잊을 수 없는 참상
p.17 군인들이 죽인 사람들에게 왜 애국가를 불러주는 걸까. 왜 태극기로 관을 감싸는 걸까. 마치 나라가 그들을 죽인 게 아니라는 듯이.
서평가: 박진권, 제호: 소년이 온다, 저자: 한강, 출판: 창비.
동호가 애타게 찾는 정대는 이미 죽었다. 십자 모양으로 겹겹이 쌓인 시체 틈에 정대가 있었다. 정대는 혼이 되어 자신의 썩어가는 몸을 바라보고 있었다. 혼은 다른 사람의 죽음을 명확하게 느낄 수 있었는데, 정대의 누나 정미도 이미 숨을 다했다. 영혼이 된 정대는 죽기 전부터 죽을 때까지 그리고 사람을 죽인 군인과 그것을 명령한 사람에 대해서 끊임없이 생각했다. 그러던 중 시체 더미들이 다 타고, 뼈만 남았을 때 정대의 혼을 묶고 있던 사슬이 끊어졌다. 자유로워진 정대는 자신을 죽인 사람과 누나를 찾아가려 했다. 그러나, 이내 동호를 찾기로 결심한다. 그러나 수천 개의 불꽃이 피어나고 세상을 덮는 굉음이 울려 퍼졌을 때, 동호마저 죽어버렸다. 어디 있는지도 모르는 동호의 죽음을 선명하게 느낄 수 있었다.
2장의 검은 숨에서 한강 작가님의 숨결이 느껴졌다. 말이 안 되지만, 어쩐지 작가님의 압박감을 간접적으로 체험할 수 있었다. 전개는 자유로웠으나, 그들의 한은 뚜렷하게 느껴졌다. 때문에, 읽는 도중에 여러 번 소름이 돋았다. 이 글을 쓰고 있는 지금도 팔과 등에 오소소 닭살이 돋는 것을 느낀다.
p.57 썩어가는 내 옆구리를 생각해. 거길 관통한 총알을 생각해. 처음엔 차디찬 몽둥이 같았던 그것, 순식간에 뱃속을 휘젓는 불덩어리가 된 그것, 그게 반대편 옆구리에 만들어놓은, 내 모든 따뜻한 피를 흘러나가게 한 구멍을 생각해. 그걸 쏘아보낸 총구를 생각해. 차디찬 방아쇠를 생각해. 그걸 당긴 따뜻한 손가락을 생각해. 나를 조준한 눈을 생각해. 쏘라고 명령한 사람의 눈을 생각해.
그들의 얼굴을 보고 싶다, 잠든 그들의 눈꺼풀 위로 어른거리고 싶다, 꿈속으로 불쑥 들어가고 싶다, 그 이마, 그 눈꺼풀들을 밤새 건너다니며 어른거리고 싶다. 그들이 악몽 속에서 피 흐르는 내 눈을 볼 때까지. 내 목소리를 들을 때까지. 왜 나를 쐈지, 왜 나를 죽였지.
처음으로 책을 읽으며 눈물을 흘렸다. 저 끔찍한 일이 활자를 통해 너무도 선명하게 다가왔기 때문이다. 감히 선명하다 말하기도 민망한 원망들이 나에게서도 느껴졌다. 의문에 의문이 더해졌다. 안타까움에 분노가 곁들여졌다. 좌, 우 할 것 없이 이는 명백한 학살 행위다. 이 모든 일을 직접 겪고 슬픔을 삼키며 애도하는 사람들의 분노의 한마디는 분수대의 물을 잠가 달라는 외침뿐이다. 살아남은 이들은 어떤 잘못도 없이 아직도 고통 속에서 살아간다. 가치가 없는 인간은 오랫동안 잘 먹고, 잘 살다가 똥간에서 생을 마감했다. 어떤 고통도 없이 아주 편안하게 말이다. 그렇기에 이런 책과 영화는 꾸준히 출간, 개봉해야 한다.
p.95 군중의 도덕성을 좌우하는 결정적인 요인이 무엇인지는 아직 밝혀지지 않았다. 흥미로운 사실은, 군중을 이루는 개개인의 도덕적 수준과 별개로 특정한 윤리적 파동이 현장에서 발생된다는 것이다. 어떤 군중은 상점의 약탈과 살인, 강간을 서슴지 않으며, 어떤 군중은 개인이었다면 다다르기 어려웠을 이타성과 용기를 획득한다. 후자의 개인들이 특별히 숭고했다기보다는 인간이 근본적으로 지닌 숭고함이 군중의 힘을 빌려 발현된 것이며, 전자의 개인들이 특별히 야만적이었던 것이 아니라 인간의 근원적인 야만이 군중의 힘을 빌려 극대화된 것이라고 저자는 말한다. 그렇다면 우리에게 남는 질문은 이것이다. 인간은 무엇인가. 인간이 무엇이지 않기 위해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
그녀는 인간을 믿지 않았다. 어떤 표정, 어떤 진실, 어떤 유려한 문장도 완전하게 신뢰하지 않았다. 오로지 끈질긴 의심과 차가운 질문들 속에서 살아 나가야 한다는 것을 알았다.
4장 쇠와 피에서는 지옥에서 살아남은 진수의 인터뷰로 이야기가 시작된다. 모나미 볼펜을 손가락 사이에 끼우며 시작된 고문에 어느새 뼈가 드러난다. 그들은 무고한 사람들의 육신을 통해서 영혼마저 갉아먹었다. 모진 고문을 받고, 정신이 망가진 진수 같은 사람들의 삶은 여전히 나아지지 않았다. 10년이 지나도 그 악몽에서 벗어나지 못해 스스로 생을 마감했다. 세월이 흘러 누구도 슬퍼하지 않게 된 참상을 묵묵히 끌어안고 영원히 눈을 감았다.
p.121 각진 각목이 어깻죽지와 등허리 사이로 비집고 들어와, 자신의 곧은 물성대로 활짝 펴지며 내 몸을 비틀 때, 제발, 그만, 잘못했습니다, 헐떡이는 일초와 일초 사이, 손톱과 발톱 속으로 그들이 송곳을 꽂아넣을 때, 숨, 들이쉬고, 뱉고, 제발, 그만, 잘못했습니다, 신음, 일초와 일초 사이, 다시 비명, 몸이 사라져주기를, 지금 제발, 지금 내 몸이 지워지기를,
5장 밤의 눈동자는 선주의 이야기와 정미의 죽음을 다룬다. 선주 또한 진수와 같이 살아남았음에도 괴로워하고, 끔찍한 고문에 망가진 인물이다. 그녀는 온몸에 금이 간 상태로 위태롭게 살아내고 있었다. 진수는 결국 버티지 못하고 스스로 숨을 멈추었고, 선주는 악몽 속에서 살아냈다. 하지만, 무고한 이들의 고통을 그 무게를 감히 비교할 수 없다. 선주는 스스로 만들어 낸 희생자들의 원망을 받아내며 죄 없는 죄인이 되어 삶을 이어 나갔다. 그렇게 자기를 원망했고, 증오했다. 누구에게도 곁을 내줄 수 없었다. 사람이 사람으로 보이지 않았고, 믿을 수 없었다. 하지만, 누구보다 다정한 사람이 필요했다. 그 사람들을 믿을 수 없다는 것에 대한 고통에 썰물처럼 밀려왔다. 평생 사람을 증오하며, 사람을 그리워했다. 선주는 묵묵히 지옥 속에서 버티고만 있는 것이다.
p.166 삼십 센티 나무 자가 자궁 끝까지 수십 번 후벼 들어왔다고 증언할 수 있는가? 소총 개머리판이 자궁 입구를 찢고 짓이겼다고 증언할 수 있는가? 하혈이 멈추지 않아 쇼크를 일으킨 당신을 그들이 통합 병원에 데려가 수혈받게 했다고 증언할 수 있는가? 이년 동안 그 하혈이 계속되었다고, 혈전이 나팔관을 막아 영구히 아이를 가질 수 없게 되었다고 증언할 수 있는가? 타인과, 특히 남자와 접촉하는 일을 견딜 수 없게 됐다고 증언할 수 있는가? 짧은 입맞춤, 뺨을 어루만지는 손길, 여름에 팔과 종아리를 내놓아 누군가의 시선이 머무는 일조차 고통스러웠다고 증언할 수 있는가? 몸을 증오하게 되었다고, 모든 따뜻함과 지극한 사랑을 스스로 부숴뜨리며 도망쳤다고 증언할 수 있는가? 더 추운 곳, 더 안전한 곳으로. 오직 살아남기 위하여.
마지막 6장 꽃 핀 쪽으로 에서는 어린 자식을 먼저 보낸 동호 어머니의 편지로 이야기가 시작된다. 그녀는 자식의 말을 철석같이 믿고, 시위 참석을 말리지 못했다는 죄책감과, 다른 자식마저 잃는 것이 두려워 찾아 나서지 못하는 죄책감을 평생 등에 지고 살아갔다. 나이에 비해 노쇠한 큰아들과 웃음을 잃은 작은아들의 상황 모두 자기의 잘못이라고 생각했다. 자식을 먼저 보내고도, 목구멍으로 밥을 넘기는 자신을 혐오했다. 똑같이 자식을 잃은 어머니들과 함께 시위에 다녔고, 몸 상하고 마음 상하는 줄 모르고 매일 하얗게 불태웠다. 그로서 먼저 보낸 자식을 애도한 것이다. 햇볕 좋은 밝은 곳을 좋아했던, 기왕이면 저기 밝은 꽃 핀 쪽을 선호했던 아들을 보내지 못하고 계속해서 애도했다. 억지로, 억지로 붙잡으며 애도했다.
p.184 느이 작은형이 알겄다고, 일단 들어가게만 해달라고 언성을 높일 적에 내가 말을 막았다이. 그 아그가 기회를 봐서 제 발로 나올라는 것이여...... 분명히 나한테 약속을 했단게. 이라다가 남은 아들까장 잃어버릴 것 같아서 그렇게 말을 했다이. 그렇게 너를 영영 잃어버렸다이.
가정의 달 5월, 광주는 지옥으로 변했다. 그 참상은 아주 덤덤하게 그러나 묵직하고 명확하게 나에게 왔다. 정신을 빼놓고 미친 듯이 장을 넘기던 순간 소년이 찾아왔다. 실제로 본 것은 아니지만, 분명 실재였다. 헛소리처럼 보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나는 분명 소년을 보았고, 느꼈다. 그렇게 소년이 내게 왔고, 나는 사죄했다. 마음속으로 계속해서 용서를 빌었다.
p.206 특별하게 잔인한 군인들이 있었다. 처음 자료를 접하며 가장 이해할 수 없었던 것은, 연행할 목적도 아니면서 반복적으로 저질러진 살상들이었다. 죄의식도 망설임도 없는 한낮의 폭력. 그렇게 잔인성을 발휘하도록 격려하고 명령했을 지휘관들.
1979년 가을 부마항쟁을 진압할 때 청와대 경호실장 차지철은 박정희에게 이렇게 말했다고 전해진다. 캄보디아에서는 이백만 명도 더 죽였습니다. 우리가 그렇게 못할 이유가 없습니다. 1980년 5월 광주에서 시위가 확대되었을 당시, 군은 거리에서 비무장 시민들을 향해 화염방사기를 발사했다. 인도적 이유로 국제법상 금지되어 있던 납탄을 병사들에게 지급했다. 박정희의 양아들이라고 불릴 만큼 각별한 신임을 받았던 전두환은, 만에 하나 도청이 함락되지 않을 경우 전투기를 보내 도시를 폭격하는 수순을 검토하고 있었다. 집단발표 직전인 5월 21일 오전, 군용 헬기를 타고 와 그 도시의 땅을 밟는 그의 영상을 보았다. 젊은 장군의 태연한 얼굴, 성큼성큼 헬기를 등지고 걸어와, 마중 나온 장교와 힘차게 악수를 나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