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나의 20대

스물여섯 - 순례자의 길

1,000 km를 걸었다

by 아코


내 인생에 두 번째 파리였다. 대학교 4학년 때 처음 배낭여행을 하면서 내가 죽기 전에 여길 언제 또 와볼까 했었는데, 거짓말처럼 파리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대학생활 내내 염원하던 회사에 입사했고, 좋은 분들과 함께 일하면서 많은 것을 배웠지만, 2년 만에 퇴사하게 됐었다. 그러고 나서 내가 처음 한 선택은 순례자의 길을 걷는 것이었다. 원래는 남미 여행을 하려고 비행기표까지 끊었지만, 당시 지카 바이러스로 위약금까지 물고 여행을 취소하고 차선책으로 선택한 여행이었다. 순례자의 길을 걷기 전 많은 글들을 찾아봤었다. 누군가는 길 위에서 인생에 교훈을 얻고, 답을 찾았다고 했다. 나는 그 길에서 답을 찾진 못했다. 대신, 나는 어떤 사람인지 더 들여다보는 시간이었다.



숫자에, 계획에 집착하는 사람


나는 내가 숫자에 연연하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학교 다니면서 최선을 다하려고 했지, 등수나 성적에 크게 신경 쓰지 않았었다. 물론 내가 생각하는 기준이 있었지만, 1등을 해야 직성이 풀리고 100점을 안 맞으면 불안해하진 않았다. 그런데 순례자의 길을 걸으면서 내가 가장 집착하고 있는 건 숫자였다. 일정을 넉넉하게 잡고 갔으니 특별히 사고가 나지 않는 한 하루에 20km 미만으로 걸어도 충분히 도착할 수 있었다. 그리고 꼭 그날 목표한 지점까지 가지 않아도 다음날 조금 더 걸으면 되는 일정이었다. 하지만 나는 내가 생각한 거리를 못 갈 것 같거나 생각했던 기상시간보다 늦게 일어나 준비가 늦어져 지나가면 불안해했다. 그리고 스페인은 "시에스타"라는 낮잠 시간이 있는데 이때에 큰 도심이 아니면 대부분 가게가 문을 닫는다. 그러면 도착했을 때 끼니를 해결하기 어려워지니 시계를 보며 신경은 날카로워졌다. 같이 동행한 일행을 챙겨야 하는 부담감과, 계획이 잘못되면 안 된다는 강박 때문에 숫자 하나에 그날 기분이 좌지우지되고, 풍경이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그렇게 걷던 하루는 눈이 정말 많이 왔다. 4월에 눈보라를 헤치며 길을 걷는데 이제 1시간쯤 걸었을까? 같이 간 언니의 신발에 물이 새고 있었다. 갑자기 눈물이 왈칵 차올랐다. 찝찝한 채로 많이 힘들었을 텐데 내가 조급해하고 걱정할까 봐 말 못 한 언니에게 미안해서였다. 내가 아침 기상시간이 늦어지거나, 시에스타 시간이 가까워지면 신경이 날카로워지는 걸 언니도 이미 알고 있었다. 그렇게 숫자에 집착하고, 계획에 연연하다 보디 정작 옆에 있는 사람을 보지 못했다. 카페에 들어가서 난로 앞에 앉아 신문지로 신발에 묻은 물기를 닦아내며, 신문지 잉크가 묻은 검게 물든 손을 보며 생각했다. 유연해지자고. 오늘 멈춰가도 괜찮다고. 중요한 건 이 순간 이렇게 예쁜 풍경을 보며 걷고 있고, 좋은 사람과 함께 있다는 것이라고.

계획을 세우고 이를 지키기 위해 열심히 최선을 다하며, 보이는 숫자로 결과를 증명하는 것만이 최선이라고 생각했었다. 스타트업에서 개발자로 일하고 있는 내가 숫자에 연연하고 계획에 집착했다면, 유연한 사고를 하지 못했다면 살아남지 못했을 것이다. 5년이 지나 이 글을 쓰며 나의 발걸음을 보니, 개발자가 될 줄 몰랐던 어떤 순간에도 나는 지금을 준비하고 있었나 보다.



함께 걸어줘서 고마워요


나는 평소에 운동을 꾸준히 해왔던 터라, 800km는 걸을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런데 같이 가기로 한 언니가 걱정이었다. 언니는 평소에 숨쉬기가 전부여서, 자신이 800km를 걸을 수 있을까, 할 수 있을까 많이 걱정했었다. 다녀오신 분들의 후기를 찾아보니 보통 남자분들이 빠르면 30일 여자분들도 30일 후반이면 도착하는 편이었다. 언니가 다치지 않고 잘 여행할 수 있게 기간은 40일에 800km 걷는 것을 목표로 일정을 짜고, 중간중간 걷는 것 외에 교통수단이 있는지도 찾아봤었다. 처음엔 언니도 힘들어했지만, 날이 갈수록 체력이 늘어 걷는 것을 즐겼다.

그리고 여행 중에 같이 간 언니 외에 다른 동행이 생겼었다. 동행이 한 명 더 늘어서, 함께여서 정말 든든했다. 그리고 우리 일정은 40일이라 넉넉했는데 이 분은 일정이 좀 빡빡한 편이라 더 많이 걸어야 했었다. 같이 간 언니가 이 분이랑 같이 일정을 맞추자고 해서 조금 무리했지만 같이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드니 힘든 길도 즐겁게 걸었다. 심지어 마지막 날은 하루에 거의 60km를 걸었다. 눈보라를 헤쳐가고, 동트기 전의 새벽길을 혼자 걸었다면 많이 무섭고 힘들었을 것이다. 그냥 뒤돌아봤을 때, 곁에 있고 서로 응원해줄 사람들이 있어서 여행을 무사히 마칠 수 있었다.



내가 있어야 할 곳은


순례자의 길을 걸으며 나의 불안을 다시 마주하게 됐다. 여행 일정은 약 한 달 반이었는데, 이 기간마저도 나는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과 떨어져 있는 것이 많이 힘들었다. 회사를 퇴사한 것도 이런 이유가 있었는데, 내가 좋아하는 걸 하면서 꿈을 이뤄나가는 과정이라면 이 정도는 떨어져서 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었다. 그런데 아무래도 나는 사랑하는 사람들이 항상 곁에 있는 곳에 있어야 하는 사람이라는 것을 느꼈다. 원래 순례자의 길을 걷고 유럽 여행을 좀 더 하려고 했었는데 비행기 티켓을 다시 끊어서 일주일 먼저 입국했었다. 이 여행을 다녀와서 내가 하는 일이 장소에 구애받지 않은 일이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내가 있고 싶은 곳에 사랑하는 사람들 곁에 있으면서 할 수 있는 일을 하고 싶었다.



순례자의 길, 그리고 5년 후


여행 중에 내가 얼마나 힘을 주고 살고 있었나 느꼈다. 오늘 하루를 그냥 흘려보내면 큰일이라도 날 것만 같았고, 오늘 걷지 않으면 내일은 전력질주를 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그렇게 아등바등하지 않아도 그저 하루를 충실히 해도 목표지점에 도착할 수 있었다. 원래 800 km 정도의 거리를 40일 동안 걷는 계획으로 갔는데 우리는 출발 30일 만에 그 길의 종착지인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 성당 앞에 도착해있었다. 머리로는 놓아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이렇게 피부로 느끼고 나니 마음이 한결 편해졌었다. 온 세상에, 길 위에 우리만 있다는 적막함과 고요가 좋았다. 바쁘지 않아서 좋았다. 그렇게 800km를 걷고 좀 더 여유로운 일정으로 우리는 포르투갈에 있는 순례자 길을 200km 더 걸어서 1,000km를 채웠다.


벌써 5년이 지난 여행의 후기를 쓰는 동안 든 생각은 "생경하다"였다. 어떤 책들은 내 마음 상태에 따라, 나이에 따라 그때 느꼈던 느낌과 지금의 느낌이 다르다. 지금 나의 여행이 그렇다. 스물다섯에 내가 여행에서 느꼈던 것을 곱씹다 보니, 새로운 교훈을 얻게 된다. 나는 그저 숫자에 집착했었다고 생각했는데 뒤돌아 보니 숫자와 더불어 "계획"에 집착했었다는 걸. 그때 언니가 해줬던 이야기들이 지금의 나에게 또 다른 힘이 된다는 걸. 20대의 내가 고맙다. 지금은 그때처럼 여기저기 다니고, 이것저것 경험할 시간이 부족하긴 하지만, 경험들 만으로도 다시 새로운 교훈을 주고 힘을 주니까. 고맙다 스물여섯의 나. 그리고 함께 같이 걸어준 언니들 정말 다시 한번 감사하단 말을 전하고 싶다. 무슨 복인지 이렇게 감사할 사람들이 많아서 행복하다. 오늘은 언니들에게 전화라도 한 통 해봐야겠다.



순례자의 길을 걷는 동안에 워낙 에피소드가 많았어서 하나의 글로 쓰긴 무리가 있다. 목표한 20대의 서재를 다 쓰고 나면 순례자의 길에 있었던 내용만 따로 정리해서 글로 써봐야겠다. 30대에도 이런 소중하고 감사한 경험을 많이 할 수 있기를 바라본다. 앞으로도 내 인생의 순례자인 나에게 Buen Camin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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