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자

박진권

by 박진권



[그래서, 토론을 하자는 거야?]


"나는 너와 어떤 토론을 하겠다는 게 아니야. 그저 궁금할 뿐이지. 타인들이 너를 무서워하는 이유를 알고 싶어. 모든 인간들 곁에는 네가 존재하고, 그들의 끝은 항상 너로서 마무리가 되는데 두려워한다니, 이해할 수가 없어. 두려워한들 결국 끝은 죽음, 너잖아."


[모든 사람을 이해할 필요는 없어.]


"아! 이해할 필요 없다는 말은 하지 마. 그건 나도 알고 있으니까. 그런데, 있잖아. 나는 그런 말들이 세상에서 가장 혐오스러워. 저 사람도 인정하고, 나와 다른 인간도 이해해주고, 역겨운 괴물도 인격으로서 인권을 챙겨야 한다는 사람들의 주장은 가증스러워. 그런 인간들은 괴물들과 같이 네 존재를 목도하고, 너의 곁으로 떠나갔으면 해."


[진정하고, 주제를 기억해.]


"인정해, 조금 흥분했어. 나도 내가 무슨 말을 하는지 알다가도 모르겠거든. 그런데, 이것 하나는 확실해. 나는 평생을 그렇게 살아갈 거야. 인정하기 싫은 사람의 행태는 계속해서 인정하지 않을 거야. 내가 어떤 의협심이 있는 게 아니야. 그냥 그게 내가 살아가는 방식이야. 그들에게도 자유가 있고, 너에게도 자유가 있듯이, 내게도 그렇게 살아갈 권리와 자유가 있는 거야. 모든 사람들을 이해하며 살아갈 수는 없잖아. 너는 너의 진리를 유영해, 나는 매번 그것을 깨부술 테니까."


[그만. 그렇게 쉽게 끝낼 이야기가 아니야. 잘 들어봐. 모든 사람은 나를 두려워해. 아무리 두려움이 없는 사람일지라도, 미약하게라도 죽음에 대한 근심이 존재하지. 너처럼 전혀 두려움을 느끼지 않는다고 주장하는 사람들 또한 그 끝에서는 눈물을 흘리고 겁에 질린다고. 이유는 한 가지. 죽음은 곧 공포기 때문이야. 그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지.]


"너나 잘 들어. 세상에서 네 뜻대로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적확하게 흘러갈 수 있는 것은 죽음 빼고는 단 하나도 없어. 네 존재 자체의 거부할 수 없는 완벽한 진리임을 제외한다면, 너는 아무것도 아니야. 그러니 죽음, 그것만으로 만족하라고. 모든 인간은 죽음을 피할 수 없다는 진리 말고 네가 할 수 있는 주장은 없어. 편협한 인간의 주장과 하등 다를 게 없다고."


[죽음은 언제나 편협해. 동등하고, 공평한 죽음은 없어.]


"나는 네가 두렵지 않아."


[그건, 네가 아직 죽음에 다다르지 않았기 때문이야.]


"대부분의 사람들은 죽음을 두려워하고, 대부분의 젊은 사람들은 죽음과의 거리를 가늠하지 못해. 그럼에도 두려워해, 나는 그게 이해가 되지 않아. 나는 그저 아쉬울 뿐이야. 네가 뭐라고 무섭겠어. 남겨진 가족들이 슬퍼할 것을 생각하면 마음이 아프긴 해. 그렇다고 해서 죽음 자체가 두렵다는 건 아니야.


[그게 바로 나에 대한 두려움이야.]


"아니! 전혀. 우리는 늘 실수를 달고 살지. 그런데 어떤 사람들은 실수를 딛고 일어나 다음 실수를 할 용기가 있고, 어떤 사람들은 실수에 매몰되어 다음 실수를 할 용기가 없음에도 또 멍청하게 실수를 하지. 그것과 같은 거야. 나는 죽음이 다가온다는 것을 명확하게 인지하고 있기에 죽음이 두렵지 않아. 늘 임전무퇴의 마음가짐으로 살아간다고. 네가 턱 밑까지 다가와도, 나는 물러서지 않아.


[그래 참 대단하네. 네가 그렇지 않다는데, 내가 활자로 설득할 수 있는 방법은 없겠다. 무슨 말을 한들 너는 계속해서 아니라고 하면 그만이니까.]


"음... 그래, 다른 사람들이 널 두려워한다는 것은 어느 정도 이해했어. 그들을 이해하지 못한다는 것은 너와 같이 편협한 생각이니까. 나는 너처럼 편협하진 않아."


[감정이란 것은 복잡해. 무의 감정은 있을 수 없어. 네가 느끼는 죽음에 대한 어떤 감정이 분명 있을 거야. 일단 그 감정은 절대로 긍정이 될 수 없지. 고문당하던 사람이 차라리 죽여 달라고 애원하는 것은 지속적인 고통으로 인해 죽음에 대한 공포가 끊임없이 생성되기 때문이야. 결국 고통의 끝은 죽음이니까. 모든 부정적인 감정의 끝은 내가 될 수밖에 없고, 죽음이 두렵지 않다는 말은 모든 부정을 부정하는 말도 안 되는 논리라고. 너는 결국 죽음을 생각하면 부정적인 감정이 떠오를 테고, 그것이 꼭 두려움이 아닐지라도 긍정과 부정이라는 이분법적 사고 아래 같은 위치에 있는 감정이라고.]


"죽음은 절대로 객관적일 수 없어. 그렇기 때문에 네 편중된 사고는 절대로 타당한 논리가 될 수 없다고. 잘 알고 있잖아. 모든 사람들이 죽음을 두려워한다에 대한 논제는 참과 거짓으로 쉽게 구분할 수 있는 게 아니라고. 양자택일을 할 수 없는 문제를 긍정과 부정으로서 이분법을 적용하는 것은 멍청한 짓거리야. 죽음은 두렵다. 두렵지 않다. 관심 없다. 죽어보지 않아서 모르겠다. 이미 제 사의 선택지까지 있어. 두렵다는 것은 부정이고, 두렵지 않다는 것은 부정을 부정했다 해도 긍정은 아니지. 관심 없다는 것 또한 긍정도 부정도 아니야. 죽어보지 않아서 모르겠다는 긍정도 부정도 아닌 무지라고 할 수 있지. 죽음은 네가 말한 긍정과 부정으로 나누어질 수 없어."


[사람은 무조건 죽는다는 진리 앞에 자유로울 수 있는 사람은 없어.]


"사람은 무조건 죽는다는 진리가 무조건 양자택일로 귀결될 순 없어! 그 진리 앞에 두렵다, 아니다, 모른다, 관심 없다로 나눌 수 있으니까. 이미 이분법을 넘어섰지."


[그러니까, 이미 그런 생각한다는 것 자체가 죽음 앞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는 뜻이야. 넌 죽음 앞에서 자유로울 수 있다고 생각해? 누군가 네 자유를 앗아가도, 두렵지 않다는 말을 하고 싶은 거야? 자유가 없다는 건 곧 부정이고, 그것의 끝은 죽음이야!]


"아니, 전혀 두렵지 않아. 자유와 죽음이 무슨 상관인지 모르겠지만, 누군가 내 자유를 앗아가려 한다면, 투쟁심이 나타나겠지. 왜? 투쟁심도 긍정과 부정으로 나눠보지 그래."


[더 이상의 대화는 의미가 없을 것 같다. 너도 그렇고 나도 그렇고 의견 차가 도저히 좁혀지지 않네.]


"그럴 수밖에, 결국 나 혼자 하는 상념일 뿐이니까."






2..jpg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