릴까' 하는 심정보다는 어른스럽게 대처한 것 같기도 하고.


나도 대단한 사람이 되어 보고 싶었다. 괜찮은 사람이 되어 보고 싶었다. 뭔가에 열중해 결과물을 만들어내는 사람이 되고 싶었다. 무용수라는 이름표를 달아 보고 싶었다. 겨우 2주 가지고 노력이라고 하기는 뭐하지만, 시도를 더 할 수 있는 기회가 있었으면 했다. 6개월간 고민했으면 고민한 시간만큼은 서울에서 어떻게든 버티며 춤을 춰 보고 싶었다. 그때 꺾였어도 꺾이지, 이렇게 어처구니없는 일들로 집에 돌아오게 될 줄은 몰랐다.


아쉬운 건 내 쪽이다. 살면서 거의 언제나 그랬다. 이번 주가 지나면 대표에게 한 번은 연락을 해볼 것이다. 내가 어리석고 경솔했다. 오만했다. 나이를 서른이나 먹고 잘 몰랐다는 변명이 통하진 않겠지만, 다시 한번만 기회를 달라. 한 달만이라도 다시 함께 연습할 수 있게 해 달라고 할 것이다. 그게 안 되면, 모르겠다. 모든 지인들이 '잘 안 된다' 에 패를 걸었다. 솔직히 나도 그 패에 걸었다. 울면서 매달리든, 웃으며 부탁하든 담담히 이야기하든 그곳은 학원이 아니니까. 프로 무용수들이 작품과 공연을 위해 있는 곳이니까. 거기에 날 싫어하는 비전공자 일반인이 아무렇지 않게 앞으로도 있을 거라는 사실에 부아가 치미는 것도 사실이지만 내가 어떻게 할 수 있는 게 없는 것 또한 사실이다. 세상엔 내가 어쩔 수 없는, 이렇게 허무하게 끝나는 일도 있는 법이다.


친구였던 사람이 하나 생각난다. 그는 한국 3대 고시 중 하나에 합격했고, 그 이후로 나와 연락을 하지 않는다. 다른 지인과 만나고 있던 중 그의 전화는 받은 그의 모습에 충격을 받았다. 그리고 엊그제 혹시나 하는 마음에 다시 걸어본 전화도 받지 않던 게 생각이 난다. 나도 급이 괜찮은 사람이면 얘는 멀어지지 않았을까? 하는 좁고 아둔한 생각도 사실 지울 수 없다. 뭐 비슷한 예가 몇 명 더 있긴 한데, 그건 그대로 두고.


그래서.. 잘 못 지내고 있다. 세상이 나를 억지로 까내린다는 말은 안 어울리지만, 좀 불공평하다는 생각도 들고 나는 왜 이 나이 먹도록 현명하게 처신하지 못하는지도 아쉽긴 하다.


그렇게 지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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