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인 ADHD
나는 성인 ADHD다. 그래서 아침마다 머릿속으로 이렇게 되뇐다. ‘이불부터 개자.’ 그리고 거실로 나와서 바로 화장실로 향한다. 그때 불현듯 머리에 어떤 생각이 떠오른다. ‘아, 영양제 먹어야 하는데. 혹시 까먹을 수도 있으니까, 정수기로 물부터 받아 놓을까?’ 이럴 땐 의식적으로 이렇게 생각해야 한다. ‘아니야, 일단 씻자. 하나씩, 하자’, 다 씻고 난 후에도 상황은 달라지지 않는다. ‘잊기 전에 약 먼저 먹자’, ‘아니야 스킨로션 바르고 머리 먼저 말리자’. ‘아니야 간단하게 옷부터 먼저 입자’, ‘식물들 물은 줬나?’, ‘어제 노트북은 껐나?’. 그렇게 우선순위 관련 생각이 머릿속에서 끊임없이 떠오르고, 결국 하는 행동은 어제 읽었던 책을 서재에 가져다 두는 것이다. 이런 큼지막한 생각들 사이사이로 설명할 수 없는 온갖 잡생각도 계속 끼어든다. 눈을 뜬 그때부터 단 한 순간도 빠짐없이.
글 박진권
*단어 디토 소비: 유명인이나 저명한 학자 또는 그런 컨텐츠에서 제시하는 학술적 단어 또는 비학술적 단어를 좋을대로 해석하여 유행어처럼 사용하는 것.
단어마저 디토 소비하는 세상이 도래했다. 이것의 가장 큰 문제는 배척이고, 다음으로 허세 또는 망상이다. 메타인지가 되지 않는 사람이 사이코패스, 소시오패스, 나르시시즘 등을 설명하는 영상이나 책을 보고 타인을 배척한다. 간혹 선동까지 자행하여 ‘왕따 및 괴롭힘’을 주도하는 사람도 있다. 물론 자신은 사회의 암적 존재를 배척했다는 이상한 영웅 심리에 취해 있어 잘못을 인지하지도 못한다. 그들은 애초에 인지가 결여되어 있다. 그런데, 언젠가부터 성인 ADHD도 디토 단어에 포함된 듯하다. 병원에서 검진받은 게 아닌 인터넷에서 쉽게 볼 수 있는 자가검진으로 스스로 성인 ADHD라고 판명한다. 그중 대부분은 병원 문을 열어보지도 않았을 것이고, 또 대부분은 평생을 살아오면서 ADHD로서 힘듦을 경험하지 않았을 것이다.
ADHD와 비슷하게 ‘경계선 지능’이라는 단어도 디토 소비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심지어 이것은 장애도 아닌데, 이 단어를 남용하는 사람들은 ‘장애’라는 말을 붙여 비하 단어로 사용하는 게 일반적이다. 이전에는 난독증이라는 단어가 유행이었다. 글자를 읽지 못하는 질환인 ‘난독증’은 독해력과 아무런 관계가 없는 병이다. 기초 단어를 읽는 것조차 일반인들과는 아예 다른 방식으로 교육되기 때문이다. 독해력이 부족한 사람은 그저 ‘오독’을 하는 것뿐이고, 그것이 반복되는 사람에게는 차라리 오독증이라고 하는 게 더 맞는 말일 수도 있다. 이처럼 단어를 넘어 병에도 디토 소비를 하는 몇몇 한국인들은 관심받지 못해 미친 사람일 가능성이 높다. ‘세상의 모든 특이한 것’에 집착하는 것이다. 병은 힙한게 아닌데 말이다.
성인 ADHD는 질환이다. 치료해야 하는 병이라는 소리다. 특이한 것도, 특별한 것도 아니다. 멋진 것은 더더욱 아니다. 혹자는 성인 ADHD라면서 어떻게 글을 쓰고 책을 읽느냐고 묻는다. 모든 게 훈련이다. 끊임없는 잡생각 중에도 가장 굵직한 생각에 집중하며 글을 쓴다. 책을 읽을 땐 약 10분에서 15분마다 의식적으로 집중한다. 밑줄 긋고, 메모하고, 다시 읽고, 다시금 메모하고, 또다시 읽고, 그제야 서평을 작성한다. 책 한 권 읽을 때마다 순수 독서 시간만 12시간에서 24시간이 소요된다. 내가 만약 독서할 때 밑줄 긋기와 메모하지 않고, 서평도 작성하지 않으면 그저 염불 외는 것과 다름없는 행위가 된다.
10년 전에도, 5년 전에도 내 꿈은 변함이 없다. 떠오르는 생각 그대로 두고, 흘러가는 생각도 그대로 두는 삶. 그럼에도 살아가는 데 아무런 문제가 없으며 타인에게 미움받지 않는 삶. 한적한 공간에서 평생 읽고 쓰기에만 집착하는 삶. 그러나 나의 현실은 현대 사회에 적응하며 살아내야 하기에 한 가지에 집착해야만 하는 사람이 되었다.
우리와 관계되는 일이나 사건은 완전히 따로따로, 아무 질서나 상호 관계도 없이 뚜렷한 대조를 이루며, 즉 그것이 우리의 일이라고 하는 것 외에는 아무런 공통점도 없이 복잡하게 뒤섞여서 나타난다. 그러니 그러한 사정에 보조를 맞추려면 우리도 그런 문제를 두서없이 생각하고 염려해야 한다. 따라서 우리가 한 가지 문제를 처리할 때는 다른 모든 문제에 구애받지 말고, 그 일에서 벗어나 모든 문제를 그때그때 처리하고 즐기며 감내해야 한다. 즉 다른 문제에는 전혀 개의치 말아야 한다. - 쇼펜하우어의 행복론과 인생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