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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진권 Jun 20. 2024

평범한 하루

괜찮은 하루




    아침 6시에 눈은 뜨지만 쉽게 일어날 수 없다. 아무것도 없는 천장을 10분간 바라본다. 정말 일어나기 싫다. 생각과는 다르게 몸통을 이용한 반동으로 일순간 활기차 보이게 기상한다. 그래야 다음 행동으로 넘어갈 수 있다. 이불을 대충 개고 침실을 빠져나온다. 원래는 씻는 게 먼저였으나, 요즘에는 조금 달라졌다. 가장 먼저 물 550ml를 한 번에 들이켠다. 이후 전기 포트에 물 1L를 넣고 전원을 누른다. 루비아에서 산 디카페인 원두 40g을 그라인더로 가장 굵게 간다. 끓는 물을 주전자에 옮기고, 하리오 V60 03에 종이 필터를 깔고 서버 위에 올려둔다. 그리고 종이가 드리퍼에 착 달라붙게 뜨거운 물을 붓는다. 적당히 예열한 후 서버에 담긴 물을 버리고 주전자에 다시금 뜨거운 물을 채운다. 이후 전자저울에 서버와 드리퍼를 올린 뒤에 갈아 둔 원두를 덜어내고 드립을 시작한다. 핸드드립도 저마다 자신만의 레시피가 있다. 나는 40g의 원두에 100ml를 1분 간격으로 네 번 붓는다. 커피에 조예가 깊은 친구가, 그게 무슨 맛이냐고 부정적으로 물었지만, 먹어보고 생각보다 괜찮다고 평가했다. 실제로 생각보다 맛이 좋다. 이후 800ml 트라이탄 물병에 얼음을 가득 담고, 커피를 붓는다. 결로현상을 방지하기 위해 물병 커버를 씌우고 스타벅스 백에 넣은 뒤 작은 가방에 담는다. 마지막으로 버즈를 챙기고 현관을 나선다.

    근래의 나는 계획을 하긴 하지만, 그것에 목메지 않는다. 하면 좋고, 못하면 어쩔 수 없다는 생각으로 살아가고 있다. 고등학생 때 자정까지 무쇠 철판을 닦던 사람이 가구회사와 무역회사 그리고 영업인을 지나 잡지사 편집자를 하게 될 줄은 누구도 예상할 수 없었을 것이다. 이런 인생을 살아온 나는 앞으로의 삶이 어떻게 될지 감도 잡히지 않는다. 여태까지 세웠던 계획이 정상적으로 흘러간 적이 단 한 번도 없다. 항상 조금은 뒤틀리고 변화되었다. 그리고 아예 달라지기도 했다. 조금도 예상하지 못했던 방향으로 말이다.

    연륜이 깊진 않지만, 생각보다 다양한 풍파를 겪으며 살았다. 사실 그렇지 않은 사람은 없다. 내가 가장 싫어하는 강남 좌파와 염세적인 온실 속 화초 그리고 눈이 맛이 간 대가리 꽃밭도 개인적인 사정은 있다. 이제는 그들을 이해해 보려고 한다. 나 또한 남의 눈에는 내면이 비루한 염세주의자로 보일 수도 있으니까. 사실 좋은 이유 나쁜 이유 할 것 없이 누군가가 계속 생각난다면, 그것은 나와 닮은 구석이 많기 때문일 수도 있다. 동족 혐오라는 말이다. 기분 나쁠 수도 있겠지만, 인정하고 받아들이면 생각보다 마음이 편해진다. 편해지면 동족을 혐오하지 않을 수 있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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