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사는 집은 공간마다 책상이 존재한다. 무려 여섯 개의 책상이 있는데, 모두 용도가 다르다. 서재실에 두 개의 책상 거실과 주방에 두 개의 책상 그리고 옷방과 침실에 각각 한 개의 책상이 있다. 이렇게 모든 공간에 상이 있는 이유는 명확하다. 공간의 활용성과 물품의 이용 가치를 혼동하여 아무렇게나 활동하는 것은 나 자신을 나태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침실(나태 방)] - 휴대전화 출입 가능, 단 책상에서만.
다른 공간보다 침실에는 무조건 책상이 있어야 했다. 내가 가장 경계하는 것은 침대에서의 모든 활동이다. 그것의 대부분은 무의미한 움직임일 가능성이 크다. 게으르게 누워서 똑똑한 전화를 손에 들고 공부를 한다고 합리화하며 여러 가지 영상을 시청했다. 그 작은 화면에 갇혀 넓은 집을 활용하지 않고, 등한시했다. 그렇게 한 시간을 허비했고, 열 시간을 떠나보냈다. 스스로 멍청하다고 생각하는 이러한 행위를 막기 위해 최소한의 장치를 만들어야 했다. 그 장치가 바로 침실 안의 책상이다. 침대에서는 다른 활동은 모두 접어둔 채 그저 숙면만을 취하는 게 좋았다. 나의 불면증은 부분적으로 침대의 활용을 제대로 하지 않아서 생겼을 수도 있다. 모든 활동을 끝낸 후 침실에 들어왔으면, 바로 잠을 자는 게 가장 좋은 선택이지만, 그렇게 하지 못했다. 하루의 절반을 일터에서 보낸 게 억울해서 일까. 때문에 침실에서 다른 활동을 하더라도, 침대 위가 아닌 책상에서 하기로 했다.
불면증과 수면장애를 없애는 데 가장 좋은 방법 중 하나는 침대에서는 잠만 자는 것이었다. 딱 한 달 정도 침대 위에서 아무것도 하지 않고, 잠만 자는 것을 습관화했다. 결국 내 몸은 다른 행동을 제약하기 시작했다. '침대가 보인다. 눕고 싶다. 누웠다. 잔다.' 이렇듯, 침대 위에서의 반응이 간단명료해졌다. 그런데, 그런 침대에 누워서 다른 행동들을 하는 것은 나의 몸을 복잡하게 했다. '침대가 보인다. 눕고 싶다. 눕는다. 그대로 영상을 시청한다. 만화를 본다. 과자를 먹는다. 몸을 뒤척인다. 또다시 영상을 본다. 과자를 먹는다. 그렇게 새벽이 다가온다. 피로는 해소되지 않는다.'
이러한 악순환을 막는 가장 좋은 방법은 침실에 책상을 두는 것이었다. 침대 위에서 하고 싶은 모든 행위를 전부 책상에 앉아서 하면 됐으니까. 그렇게 앉아 있는 게 힘들고, 불편해질 때쯤 침대로 돌아와 잠을 청했다. 어려울 게 없었고, 나태한 것을 행복이라 착각하지 않기로 했다.
[옷방(출근 방)] - 휴대전화 출입 금지.
옷방은 말 그대로 옷을 보관하고, 그것을 입으며 나를 단장하는 공간이다. 나를 꾸미는 모든 행위를 이 방에서 해결한다. 아침 시간 여기저기 돌아다니며 시간을 허비하는 것은 내 성격과 맞지 않다. 그렇기에 씻고 나와 옷방으로 이동 후 옷을 입고 머리를 말리며 기초 화장품을 바른다. 씻는 것을 제외하면 외출 준비가 대부분 한 공간 안에서 끝나는 것이다. 불필요한 동선 낭비가 없다. 하나 내 옷방에는 책상이 있고, 심지어 독서대도 있다. 여태까지 내가 말했던, 공간의 활용도에서 어긋나는 것이라 생각할 수도 있지만, 그렇지 않다. 내가 생각하는 공간 활용성의 가장 큰 목표는 '나태함을 타파하고, 시간을 허비하지 않는 것'이다. 출근 전 아침 시간에 여러 공간을 배회하는 행위는 그만큼 시간을 허비할 가능성이 높다. 집을 나서야 한다는 생각 하나로 빠르게 준비한 후 아침 시간을 여유롭게 만끽해도 아쉬운데, 여러 공간을 들러 그 공간에서 떠오르는 당장에 불필요한 생각은 쓸데없이 귀중한 시간을 소비하게 만들고, 아침을 여유롭게 보낼 수 없게 한다. 그렇기에 옷방에도 책상과 독서대를 배치했다.
군더더기 없는 동선의 활용은 시간 절약의 필수 요소다. 나는 기상 직후 커피를 내리고, 씻는다. 이후 옷방에 들어가 머리를 말리고 로션을 바른 후 옷을 입는다. 그렇게 남은 시간을 쓸데없는 데 소요하지 않고, 커피를 마시며 책을 읽는다. 독서와 커피로 인해 맑아진 정신을 유지한 채 집을 나선다. 그렇게 아침부터 모든 일이 잘 풀릴 것 같은 감정을 자아낸 후 자신감을 안고서 하루를 온전하게 연소한다.
[서재(예술 방)] - 휴대전화 출입 금지.
나에게 가장 중요한 예술을 하는 공간이자, 꿈을 실현할 수 있는 방이다. 서재실에는 두 개의 책상이 존재하는데, 작문 책상과 그림 책상으로 각각 활용도가 다르다. 이유는 지치는 것을 방지하고 창작 의지를 회복하기 위함이다. 글 쓰는 게 너무 지쳐 더 이상 써지지 않을 때 앉아만 있는 것은 시간을 낭비하는 행위다. 그럴 땐 곧장 일어나서 그림 책상으로 향한다. 그림도 마찬가지다. 더는 그리고 싶지 않고, 그려지지도 않을 때 또다시 일어나서 작문 책상으로 이동한다. 그렇게 하면 한 공간에서 왔다 갔다 하며 두 가지의 예술 활동을 오랜 시간 지속할 수 있다. 둘 다 지칠 경우는 거의 없는데, 지친다 해도 서재기 때문에 책을 읽으면 그만이다. 읽고, 쓰고, 그릴 수 있는 예술에 특화된 이 공간 안에서는 빙빙 돌며 시간을 허비해도 결국 예술이다. 나태함이 깃들어도 예술적으로 스며든다.
[주방(밥)] - 휴대전화 출입 가능, 단 사용은 자제.
요리를 하고, 밥을 먹는 공간이다. 될 수 있으면 간식도 여기서 해결하는 게 좋다. 먹는 행위를 여러 공간에서 하는 것은 위생적으로도 좋지 않고, 다른 공간에 있는 물건을 오염시킬 가능성이 높아진다. 때문에 몇 가지 액체를 제외하고는 입으로 들어가는 모든 행위는 이곳에서 이루어진다.
[거실(혼자 또는 타인과 사유하는 공간)] - 휴대전화 출입 가능, 단 사용은 자제.
거실에는 집에서 가장 큰 책상과, 휴식을 취할 수 있는 안락의자가 있다. 그리고 LP플레이어가 위치해 있어 은은한 음악을 틀어놓고 좋은 분위기에서 휴식을 취하거나 사람들과 대화를 나눌 수 있다. 거실 책상의 활용도 또한 다른 책상들과 마찬가지로, 다른 용도로는 사용하지 않는다. 예를 들어 의미 없이 앉아 있는다거나, 혼자서 음식물을 취식하는 행위를 가장 경계한다. 언제나, 손님을 받을 수 있도록 깔끔한 상태를 유지하는 것이다. 그래야, 손님을 받을 때 내가 할 일이 줄어들기 때문이다. 그렇지 않아도 약속 전에 해야 할 일이 많은데, 거실의 책상을 무분별하게 활용한다면, 점차 의미 없는 물건들이 쌓일 테고 위생도 유지되지 않을 것이다. 그렇다면, 부랴부랴 정리하는 상황이 반복될 테고, 어떤 물건들은 영영 제자리로 돌아갈 수 없을지도 모른다. 스스로 만들어둔 상황에 심리적 고통을 느끼며 매번 불편함을 상기하는 것보다, 처음부터 틀어질 일이 없도록 하는 게 가장 좋기 때문에 거실에 있는 책상도 정확한 활용도를 정해 두었다.
[생각]
나는 행동하지 않는 완벽주의자의 표본이었다. 할 거면 제대로 해야 한다는 생각을 하면서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게 습관이 되었다. 그러나 이제는 공간의 분리 덕분에 행동하는 사람에 가까워졌다. 완벽만을 추구하는 게 아닌, 일단은 하는 사람 말이다. 누군가는 꼭 그렇게 불편하게 살아야 하냐며 너무 빡빡하다 말할 수도 있다. 하지만, 나는 여기에서 단 한치의 불편함도 느끼지 못한다. 그리고 실제로 내 집에 방문한 사람들은 하나같이 '생각보다 강박적이지 않네.'라고 했다. 이처럼 나에게만 통용되는 규칙은 타인에게 불편함을 선사하지 않는다. 내 집에 들어왔을 때의 손님들은 처음에는 긴장을 하고, 나중에는 다른 집과 별반 다르지 않다고 생각하며 편하게 있다 돌아간다. 규칙이 꼭 어렵고 불편한 것은 아니다. 내게 있어서 규칙이란, 내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사람이 불편해하지 않는 것이고, 그들에게 피해를 주지 않으면서 지켜낼 수 있는 것이다. 언제든 내 집에 와서 편하게 쉴 수 있도록 말이다.
마지막으로, 타인은 굳이 나처럼 하지 않아도 된다. 모두 자신만의 방식이 있으니까, 타자의 삶을 존중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