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로소 채워지는 것
버릴 때가 되어서야 내가 얼마나 많은 것들을 소유하고 있었는지 알게 된다. 나는 매해 12월마다 무조건 대청소를 진행한다. 닦고, 쓸고가 아닌 잡동사니를 버리기 위한 청소다. 쓸모없는 물건들이 50L 포대 자루에 가득 담긴다. 아깝다는 생각이 스쳐 지나가도 무아지경으로 버리는 것에 집중한다. 한 해의 소비 금액이 800만 원쯤이라 분명 과소비를 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50L의 쓰레기는 금액만 줄었을 뿐 결국 의미 있는 소비는 하지 못했다는 증거이기도 하다. 이 연례행사도 벌써 5년째, 250L의 쓰레기를 배출했다. 언제쯤, 이 행사가 끝날까….
글 박진권
폐기물로 버려야 하는 것은 포대 자루에, 쓰레기는 종량제 봉투에 버린다. 플라스틱 등 재활용이 가능할 것 같은 것들은 하얀 봉투에 담는다. 이 쓰레기봉투를 한 곳으로 모으면 대략 50L 종량제 봉투에 들어갈 부피다. 대체 언제 이렇게 사 모았는지 혀끝이 씁쓸해진다. 대체로 개인적인 소비는 보통 도서를 구매할 때만 했다고 생각했는데, 아닌 모양이다. 1월이 되면 ‘이번에는 정말’ 사지 않고, 모으지 않겠다고 다짐하지만, 결과는 늘 50L의 쓰레기다. 그 쓰레기의 주인공은 대체로 다이소에서 구매한 ‘신기해 보이는’ 물건이다. 막상 구매 후 집으로 돌아오면 몇 번 쓰지 않고, 서랍장 구석에 박혀 기억에서 저물어 사라진다. 실리콘 빨대 덕분에 200개가 넘는 플라스틱 빨대도 쓰레기가 된다. 연말의 소소한 모임에서 발생한 와인과 위스키병도 한몫한다. 집을 꾸미는 데 사용한 부자재, 커피용품과 독서 관련 물건들까지 참 착실히 모았다. 물론, 2년 동안 잘 쓴 이불, 침구류 덮개도 큰 부피를 차지한다. 내가 무엇을 사고 버리는지 명확하게 정리해 둔 적이 없다. 그저 구두로만 더 이상 쓰레기를 만들지 않겠다고 다짐할 뿐이었다. 듣는 이는 믿지도 않고 관심도 없는데, 매해 그런 행위를 반복했다.
과거에는 더 심했다. 구매한 물건 또는 가게의 명함을 버리지 못했다. 어쩐지 추억이 깃들어 있는 듯해서 함부로 처분하기 어려웠다. 매형 집의 작은 방에서 얹혀살면서 그 공간에 온갖 추억들을 수집했다. 혹자처럼 수집을 목적으로 피규어나, 캐릭터를 모으는 것도 아니다. 무엇을 모으는지 모르는 상태로 계속해서 모을 뿐이었다. 아직도 버리는 게 쉽지만은 않다. 어쩐지 추억을 버리는 것 같아 아쉬움이 남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매해 그 넘치는 추억들을 쓰레기봉투에 눌러 담는다. 어차피 추억은 머릿속에 있고, 글로 기록되고, 곁에 남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물건이 추억을 만드는 게 아니라, 사람이 추억을 간직하는 것이다. 그렇게 나는 버림으로써 비로소 채워짐을 느낀다.
우리는 자신이 갖지 않은 것을 보면 곧잘 ‘이게 내 것이면 어떨까?’ 하는 생각에 아쉬워한다. 하지만 그 대신 가끔 “이게 내 것이 아니라면 어떨까?”라고 물어보는 것이 좋을 것이다. 내 말은 우리가 지닌 것을 잃고 나면 어떤 기분이 들까 하는 측면에서 바라보도록 노력하라는 것이다. 잃어버리는 것은 재산, 건강, 친구, 애인, 아내, 아이, 말, 개 등 무엇이든 상관없다. 대체로 잃어버리고 나서야 그러한 것의 가치를 알기 때문이다. 반면에 여기서 권유한 식으로 사물을 바라보면 우리는 그러한 것을 소유하고 있는 사실에 즉시 예전보다 더 행복해질 것이고, 잃어버리지 않도록 온갖 대책을 강구할 것이다. - 쇼펜하우어의 행복론과 인생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