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거 없는 자신감
취침 전, 기상 후 눈을 감고 읊조린다. “이해하겠습니다. 사람을 싫어하지 않겠습니다.” 타인을 미워하고, 험담하고, 싫어하는 것은 어떤 이점도 없다. 누군가를 미워하는 마음은 부정적이라 바람직하지 못한 것을 거듭 생각하게 된다. 험담은 결국 상대방의 귀에 들어가기 마련이고, 결국 나에게 돌아온다. 싫어하는 것엔 자연스럽게 이유가 붙기 마련이고 그러한 구실이 쌓여 사방이 막혀있는 투명하고 높은 벽을 만든다. 타인을 고스란히 볼 수 없고, 온전하게 대화할 수 없는 보이지 않는 벽이다.
글 박진권
발전하고자 원하는 사람은 질투를 멀리해야 한다. 열등감을 강하게 느끼는 사람만이 누군가를 강렬하게 질투할 수 있다. 자신감이 넘치고 자존감이 높은 사람은 누군가를 과하게 질투하지 않는다. 그럴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집사는 개와 고양이가 부러울지언정 질투를 느끼진 않는다. 성인은 청소년들의 찬란함을 시기하지 않는다. 스스로 어떤 능력이 있고, 그 능력을 가감 없이 발휘하고 있는 사람은 타인을 질투할 수 없다. 애초에 그럴 시간이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들은 오롯이 과거의 본인에게만 질투심을 느낀다. 과거의 나보다 성장해야 한다는 부채감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혹여라도 옛 저작물이 현재의 저작물보다 좋게 느껴지면 심한 괴리감을 경험하기도 한다. 물론 이에 따른 질투심은 일반적인 시기와 샘이 아닌 향상심에 기인한다.
절제된 사람은 사소한 것에도 행복을 느끼기 때문에 질투하지 않는다. 애초에 남의 것을 탐하지 않기 때문이다. 욕망은 모든 인간에게 존재한다. 성인은 그러한 부정적 감정을 배제하는 게 아니라 절제할 뿐이다. 절제된 욕망은 원체 좁아서, 질투 같은 사소한 감정이 끼어들 틈이 없다. 물론, 한 번의 절제로 바뀌는 것은 없다. 그러나 거듭된 절제는 사소한 행복을 불러온다. 아침에 일어나 세안하는 중간에도 어쩐지 행복감을 느낀다. 출근하며 듣는 노래에 살며시 미소가 지어진다. 가족과 연인 그리고 친구의 연락 덕분에 마음에 안도감이 샘솟기도 한다. 이렇듯 절제가 훈련된 사람은 사소한 행복을 자주 느낄뿐더러 자존감도 높아진다. 본인의 능력까지도 절제하기 때문이다. 더 할 수 있고, 더욱 좋은 결과물을 내보일 수 있지만 절제한다. 노자의 도교 사상처럼 매번 온 힘을 다하지 않고, 칠에서 팔 할 이상의 힘으로 오래 가는 것을 목표로 두는 것이다. 본인의 잠재력을 명확하게 알고 있기에, 자신감도 올라간다. 절제 덕분에 자만과 교만의 함정에 빠지지도 않는다. 이런 사람들에게 질투는 없는 감정이라고 해도 무방하다.
질투는 인간의 자연스러운 감정이다. 그럼에도 질투란 악덕인 동시에 불행이다. 우리는 질투를 행복의 적이라 간주하고 악마로 보아 없애도록 노력해야 한다. 이에 대해 세네카는 멋진 말로 우리에게 지침을 준다. 사람들이 질투하는 것은 그들이 얼마나 불행하게 느끼는가를 나타낸다. 사람들이 남의 행동거지에 끊임없이 주의를 기울이는 것은 그들이 얼마나 무료한가를 나타낸다. 자신의 것을 남의 것과 비교하지 말고 즐기도록 하자. 다른 사람이 행복하다고 괴로워하는 자는 결코 행복하지 못할 것이다. (『분노에 대하여』 제3권 30장) 많은 사람이 너보다 앞서 있다고 생각하지 말고 많은 사람이 너보다 뒤처져 있다고 생각하라. (『서간집』 제15권 11통) - 쇼펜하우어의 행복론과 인생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