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의 공을 치하하지 않는다
회사원 박진권, 참고 자료 주관적이고 편향적인 머릿속
하루에 30개가 넘는 기사를 송출하고, 개인적인 업무를 본다. 물론, 회사의 온갖 잡일도 내게 넘어오기 일쑤다. 사장이 지시하는 이상한 기사도 리라이팅 후 송출해야 한다. 이 국장은 자기의 일을 떠넘기고, 김 국장은 말을 길게 늘어뜨리며 반복하며 시간을 잡아먹는다. 강 상무는 여전히 온갖 잡일을 지시하고, 올린 기사를 올렸냐고 반복해서 묻는다. 물론 항상 게시되어 있다. 이 회사에서 나의 책무는 무엇인지 가늠하기 어렵다. 잡일 담당인지, 청소부인지 모르겠다. 혹여 심부름꾼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상무가 나를 부르는 호칭은 네 개다. 가장 많이 부르는 ‘야’와 ‘너’를 그리고 ‘저기야’와 ‘박 기자’가 있다. 나는 이 회사에서 무엇일까.
회사에서 나를 찾을 수는 없다. 찾고 싶지도 않고, 찾아서도 안 된다. 내가 이곳에 있는 이유는 그놈의 경력직으로 가기 위해서다. 이 바닥에서 전공과 관련 없는 30대 초심자가 경력 쌓기는 하늘에 별따기다. 특히 과거의 직장이 이 일과 전혀 무관한 사람은 취업 자체가 어렵다고 보면 된다. 자기소개서를 아무리 깔끔하게 써도, 여러 포트폴리오를 만들어도, 교정과 교열 그리고 윤문에 아무리 자신이 있어도 다 소용없다. 어떤 증명이 없다면 지금과 같은 최악의 직장에서 버텨내야만 한다. 그게 신입이 할 일이다.
처음에는 회사에 도움이 되고 싶었다. 잡지의 표지를 조금 더 젊고 예쁘게 만들어 젊은 층의 관심을 끌고 싶었다. 하지도 못하는 디자인도 해보고, 여러 의견도 제시했다. 표지만 예뻐져도 주요 소비 세대의 관심을 얻을 수 있다고도 말했으나, 회사는 요지부동이었다. 그리고 선택된 표지와 그 디자인은 눈을 감게 만들었다. 그렇게 점점 귀도 막고, 입도 닫았다. 그저 시간만, 아까운 시간만 죽이고 있다. 이렇게 시간만 지난다고 경력이 되지 않는다는 것은 아주 잘 알고 있다. 그럼에도 달리 방도가 없다. 주체적으로 무엇을 해볼 수 없으니 말이다. 계속해서 시간만 죽이는 시간 살인마가 되어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