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성을 찾아서
웹 소설도 문학 작품이 맞다면, 현대에 가장 인기 있는 글은 단연 판타지 회귀물 또는 미래시 작품이다. 회귀를 하지 않아도 미래를 알고 있어야 하며,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남들보다 쉽게 가늠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러니까, 과거로 돌아간 주인공은 미래에 일어나는 일 대부분을 알고 있어 조금 더 나은 삶은 살아갈 수 있다. 또 자신이 썼거나, 읽었던 소설 속으로 빨려 들어간 주인공 또한 마찬가지로 미래를 예견하며 맞닥뜨린 인생을 더 쉽게 풀어나간다. 이는 현대의 사람들이 얼마나 현실에 지쳤는지를 보여주는 하나의 예라고 볼 수 있다.
물질이 부족해서 현재를 부정하는 것은 이재용이 와도 채워주기 어렵다. 흔히들 이런 말을 하지 않는가. '돈으로 행복을 살 수 없다면 더 큰돈으로 행복을 사면 된다.' 이 이야기는 아주 적확한 말이다. 돈이 늘어날수록 행복도 같이 커지기 때문이다. 그런데 한 가지 주의해야 할 점은 행복이 자라는 만큼 불행도 같은 크기로 성장한다. 물론 자신이 해야 할 일 또한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난다. 그것을 망각하고 그저 돈이 많아지면 행복하겠지, 불로소득을 달성하면 행복하겠지 하는 바람은 절대로 지혜로운 생각이 아니다. 그저 멍청한 망상일 뿐이다. 나라는 사람의 주관도 없이 그저 돈과 물질이 신념이 된다면 그것을 이룬다고 해도 남는 것은 공허와 허무밖에 없을 것이다. 그리고 거대한 자연과 같이 포말을 타고 밀려오는 무료함은 막아낼 수 없다. 그렇기에 우리는 돈 이전에 나를 찾아야 한다. 진정한 나를 말이다.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는 말장난에 불과하다. 과거는 지나갔기에 없고, 미래 또한 오지 않았으니 없다. 당장 심장마비에 걸려 죽는다면 나는 현재에 죽는 것이지 과거나 미래에 죽는 게 아니기 때문이다. 나의 현재가 마음에 들지 않아도 그것이 실재인 것은 변함이 없다. 때문에 나의 지난 시간을 원망하지 않는다. 다가올 행복한 미래를 갈망하지 않는다. 그렇게 현재에 충실하게 하루를 말끔하게 지내고 싶은 마음뿐이다. 그러니 두려움도 없다. 나는 그렇게 나로서 삶을 살아간다. 이동진 평론가의 말처럼 되는대로 살되 하루하루 최선을 다해야 한다는 것이 이 이야기의 논점이다.
더 큰 키를 가지고 싶고, 더 좋은 머리를 얻고 싶은 욕망을 하루아침에 떨쳐낼 수는 없다. 그러나 그 불결한 생각을 미뤄낼 방법은 널리고 널렸다. 쓸데없는 망상이 머릿속을 헤집을 땐 책을 읽거나 노래를 부르며 날려버릴 수 있다. 그것도 안되면 그림을 그리거나 산책을 하는 방도도 있다. 그래도 어렵다면 격한 운동을 하거나 찬물목욕을 하는 것 또한 좋은 방안이다.
나의 개성은 내가 만들어가는 것이고 그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얕게는 남들이 나를 이상하게 볼 수도 있고, 깊게는 기피할 수도 있다. 그러나 내가 하는 행위가 남에게 신체적, 심리적 피해를 주는 게 아니라면 계속해서 밀고 나가는 게 옳다. 개성 있는 사람은 언제나 시기와 질투의 대상이기 때문이다. 지금 내 모습을 있는 그대로 사랑하면 스스로의 개성을 찾아내기 더욱 수월해진다. 그렇게 조금씩 실마리를 찾아가며 다른 누구와도 바꾸고 싶지 않은 나를 발견하면 소소하지만 적확한 행복이 곧이어 모습을 드러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