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르만 헤세_클링조어의 마지막 여름
민음사
신경증이 없는 예술가가 있을까? 이름만 들어도 알 수 있는 예술가들은 대체로 약하게는 우울증부터 공황장애 및 조현증까지 앓았다. 헤세 시절에는 정신병 증상을 진단해 봤자, 치료법은 숙면과 냉수마찰 그리고 신앙심이었다. 그것만이 올곧은 정신을 유지할 수 있다고 믿었다. 비슷한 나이대의 카를 구스타프 융을 만나기 전까지는 말이다. 그는 융의 제자를 만나 정신과적 상담을 받고 미미하게 나아지긴 했으나 완치는 어려웠다. 현대에도 정신병은 완치라는 게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헤세는 융을 만나 더 폭 넓은 작가 세계를 이룩했고, 스위스의 몬타뇰라로 이사한 후 우리가 아는 데미안, 싯다르타, 나르치스와 골드문트, 유리알 유희 등 세기가 지나도 회자하는 작품을 탈고하게 된다.
결국 예술가에게 신경증이란 떼려야 뗄 수 없는 뮤즈일지도 모른다. 병을 치료하며 새로운 세계로 내딛는 것은 개인의 선택이다. 헤세는 마흔 살에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고, 프로 화가라고 불리기까지 몇 년 걸리지 않았다. 그만큼 워낙 진보적인 헤세에게 치료는 예술성의 거세가 아닌 또 다른 성장이었을 것이다.
다른 작품들보다 급작스럽게 난해해진 《클링조어의 마지막 여름》은 이해하기 위해 깊게 읽어도 좋고, 장면만 상상하며 얕게 읽어도 나쁘지 않다. 하나 강조하고 싶은 사실은, 클링조어를 헤세라고 생각하고 읽으면 글 자체가 사뭇 달라진다는 것이다. 대체로 자전적 소설을 쓰는 헤세지만, 이 책만큼 시적이며 영적이고, 회복적인 자전적 소설을 없다고 봐도 무방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