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녹색 계열을 좋아한다. 누군가 무슨 색을 좋아하냐고 묻는다면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녹색이라고 말할 정도로 사랑한다. 때문에 물 잔과 받침 그리고 안경집과 연필 등등 식기류부터 사무용품까지 다양한 것들이 모두 녹색 계열이다. 이 정도면 강박이 아닐까 싶을 정도로 녹색을 마음껏 흠모하고 있다.
그래서인지 열두 달 중 오월 달을 제일 좋아라 한다. 모든 것이 피어나고, 생성되는 오 월은, 사 월의 벚꽃이 지고 난 후 가장 영롱한 초록빛을 뽐낸다. 찬란한 초록색을 품은 나무들과, 풀처럼 자연의 녹색을 보고 있자면 마음에 평안이 깃들고, 희망이 샘솟는다.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고, 우울이 깊이 드리웠을 때조차 녹색은 내게 위안으로서 다가왔다.
그러므로, 내게 있어서 녹색은 새로운 시작의 계기이자, 회복의 시초라고 할 수 있다.
[삼각형이 아니라 삼각기둥이라고 수민은 말했다]
[망상]
태생적으로 함께 어울리는 게 어색한 사람이 있다. 그런 인간들은 대개 소심하고, 소극적인데, 사회는 그것을 용납하지 않는다. 혼자 있는 것을 편안해하는 사람은 회사로 보내고, 사회성이 부족한 사람에게는 부적응자라는 오명을 덮어 씌운다. 그래서 아무리 내향적이고, 혼자 있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일지라도 나서서 대화를 주도할 줄 알아야 하며, 여럿이 함께 어울리는 것을 연습해야 한다. 실제로 세상을 혼자 살아가는 것은 불가능한 게 맞기에 점차 수긍하며, 실재하지 않는 여러 명의 나를 만들어낸다.
그렇게 내향적인 사람이 외향적인 척하면 어느샌가 공격성이 배태된다. 타인의 말을 그대로 듣지 않고, 스스로 꼬아서 이해하거나 혼자만의 망상에 빠져 상대를 범인으로 치부하고 유죄 판결을 선고한다. 진실은 자신의 뇌에만 있다는 그 멍청한 확신 때문에 상대의 진심을 확고하게 부정하는 데 온 힘을 다 한다. 그렇게 점점 스스로를 도태시키는 데 큰 일조를 가한다. 그리고 나지막이 읊는다.
"세상과 사람들은 모두 미쳤어."
[프린트를 모을 때는 더블 클립이나 날클립이 좋아]
[우울]
진정 행복한 게 맞을까 하는 공상에 사로잡혀 아무것도 하지 못할 때가 있다. 혹은, '해야 할 일을 뒤로하고 그저 쉬면서 우울하고 싶다.'는 게 맞을 수도 있다. 그럴 때마다 나는 자책하지 않고, 충분히 슬퍼하며, 충족될 만큼 우울해한다. 그렇게 혼자서 넉넉하게 쉬며 방전된 기력을 보충한 후에 다시금 천천히 행복해보려고 노력한다. 나는 항상 행복한데, 빌어먹을 망상에 사로잡혀 우울을 마음속으로 초대한다는 것을 명백하게 인식하고 있기에 할 수 있는 방법이다. 그렇게 누구나 할 수 있는 방식으로 어두웠던 하루를 묵묵하게 버텨낸다. 그래야만 다음 아침을 정상적으로 맞이할 수 있을 테니까 말이다.
[시와 수필과 나와 만년필 세 자루]
[작문]
열다섯 살 때 썼던 글이 생각난다. 당시에 봤던 반전(전쟁을 반대함) 영화를 토대로 전쟁에 대한 경각심과 그에 따른 종말에 관련된 글을 썼던 것 같다. 그 종말의 원인은 당연히 세계 3차 대전이었는데, 글을 쓰면서도 너무 터무니없는 생각이라고 치부하며 창작을 이어나갔다. 나는 휴전 중인 국가에서 살아가고 있지만, 21세기에는 절대로 전쟁이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고 믿고 있었기 때문이다.
2022년 지금은 열강 중 하나인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했다. 나는 안타깝다는 감정이 생성되기 전에 열다섯 살 때 썼던 전쟁 소설이 떠올랐다. 십오 년 전에 썼던 21세기 전쟁을 다룬 소설을 이제 와서야 다시금 쓰고 싶었다. 절규와 통탄의 아우성을 가까이해볼까 하는 마음이 출현한 것이다. 그러나 글의 주제가 전쟁에 대한 경각심도 아니고, 그에 따른 폐해도 아니다. 그저 나를 위한 소설의 재료일 뿐이다. 과거와 달리 내 글에는 이기심만 있을 뿐 연민은 찾아볼 수 없다.
[점착 메모지는 격자무늬 노란색으로]
[가족]
나는 친척들과 사이가 좋지 않고, 친척에 대한 사랑도 전혀 없다. 사랑은 별 것 아니면서도 특별해서, 아무에게나 줄 수 있는 감정이 아니다. 따라서, 나에게 친척들은 아무나에 속할 만큼 유대감이 완전하게 상실되어 있다. 그렇기에 그들을 사랑한다는 말은 절대로 할 수 없는 것이다. 즉, 말 그대로 남보다 못한 사이라고 보는 게 적확하다.
가족은 피로만 이어진 사람들이 아니다. 혈통으로 이어진 관계는 사회적으로 가족이라 칭할 뿐 정은 없다. 오히려 피가 섞이지 않아도, 같이 밥을 먹고 부대끼며 살아가며 서로를 사랑하는 사람들이 진정한 가족이라고 생각한다. 한 집에 살면서 한 끼니라도 같이 먹는 소중한 사람들 말이다. 물론, 매 끼니를 함께 해도 사랑이 없다면, 그것은 절대로 가족이 될 수 없다. 그저 무늬만 가족으로 보일뿐 실상은 남보다 못한 사이니까.
[가을 정원의 다이어리]
[차별]
사람들은 대부분 타자의 가정사에 대해 안일하게 생각한다. 타인에게 부모가 있는지 없는지 관심이 없기에, 안일한 말을 내뱉는다. 가령 어머니가 없는 사람에게는 '엄마에게 가져다 드려.' 또는 아버지가 없는 사람에게 '아버지는 무슨 일을 하시니?'하고 말이다. 어머니, 혹은 아버지가 없다는 답을 내놓았을 때 그들의 반응은 이혼인지, 사별인지에 대한 추궁이 보편적이다. 심지어 "고아는 사랑받은 적이 없어서, 사랑할 줄 모른다."라는 통계 없는 말 까지 나뒹굴 지경이니 개탄하지 않을 수 없다.
모든 사람들에게 형제자매가 이지 않고, 모든 어른에게 자식이 존재치 않으니, 당연하게 모든 타인들에게는 반드시 부모가 있어야 한다는 법은 없다. 고아에 대한 편견, 편부모에 대한 차별이 나쁘다는 것은 모두가 아는 사실이다. 그렇듯 대다수의 사람들은 자신은 차별하지 않는다고 하는데, 왜 이러한 구별은 좀처럼 사라지지 않을까. 그들은 대체 어떤 것을 감추고, 무엇에 차등을 부여하는 것일까. 무지한 나는 도저히 알 수가 없다.
[이래서 엄마 없는 애들은...]
[아빠가 없으면, 위계가...]
[고아는 사랑받을 줄도 몰라...]
라는 역겨운 말들이 사라질 수 없다는 것쯤은 분명하게 인지하고 있다. 그렇다면 차라리 저러한 고견들을 마음껏 표출해 줬으면 한다. 최대한 빠르고 신속하게 거를 수 있게 말이다. 자신이 정당하고, 당당하다면, 겉으로 드러나도 부끄러움이 없어야 하지 않을까.
[중요한 노트는 반드시 복사를 해 둘 것]
[행복]
남에게서 행복을 찾는 사람은 결국 불행해진다. 도저히 일어나지 않을 것 같았던 행복한 인생이 눈앞에 펼쳐지고, 무엇을 해도 다 잘 풀릴 때가 있다. 그런 긍정적인 상황에선 평생 행복할 수 있다고 자신하게 되지만 언젠가 익숙함으로 인해 모든 것이 물거품이 되어 사라짐과 동시에 행복마저 밀어낸다. 그렇게 행복이 부재한 마음에 오만이 깃들어 가장 행복할 수 있었던 미래를 시원하게 내다 버린다. 마지막으로, 자신의 인생마저 아무렇게나 내버려 두고 옳지 않은 곳으로 흘러가는 것을 방관하며 끊임없는 자조 속에서 끝나지 않는 고통을 반복한다.
[스테이플러가 있으면 무섭지 않아]
[중요]
살아가는 데 있어 중요한 것은 순위를 정할 수 없을 만큼 너무나도 많다. 가족은 귀중하고, 가족을 제외한 관계 또한 대단히 주요하다. 사실 나와 관련되었다면, 중대하지 않은 일이 없다. 그럼에도 종종 듣는 질문이 있다. '현재 가장 중요한 게 무엇이냐'라고 말이다. 바로 지금, 현재 가장 중요한 것이 존재하지 않냐며 답을 재촉한다. 그 물음에 나는 이렇게 답한다. 지금 당장 이 자리를 벗어나는 게 가장 주요한 일이라고.
[흔들리는 것보다는 부러지는 게 낫다]
[믿음]
아무도 믿어주지 않는 진실은 거짓이 되거나, 불편한 진실로서 제 힘을 발휘하지 못하는 데 반해, 누구나 믿을 수 있는 거짓은 진실이 되거나, 선의의 거짓이 되어 본래의 힘보다 더 큰 능력을 발휘하며 진실을 어둠 속으로 밀어 넣는다. 여기서 말하는 진실은 선을 의미하지 않으며 따라서 거짓 또한 악을 뜻하진 않는다. 선과 악 그리고 진실과 거짓이 모호해지는 관계 속에서 사람들은 자신만이 진실이고, 선이라고 외치며 점점 미쳐간다.
[작가의 말]
[사랑]
같은 것을 사랑하는 사람을 선망한다. 그들에게는 나의 온전함을 내비칠 수 있고, 좋은 모습만을 보여야 할 필요도 사라진다. 때로는 모순적이기도 하고, 이상하기도 한 나를 마음껏 나타낼 수 있으니, 평온하면서도 편안하다. 평안에서 오는 안전함을 즐기며 행복한 인생을 영위했던 것이, 덤덤하게 그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