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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진권 Mar 09. 2024

다수와 소수에 대한 고찰

소수를 선망하는 다수의 사람들




    '나는 맞고 너는 틀리다'라는 말은 명제가 아니기에 진리 또한 될 수 없다. 그런데, 다수에 속해있는 사람들은 대부분 '우리가 맞고 너희는 틀렸다'라는 명제를 내세운다. 그들의 감정에 동화되지 않는 사람들에게는 강력한 철퇴를 가한다. 그리고 그것이 정의라고 크게 착각한다. 다수는 말 그대로 많은 수를 나타낼 뿐 정답도 정의도 아니다.


    그러나, 특이하게도 다수라는 배에 올라탄 사람들은 소수를 따르려고 한다. 그들이 갈망하는 특별함과, 금전적 이득은 전부 소수의 것이다. 부자는 소수고, 그 액수가 올라갈수록 더욱 적어진다. 그러니까, 그들은 소수를 선망하지만, 자신들이 속해있는 다수의 영역에 어울리지 못하는 소수는 배척한다. 더 과감하게 말하자면 돈이 많은 소수는 특별한 사람이라 생각하며 아부를 하고, 돈이 부족한 소수에게는 멸시하는 태도와 함께 도태된 사람이라는 착각을 한다. 이 얼마나 멍청한 행태인가.


    그렇다고 해서 소수가 무조건 옳은 것은 아니다. 무단횡단을 하고 쓰레기를 무단투기하는 소수는 옳지 않다. 남에게 피해를 주며 인도에서 흡연하는 행위나 바닥에 침을 뱉는 소수 또한 완전하게 틀렸다. 바쁜 출퇴근 시간대에 우측통행을 지키지 않고 사람들의 통행을 막고 진로를 방해하는 소수도 옳다고 할 수는 없다. 규칙이라는 틀에 있어서는 대부분 다수가 옳은 경우가 많다. 규칙을 따르는 다수 덕분에 세상은 최대한 안전하게 돌아간다.


    최선의 세상 안에서 개인은 남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 선에서 독자적으로 행동할 권리가 있다. 같이 밥을 먹지 않을 수 있고, 혼자 생활할 수 있다. 술을 마시지 않고 흡연을 하지 않을 수 있다. 쓸데없는 친목을 도모하지 않고, 내 사람만을 챙길 수 있다. 이것을 틀렸다고 말할 권리는 누구에게도 없다. 사회생활이라는 명목 하에 술을 강요하고, 흡연을 강제하는 것은 옳지 않다. 술자리에 속하지 않은 사람을 험담하는 것은 그들의 저열함을 증명할 뿐이다.


    소수 다수 할 것 없이 한쪽에 깊이 매몰되어 다른 방향을 보지 못하는 사람들이야 말로 완전히 틀렸다. 그들은 매번 분기탱천하여 반대편의 사람들을 공격한다. 그렇게 살다가는 한평생 가슴속에 분노만을 축적하며 고통스러운 삶을 살아갈 것이 분명하다. 인간의 몸은 그 불화를 감당하기엔 너무도 연약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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