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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은 왜 일해야 하는가

나만의 인생

by 박진권

인간은 왜

일해야 하는가


밤에 잠을 이루지 못하고 계속해서 작은 화면만 직시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날 하루가 인상적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또는 굉장히 불편했을 가능성이 높다. 개인의 하루를 완연하게 연소하지 못했다는 기분. 회사에서 대략 12시간 이상을 소비하는 대한민국 직장인들은 오롯이 자기만을 위한 시간을 갖기 어렵다. 24시간 중 9시간은 회사에서 보내고, 3시간은 지하철에서 소비한다. 1시간은 출근 준비를 위해 할애하고, 나머지 1시간은 퇴근 후 집안일에 소모된다. 그리고 현대인이라면 자기 계발에 최소 1시간은 투자한다. 마지막으로 인간은 꼭 8시간을 자야만 한다. 저녁밥을 먹고 나면 온전한 개인의 여가 시간은 최대 30분밖에 남지 않는다. 만약 1시간이라도 야근해야 한다고 하면 개인 정비 시간은 –30분이다. 수면시간을 줄여야 한다는 소리다. 이 모든 불만과 스트레스를 쉽게 해소하는 방법이 있다고 한다면 거부할 이간은 많지 않다. 기준치 이상으로 높아진 코르티솔을 낮추기 위한 응급처치다. 물론, 그로 인해 수면시간이 줄어들고, 자기 계발에 소홀해지며 다시금 스트레스 수치가 높아지는 악순환은 끊임없이 반복된다.


박진권




나만의 인생

현실적으로 퇴사를 결심하는 게 쉬운 것은 아니다. 그런데, 그 현실도 어쨌든 살아 있어야 생각할 수 있지 않나. 현재에 내가 있어야 현실도 존재한다. 현실을 위해 현재의 나를 갈아 넣는 것은 올바른 인생이라고 하기 어렵다. 인간에게 중화 작용은 필수다. 하루에 8시간 일했으면 8시간의 개인 시간도 있어야 하고, 나머지 8시간의 완전한 휴식도 필요하다. 하루 24시간 중 최소 14시간에서 최대 16시간을 확보할 수 있는 상태를 만들어야 한다. 닷새 동안 고생한 몸이 이틀 만에 회복되긴 어렵다. 때문에, 이레를 일한다고 해도 매일 16시간의 자유 시간이 완전하게 보장된다면 인간은 더욱 성실해지고, 행복할 것이다. 우리는 좋지 못한 감각이나 경험의 반대를 놓치고 있다. 헤어짐이 있으면 다음을 기약하거나 새로운 만남이 필요하다. 다친 사람은 회복의 경험을 얻고, 불행했던 사람은 행복의 감각을 이해하고 극복이라는 경험을 얻는다. 열심히 일했다면 당연히 열심히 쉬는 게 옳다.


도망친 곳에 낙원은 없다. 그러나 버틴다고 해서 극락으로 가는 것 또한 아니다. 승려들이 하는 수행은 고단하지만, 환경을 살펴보아야 한다. 절은 보통 공기 좋고 풍경이 아름다우며 해가 잘 비치는 곳에 있다. 서울이 아니라면 사람이 붐비지 않으며, 지향하는 바가 다른 사람들과 부딪힐 일이 현저히 줄어든다. 출근과 퇴근도 없고, 오직 수행만 있기에 머리가 복잡하지 않다. 정상적인 절이라면 그곳에 학대는 없다. 스님들의 고단은 그들을 단단하게 만들고 성장케 할 가능성이 높다. 반면 속세에서 살아내려고 바쁘게 움직이는 사람들은 버티는 것이 옳다고만 보기 어렵다. 나와 맞지 않는 일, 아무런 보람이 느껴지지 않는 일, 매번 나를 괴롭히는 동료 또는 상사, 너무도 고된 출퇴근, 만족하기 어려운 월급에서 버티기만 한다고 해서 낙원이 찾아올 일은 없다. ‘버티는 게 이기는 거야’라는 말은 승리의 기준이 다르기 때문이다. 버텨서 진급은 했지만, 스트레스도 따라서 진화하는 경우. 스트레스는 일반적인 월급으로 해소되지 않는다. 아무리 오래 버티고, 돈을 많이 벌어도 설령 억만장자가 된다고 해도 자아를 잃은 사람은 결국 불행에 가까워진다. 명확하기만 하다면, 본인 할 일을 찾는 것이 더 현명할 수도 있다. 맞지 않다면 과감하게 탈피해야 한다. 탈피하지 않으면 날 수 있을지 없을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단순히 사상에 의해 그러한 인상을 완전히 압도할 수 없는 경우에는 어떤 인상(Imagination)을 이와 반대되는 인상에 의해 중화시키는 것이 가장 좋은 방법이다. 예컨대 모욕당했을 때는 우리를 높이 평가하는 사람을 찾아가고, 위험이 닥칠 때는 그것에 맞서 싸우는 사람을 실제로 관찰해 그런 인상을 중화시키면 된다. - 쇼펜하우어의 행복론과 인생론.


*철학 용어

인상(Imagination): 감각이나 경험에 의한 마음속에 남는 흔적 또는 느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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