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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진권 Nov 22. 2024

잡지사 일대기: 출근은 빠르게, 퇴근은 느리게

너의 공을 치하하지 않는다

출근은 빠르게,

퇴근은 느리게     


매일 8시까지 출근한 후

17시 25분에 퇴근한다.

그러나 연차 사용은 자유롭지 않다.

또한 퇴근 후에도 일을 하고

휴일 근무도 강요한다.

물론 야근, 휴일 수당은 존재하지 않는다.  

   

회사원 박진권, 참고 자료 주관적이고 편향적인 머릿속     




너의 공을 치하하지 않는다

하루에 30개가 넘는 기사를 송출하고, 개인적인 업무를 본다. 물론, 회사의 온갖 잡일도 내게 넘어오기 일쑤다. 사장이 지시하는 이상한 기사도 리라이팅 후 송출해야 한다. 이 국장은 자기의 일을 떠넘기고, 김 국장은 말을 길게 늘어뜨리며 반복하며 시간을 잡아먹는다. 강 상무는 여전히 온갖 잡일을 지시하고, 올린 기사를 올렸냐고 반복해서 묻는다. 물론 항상 게시되어 있다. 이 회사에서 나의 책무는 무엇인지 가늠하기 어렵다. 잡일 담당인지, 청소부인지 모르겠다. 혹여 심부름꾼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상무가 나를 부르는 호칭은 네 개다. 가장 많이 부르는 ‘야’와 ‘너’를 그리고 ‘저기야’와 ‘박 기자’가 있다. 나는 이 회사에서 무엇일까.


회사에서 나를 찾을 수는 없다. 찾고 싶지도 않고, 찾아서도 안 된다. 내가 이곳에 있는 이유는 그놈의 경력직으로 가기 위해서다. 이 바닥에서 전공과 관련 없는 30대 초심자가 경력 쌓기는 하늘에 별따기다. 특히 과거의 직장이 이 일과 전혀 무관한 사람은 취업 자체가 어렵다고 보면 된다. 자기소개서를 아무리 깔끔하게 써도, 여러 포트폴리오를 만들어도, 교정과 교열 그리고 윤문에 아무리 자신이 있어도 다 소용없다. 어떤 증명이 없다면 지금과 같은 최악의 직장에서 버텨내야만 한다. 그게 신입이 할 일이다.     


처음에는 회사에 도움이 되고 싶었다. 잡지의 표지를 조금 더 젊고 예쁘게 만들어 젊은 층의 관심을 끌고 싶었다. 하지도 못하는 디자인도 해보고, 여러 의견도 제시했다. 표지만 예뻐져도 주요 소비 세대의 관심을 얻을 수 있다고도 말했으나, 회사는 요지부동이었다. 그리고 선택된 표지와 그 디자인은 눈을 감게 만들었다. 그렇게 점점 귀도 막고, 입도 닫았다. 그저 시간만, 아까운 시간만 죽이고 있다. 이렇게 시간만 지난다고 경력이 되지 않는다는 것은 아주 잘 알고 있다. 그럼에도 달리 방도가 없다. 주체적으로 무엇을 해볼 수 없으니 말이다. 계속해서 시간만 죽이는 시간 살인마가 되어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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