능동적 절망
많은 수의 사람들은 절망이 수동적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그것을 틀렸다. 대부분의 절망은 능동적이다. 아무것도 하지 않았는데 자신에게 불행이 다가온다고 믿는 것은 어리석다. 어떤 분야에서 그 무엇도 노력하지 않았지만 명예와 실리만 찾으려는 행태와 같다고 볼 수 있다. 절망 또한 스스로의 행위 때문에 찾아오는 경우가 다분하다.
일찍 잠에 들지 않으면 아침에 기상하는데 많은 어려움을 느낀다. 어떤 사람은 아침에 일찍 일어나는 것을 불행으로 여기기도 한다. 스스로 만화와 짧은 영상을 시청하기로 선택했으니 이 또한 능동적인 불행일 테다. 다른 예로 모두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위험한 일을 했을 때 닥치는 물리적 손상과, 자신의 화를 주체하지 못해 남에게 상해를 입혔을 때 받는 처벌은 모두 자신이 선택한 능동적 불행이다. 더 나아가 어떤 일이 있을지 미리 예견하지 못해 받는 불이익 또한 자신의 무지 때문에 벌어지는 능동적 불행이다.
여기서 수동적 불행은 아주 적게 일어난다. 각종 매체에서 다루는 사건들을 자주 일어나는 일이 아니다. 때문에 대서특필하여 사람들에게 보도하는 것이다. 옆집 아저씨가 꽃에 물을 주었다고 하여 신문 1면에 나는 일은 없다. 때문에 우리가 걱정하는 수동적 불행은 일어나기 대단히 어렵다. 그리고 그것에 관심을 주고 걱정을 할애하는 것은 효율적이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