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화
[독재]
독재는 단순히 나쁘다는 표현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독재는 두렵고, 참혹하다. 겪고 싶지 않은 불안이고, 공포이다. 그런데 현대의 사람들은 독재의 위험성을 깊게 생각하지 않는다. 다가오지 않을 미래로 치부하고, 안전할 것이라 확신한다. 그러나 세상에는 확정적인 안전은 없다. 모두 누군가 희생하고 있는 것이며, 누군가 우리를 보호하고 있는 것이다. 그 소수의 누군가들은 늘 다수의 간신들과 힘겹게 싸우고 있다.
이 글은 한쪽 정당을 지지하고자 쓰는 글이 아니다. 한국의 경우 우파에서 독재를 했기 때문에 모든 독재의 억압은 우파로부터 시작됐다고 알 수도 있다. 그러나 세계적으로 봤을 때 이는 헛소리임이 자명하다. 그렇다면 보통의 공산주의자들과 사회주의를 채택한 나라에서 최악의 독재자들이 현현했고, 현재진행 중이니 독재는 좌파들의 잔재이냐 하면 그것 또한 사실이 아니다. 당연하게도 이념 자체에는 문제가 없다. 그것을 해석하고 활용하는 사람이 타락하는 것이다. 사회주의, 공산주의, 민주주의 전부 사회와 사람을 위해 만들어진 것이니까.
내 생각에 반란과, 혁명은 아무런 차이가 없다. 어떤 준동이 실패하면 반란이고 성공하면 혁명이기 때문이다. 반란은 해방이고, 혁명은 자유라는 소리는 말장난에 불과하다. 해방이 곧 자유이고, 자유가 곧 해방이기 때문이다. 반란과 해방의 차이는 성공 유무의 차이일 뿐 서로의 다름은 존재하지 않는다.
[이념]
공산주의의 반대가 자유민주주의라고 해서 그 이념이 선이 되는 것은 아니다. 이념은 결국 사람이 만들어내는 것이고, 그 사람들이 어떻게 활용하냐에 따라서 크게 달라지기 때문이다. 이념은 그저 허상일 뿐이다. 그것을 도구로 사용할지, 무기로 사용할지 선택하는 인간에 의해서 선과 악이 나누어지는 것이다.
한국은 흑과 백으로, 좌와 우로, 남과 여로, 경상도와 전라도로 그렇게 선과 악을 이분법적으로 구분하기를 좋아한다. 이러한 구분은 위험하고, 대부분의 상황에서 적절하지 않다는 것을 사람들 모두가 아주 잘 알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뱉어내는 말들은 대부분 한쪽으로 기울어져 있다. 흑과 백 사이에는 회색도 있고 바깥에는 다른 색들도 많다. 좌와 우도 마찬가지로 앞과 뒤도 있을 게 자명하다. 남과 여는 대립할 필요가 없고, 대화를 하며 상생을 해야 한다. 이 작은 땅덩어리에서 경상도와 전라도를 나누는 것은 어이가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서로를 핍박하고, 악으로 치부하고, 자신은 피해자라며 울부짖는다. 그리고 소수의 권력자들은 이것을 막을 생각이 없다.
자신이 지지하는 진영의 악은 절대로 보려고 하지 않는다. 정치인들이 하는 토론은 대부분 저열하고 상대를 깎아내리기 바쁘다. 사람들의 뇌리에는 상대의 치욕적인 부분이 더 쉽고 깊게 각인되기 때문이다. 나의 고결함을 알리기 위해선 스스로가 부끄러움 한점 없이 살아가는 것보다 상대의 부정을 만천하에 퍼뜨리는 게 더 효과적이다. 사람들은 고결한 정치인을 원하지 않는다. 그저 내가 틀리지 않았음을 증명하는 정치인을 원하고, 내가 지지하는 당의 정치인을 원한다. 내가 뽑은 그 사람이 전과 몇 범인지는 알고 싶지 않고, 상대의 전과만을 흠잡고 싶어 한다.
우리는 좌, 우 할 것 없이 멍청해지지 않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한쪽으로 치우쳐 뻔히 보이는 악을 묵과해서는 안된다. 때로는 자신이 지지하는 어떤 것의 위험성을 알아채는 것도 필요하다.
[노동]
한국 사람들은 이미 노예화가 되어 있다. 자신이 좋아하는 일에도 10시간 이상을 쏟으면 당연하게도 피로가 누적되고, 통증이 수반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자신이 하고 싶어 하지 않는 일에 10시간 이상을 소모하려 한다. 기업이 그렇고, 나라가 종용하기에 먹고살려면 어쩔 수 없다는 말에는 백번 동감한다. 그런데, 그것에 반대되는 말을 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들은 불합리한 노동을 노력의 산물로 착각하게 만드는 악인들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07시에 기상해서 20시쯤 집에 귀가한다. 물론 이보다 덜 한 사람도, 더 한 사람도 존재할 테지만 보통은 그렇다. 그러니까 자신의 13시간을 하기 싫은 일에 쏟아내는 것이다. 과연 이게 정상일까? 생산직에서는 하루 16시간을 소모하는 것도 없는 일이 아니다. 일과 잠을 빼고 자신의 여가 생활이 전혀 없는 것이다. 확정 휴일이 없던 과거의 생산직 사람들은 주 5일 제라는 말에 반기를 들었다. 모든 생산직이 망할 거라는 우려였다. 당시에는 추석 당일만 휴무였을 정도로 열악한 상황임에도, 생산직 노동자들은 나서서 반대를 한 것이었다. 이는 스스로를 노예로, 가축으로 여기는 행동이라는 말 외에는 달리 할 수 있는 말이 없다.
현대도 다르지 않다. 주 4일제가 논의되는 마당에 아직도 6일제를 고수하는 알바와, 일자리들이 많다. 시대착오적인 행동을 하면 쓰레기라며 욕먹는 시대에 대놓고 사람을 가축화하겠다는 심보이다. 정책을 들먹이며, 최저시급을 방패막이로 젊은 사람을 착취하는 일이 비일비재하다. 물론 그런 일은 하지 않으면 그만이고, 다른 사람들도 그래야만 한다. 불매를 꼭 물건에만 할 필요는 없지 않은가. 그러나 다수의 프롤레타리아트들의 생각은 다르다. 주 4일제에 거품을 물고 반대하는 그 이유가 무엇일까. 주 5일제를 시행하고 몇십 년이 지난 현대의 생산업은 여전히 망하지 않았다.
[지혜]
나만 불행한 게 아니고, 타인들도 저마다 비슷한 불행을 경험한다. 사람마다 힘들다는 말의 깊이는 다를 수밖에 없다. 심지어 같은 사람이라 해도 상황에 따라 다르게 느낄 것이 자명하다. 힘들다는 말 뒤에 아무런 고통이 없는 사람도 있는 반면 당장에라도 한강다리에서 뛰어내릴 수도 있는 사람도 존재한다. 그러니까 사람들의 힘들다는 말에 차등을 나눌 필요가 없다. 그저 스스로가 왜 힘든지 명확하게 아는 것이 더 중요하다. 그리고 그 상황을 타개할 방법을 모색하거나, 벗어나는 지혜를 얻어낼 생각을 해야 한다.
[이념]
'좌파는 어떻고 우파는 어떻다'라는 부정적인 틀은 세상을 살아가는 데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 어떤 정당이 패권을 잡든 잘 사는 사람들은 큰 타격이 없다. 물론, 마음속 깊은 곳에서는 불편함이 있을 수 있다. 완전한 중립은 있을 수 없기에 당연한 일이다. 그럼에도 나는 계속해서 중도 향하고 싶다. 그래야만 조금 더 올바른 세상에 시선을 옮길 수 있을 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