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른의 반격]을 읽고 에세이 2부

29화

by 박진권



[13. 자기 계발의 시대]

[자신]

타자들이 보기에 나는 자의식과잉일 수도 있고, 나르시시스트의 경계에 있다고 볼 수도 있다. 그렇지만 나는 아쉽게도 스스로에 대한 검열이 지독하게 까다롭다. 심지어 복잡하기까지 해서 좀처럼 쉽게 스스로를 칭찬하지 못한다. 매번 자책하고 수정한다. 열심히 살았고, 살고 있다는 말을 하지 않는다. 나는 늘 게으르고, 아무것도 못 한다. 딱히 타인들로 하여금 나 스스로를 치켜세울 마음은 추호도 없다.


그럼에도 몇몇 사람들이 나를 부정을 내포한 채 자신감 있어 보이고, 자기애가 강하다고 평가하는 이유에 대해서 생각했다. 이 부분에서 동의를 하지 않을 수도 있고, 오히려 기분이 나쁠 수도 있지만 이유는 단 하나였다. 나를 그렇게 보는 상대방의 자존감이 바닥이고, 자기애는 찾아볼 수도 없는 자기 파괴적인 성향이 짙은 사람이기 때문이라고.


상대방을 자신과 같은 동일선에 두어야만 직성이 풀리고, 그것을 뛰어넘는 사람은 독선적이고, 자기중심적이라고 치부하는 그 알량한 자존감이 참으로 안타깝다.


나는 게으르고 성실하지 않지만, 그렇게 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아침잠이 많은 사람이지만 매번 일찍 일어나려고 애쓰고 있다. 참으로 부족한 사람이나, 그것을 채우고 보답하고 싶어 늘 고민한다. 나를 사랑해 주는 모든 사람들에게, 늘 고맙고 미안하다. 나는 나를 증오함과 동시에 사랑한다.






[14. 삐]

[건강]

23년 첫 번째 다짐은 건강이다. 1월부터 A형 독감에 시달리고, 겨울철에 기승하는 노로바이러스에 감염되어 심한 장염에 혼이 쏙 빠져서일까. 여전히 다른 것들도 중요하지만, 가장 신경 써야 하고 중요한 것은 건강이 분명하다.


건강으로는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독감도 성인 된 이후로 걸려본 적이 없었고, 장염 또한 약도 먹지 않고, 식이요법도 없이 무난하게 지나갔다. 내가 아플 때라고는 무리한 운동 이후 따라오는 각종 통증들을 제외하고는 전혀 없었다. 그런데 23년 1월이 된 후 모든 게 달라졌다. 1월 내내 알약들을 먹으며 앓고서야 건강은 절대로 자신해선 안된다는 것을 깨달았다. 근거 없는 자신감 때문에 자만이 되어, 건강 관리를 소홀히 하게 되니까.


그리고 또 첫 번째는 사랑이다. 내 글에서 자주 보이는 명사들이 있다. 고독, 외로움, 사람, 가족, 사랑 등 크게 보면 모두 비슷하다. 고독과 외로움은 자기애가 있고, 사람, 가족에는 인류애가 있다. 결국 모두 사랑으로 귀결된다.


아플 때 가장 힘이 되는 것이 무엇일까. 가족과 연인의 관심과 사랑이다. 그리고 스스로 이겨낼 수 있는 자기애도 있어야 한다. 둘 중 하나만 있다고 되는 게 아니라 둘 다 있어야 한다. 사랑은, 자양 강장제와 다를 바 없다. 건강한 사람은 사랑을 하고 있을 것이고, 사랑받는 사람은 아프더라도 금방 건강해질 것이다. 이 말에 이견이 있어도 나는 듣지 않을 생각이다. 나는 쇼펜하우어가 아니니까.






[15. 도망]

[혼자]

현재의 삶에서 도망치기 위해 몇몇의 사람들을 만났다. 그들과 대화하고 비슷한 생각을 공유했다. 그렇게 아무렇지 않은 듯 웃고 떠들면 마치 내 인생이 다시금 행복해질 수 있다고 믿었다. 그러나 현실은 그렇지 않았다. 그들과 헤어진 후 적막함 속에서 집으로 돌아올 때의 그 무력감은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로 우울했다. 내게 부족한 것을 타인에게서 채우려고 하니 오히려 독이 된 것이다. 그래서 약속을 하나 둘 끊어냈다. 그렇게 점점 사람들도 끊어지기 시작했다. 덕분에 오히려 마음이 편안해졌다. 쓸데없는 사람들을 부여잡고 있을 필요가 없었기에 텅 빈 마음과 손에 다른 것들을 집어넣을 수 있었다.






[16. 존재의 확인]

[의견]

스물다섯, 처음으로 작가가 되고 싶었다. 그러나 막막한 현실 앞에 좌절한 채 언젠가는 이룰 꿈이라는 이명 아래 노력은 하지 않고 그저 기다리고만 있었다. 그 기다림의 끝이 무엇인지 어떤 것이 다가올지도 모른 채 멍청하게 하루를 인내했다. 속으로 나는 언젠가 작가가 될 거야 라는 헛된 희망을 품으며 말이다.


스물아홉, 처음으로 작가로서의 노력을 하기로 마음먹었다. 블로그에 꾸준히 글을 썼고, 브런치 작가가 되었다. 그런데 브런치에 에세이와 소설 그리고 여러 가지 글을 올리다 보니, 지금 내가 쓰는 글이 옳은 방향인지 의심이 생기기 시작했다. 그래서 전문가와 비전문가 그리고 전문가인듯한 사람들과 대화를 나누었다. 첫 번째 사람은 초등학생도 읽을 수 있을 정도로 편한 수준의 판타지 웹 소설가였다. 이 작가는 현실에서 일어날 수 없는 일을 글로 쓰는 사람이라 그런지, 말하는 게 전부 허황되어 보였다.


"저는 연애를 할 때 소개나 모임보다는 백화점이나 길거리에서 지나가다가 우연하게 만나서 연애를 시작했어요."


라는 2000년대 초반 귀여니 소설에나 나올법한 말을 육성으로 자신감 있게 내뱉는 것을 보고서 확실히 판타지 소설가라고 생각했다. 그는 직접 경험한 게 아닌 자신의 뇌내 망상을 글로 나타내는 작가였으나 JK롤링의 발톱 때만도 못한 작가 호소인이었다. 나도 형이상학적인 글을 아예 쓸 생각이 없는 것은 아니나, 그래도 형이하학에 근거한 형태가 있는 현실에 기반한 글을 쓰고 싶기에 작가 호소인의 말은 깊게 신뢰할 수 없었다. 특히 그 병적인 몸짓과 말투 그리고 가짜 같은 눈이 소름 끼치기도 했다.


다음은 실제 문예 창작과를 졸업해 계속해서 글 쓰는 일에 종사하며 아직도 자신의 꿈을 향해 나아가는 사람의 의견도 물었다. 답변은 생각보다 단순했다.


"계속 쓰세요." 혹은, "좋아요, 그냥 쓰세요." 등 일단 쓰라는 말이었다.


마지막으로 글쓰기와는 전혀 상관없는 독자의 입장인 사람들에게도 내 글이 어떤지에 대해서 물었다. 당연하게도 그들의 소견은 모두 달랐다. 에세이가 좋다는 사람도 있었고, 소설이 좋다는 사람도 있었다. 더해서 우울하다, 부정적이다. 재밌다. 무섭다. 등등 모든 사람들의 의견을 종합하기는 어려웠다. 그럼에도 글쓰기를 멈추지 않으며 계속해서 그들에게 글을 선보였고, 마침내 명확한 장점과 단점을 파악할 수 있었다.


차근차근 이어진 노력에 자그마한 보상들이 따라왔다. 노력의 결실이 언제 맺어질지는 미지수이나, 절대로 배신하지 않는다는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그렇기에 나를 의심하는 모든 사람들의 생각이 달라지지 않았으면 한다. 박진권은 '할 수 없다'라고 계속해서 말하고, 생각하고, 떠벌렸으면 좋겠다. 그렇게 열렬히 나를 사랑해 주면, 언젠가 꿈을 이룬 내가 당신 앞에 찾아갈 테니까. 그때까지 계속해서 저열하고 난잡하게 훼방 놓길 간절히 염원한다. 자신을 망치지 않는 선에서 말이다.






[17. 더는 아닌 로맨스]

[변화]

나무와 풀이 많은 곳에서 내려다보는 것. 그리고 평지에서 나무와 풀이 많은 곳을 올려다보는 것을 좋아한다. 편안함과 평안함을 추구하고, 변화를 어려워한다. 막상 변화된 환경과 자신에 쉽게 적응하면서 그 한 발자국 떼는 것이 힘들다. 그리고 본질적으로 꼭 변화해야만 하나 하는 의구심도 샘솟는다. 나는 지금도 충분히 풍족하고, 행복한데 어떤 변화가 필요한가 하는 의구심이다. 조금 더 나은 글을 쓰고, 조금 더 성숙한 사람이 되겠다는 욕망은 끊임이 없지만, 이것은 변화가 아니다. 결국 결이 같은 성장이다. 그렇기에 전혀 다른 것으로 변화해야만 하는 이유에 대한 의심은 좀처럼 사라지지 않는다.






[18. 여러분!]

[격려]

사람들은 규격 외의 사람을 닿을 수 없는 사람 또는 없는 사람 취급한다. 무대 위에서 소리치는 사람과, 기업 앞에서 홀로 소리치는 사람. 강남 시그니엘에서 사는 사람과, 반지하방에 사는 사람. 사업에 성공해 인생이라는 게임이 쉬워진 사람과, 사업이 폭삭 망해 인생이라는 게임에서 파산한 사람. 후자의 없는 사람은, 노력하지 않은 사람으로 인식된다.


사회의 본질적인 선과 악을 말하는 게 아니다. 잘 된 사람은 악이고, 못 된 사람은 불쌍한 선이라고 외치는 것도 아니다. 그저 다 같은 사람이고, 똑같진 않지만 충분히 노력한 사람일 수도 있다는 것을 인지했으면 하는 것이다. 더 노력했다고 성공하고, 덜 노력했다고 실패한다는 통계는 믿을 수 없다. 그 같잖은 통계의 장난은 논문마다 다르며 그 노력의 척도 또한 모호하다. 두 사람이 같은 시간 동안 똑같은 노력을 했다고 누가 입증할 수 있을까.


잘 한 사람은 잘했다고 칭찬하는 게 옳고, 못 한 사람은 더 잘하라고 격려하는 게 좋다. 성공과 실패의 공간에서 비난은 하등 쓸모없는 명사다.






[19. 멀리 있는 타인들]

[건강]

어머니가 연락을 하셨다.


"아프지 않으면 돼 ~"


근래에 자주 아팠던 탓일까. 어머니는 자신의 건강도 좋지 않으시면서 아들의 건강을 먼저 걱정하셨다. 그래서 나도 최대한 밝게 답문을 보냈다.


"맞아, 안 아프면 다 돼."


"그래ㅋ"


건강하기만 하면 다 할 수 있다는 생각은 집안 내력이라고 봐도 무방하다. 때문에 내가 사랑하는 모두가 건강했으면 한다. 나는, 우리는, 건강하기만 하면 무엇이든 할 수 있으니까.






[20. 빈 챕터]

[실패]

나는 하고자 하는 것을 어떻게든 이루며 살아갔다. 그 형태가 완벽하지는 않더라도 말이다. 그래서 원하면 이루어진다는 말을 굳게 믿는다. 그런데 그것이 꼭 긍정은 아니다. 간혹 불운한 생각을 한다거나 쓸데없이 했던 걱정들이 현실로 되는 경우도 있었다. 이 또한 내가 원한 것이기에 이루어진 것이라고 밖에는 설명이 되지 않았다. '어차피 그렇게 되겠지'라고 생각한 일들이 실제로 그렇게 되는 경우가 잦았다. '얼마 안 남았다'라는 생각이 들 때쯤엔 스스로가 인식하기도 전에 영혼이 빠져나갔고, 그 끝이 눈앞으로 성큼 다가왔다.






[21. 정말, 진짜, 우리]

[우주]

애쓸 필요가 없는 일에 모든 힘을 소진했을 때만큼 허무한 게 없다. 그중 하나가 바로 인간관계였다. 과거의 나는 이런 인연 저런 인연 전부 수집하며 모두 품 안에 두려고 했었다. 그래야만 내가 사회적인 동물로서 온전히 살아갈 수 있을 것 같았다. 또 그렇지 못한 사람에 대한 시선이 조금 두렵기도 했다. 그러나 가장 힘들었던 시기에 마음속 심지를 붙들었던 것은 나 자신이었고, 그럴 수 있도록 도와준 사람들은 가족뿐이었다. 오래도록 유지했던 관계들에게 내 고통은 세상에서 일어나는 흔한 일들 중 하나였다. 자신에게 일어나지 않아서 다행인 자신과는 관계없는 쓸데없는 일 말이다. 남들에게 자신의 생각을 말하고, 고통을 표하고, 인정을 바라도 돌아오는 것은 누구의 불행이 더 큰지에 대한 토론일 뿐이었다. 그래서 그런 째마리들을 쉽게 내던지기 시작했다. 와도 그만, 가도 그만인 먼지 같은 존재로 인식했다. 그렇게 진짜 내 곁에 있어야 할 사람들이 남았고, 내가 곁에 있어야 할 사람들이 생겨났다. 오히려 애쓰지 않으니 애쓰고 싶은 사람들이 다가왔다.






1. 브런치 에세이.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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