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불행에 대항하는 사람

무자비한 불행

by 박진권

불행에

대항하는 사람


인간은 스스로 원하지 않은 불행을 마주하게 되어 있다. 그 불행을 인식하고도 외면하는 것은 어리석은 행동이다. 외면할수록 불행의 크기는 기하급수적으로 커진다. 더 이상 미룰 수 없을 때 불행은 전염된다. 개인인 손쓸 수 없게 되는 것이다. 그 불행은 주변의 소중한 사람에게까지 번진다. 불행을 숨기고, 피한 인간은 사랑하는 사람들에게도 외면받는다. 그들의 말로는 고독사로 정해져 있다. 해소되지 않은 불행은 영혼이 빠져나간 시체에서도 떠나지 않는다. 침구류와 바닥에 눌어붙어 부패하고, 악취를 뿜어내며 온갖 종류의 시체 벌레들이 꼬인다.


박진권




무자비한 불행

공부가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을 때 그 행위를 스스로 강제해야 한다. 사회생활에 치여 넝마가 된 몸은 그 생각을 실현하지 못한다. 그렇게 상상으로 만들어 낸 ‘공부하는 나’는 허구이며 거짓된 공중누각이다. 신기루와 다름없다. 모든 게 허상인 것을 알게 되었을 때 찾아오는 상실감은 견디기 어렵다. 마치 정말 내 것을 잃어버린 것 같은 허탈함이 느껴지기 때문이다. 공부를 꼭 해야만 하는 순간이 다가오면 너무 늦는다. 그것은 하지 않을 수 없는 순간일 뿐이지, 행동하기 좋은 순간은 아니기 때문이다. 가장 좋은 순간은 언제나 ‘바로 지금’이다.


운동도 마찬가지다. 퇴행 될 대로 퇴행 된 몸은 되돌리기 어렵다. 보편적인 인간의 정신력을 기준으로 하면 불가능하다고 봐도 무방하다. 음식물 섭취 제한도 못 하는 인간이 퇴화한 몸을 복구한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그러니 그 전에 꾸준한 운동을 해야만 하고, 적절한 섭취를 지속해야 한다. 나온 배를 집어넣는 것보다, 고픈 배를 참는 게 훨씬 쉽다. 망가진 관절에 주사를 쑤시는 것보다, 관절이 괜찮을 때 유지하는 게 만만하다.


나이가 들면 관계도 좁아지기 마련이다. 자연스러운 현상이라 크게 걱정할 필요는 없다. 다만, 가끔 차 한잔하며 추억을 이야기할 사람이 없는 것은 문제다. 무분별한 만남 속에서 알코올을 섭취하는 것을 말하는 게 아니다. 그것들은 허상이기에 있으나 마나 한 인연이다. 여기서 말하는 추억을 이야기할 사람은 가족, 연인, 친구를 말한다. 도움을 주고받은, 시련을 극복한, 유년을 보낸, 그 함께한 기억을 공유한 사람이 가족이고 연인이며 친구라고 할 수 있다. 그런 이가 단 한 사람도 없다면 당장 지금이라도 노력해야 한다. 사랑하는 사람이 없고, 사랑받지 못하는 사람은 일순간, 이 세상에 있어야 할 이유를 잊는다. 그렇게 삶을 잃을 수도 있다. 만약 살아간다고 하더라도, 허수아비처럼 멍청하게 서 있을 것이고, 바다에 떠다니는 빈 깡통처럼 정처 없이 떠다니다가 결국 수면 아래로 가라앉을 것이다.


외부에서 가해지는 강제는 가차 없고 인정사정없으며 무자비하다. 그 때문에 외부에서 강제가 가해지기 전에 자기 강제에 의해 선수를 치는 것이 현명하다. - 쇼펜하우어의 행복론과 인생론.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