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나의 20대

스물여섯 - 눈물의 대기업 퇴사

첫 번째 회사, 첫 번째 퇴사

by 아코

나의 20대에 대해 기록하면서 어떤 글의 순서로 작성할지 생각해봤었다. 스무 살부터 오름차순으로 써볼까, 스물아홉 부터 내림차순으로 써볼까 고민했었다. 근데 막상 작성하려 하니 지금 나와 가장 가까운 해, 고민이 많았던 해, 내 인생에 전환점이 되었던 해 들을 먼저 쓰게 된다. 물론 회사에 입사한 것도 나에게 큰일이 었지만, 퇴사가 나에겐 인생에 있어 더 중요한 순간이었다. 집을 떠나 지방으로 내려가고, 해외를 누비고, 2년을 일했던 회사를 떠나게 되었던 나의 눈물의 퇴사 기를 써볼까 한다.


힘들었던 지방 생활


나는 기계공학부 조선해양공학과를 졸업했다. 조선소에 가고 싶었고, 조선소에 가게 되면 지방근무는 필연적이라는 것을 이미 알고 있었다. 그런데 이 생활이 생각보다 많이 힘들었다. 학교 가기 전에 새벽이슬을 맞으며 다녔던 영어 학원도, 매일 두 시간씩 하던 운동도, 하루의 투정을 받아줄 친구들도 없는 공간에서 많이 힘들었다. 공부나 일에 꽤나 욕심이 많았던 나는 퇴근 후 시간에 일하고 공부하면서 잘 지낼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그런데 "안"과 "못"의 차이가 나를 붙잡았다. 금요일 퇴근 후에 버스를 타고 늦은 밤에 서울에 도착했고, 일요일 막차를 타고 도착해, 월요일 새벽이슬을 맞으며 기숙사까지 걸어갔던 길은 아직도 눈가에 선하다. 그렇게 20대 중반에서도 나는 나를 몰라 어려웠다.


흔들리는 미래


미국 파견 후 복귀했던 당시, 유가 하락 및 인도 지연 등 여러 악재들로 회사 주식은 내가 입사한 시기 기준으로 거의 1/5 토막이 나있었다. 파견 중에 주마다 미팅하던 담당자가 구조조정으로 해고돼서 담당자가 바뀌고, 미팅 차 갔던 업체 로비에선 해고자들의 폭동을 대비한 경찰들이 상주하고 있었다. 이런 상황 속에서 나는 곰곰이 생각해봤다. 이 회사를 떠나서도 실력 있는 사람인가? 산업군이 흔들리더라도 어디서든 일할 수 있을까? 물론 연차도 얼마 안 된 내가 생각하기엔 무리가 있었지만, 확신이 없었다. 특히 내가 하던 일은 시추 관련 장비에 특화되어 있었는데, 이 기술을 발전시킨다기보다는 이 장비들을 잘 배치하는데 특화되어 있었다. 그러면 최대한 현장에 있는 것이 좋은데, 이게 내가 원하는 것인지 계속 의문이 생겼다.


그리고 결심


여러 가지 상황을 고려했을 때, 지금이 아니면 계속 이 회사에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말씀을 드리고 나서 퇴사 처리는 빠르게 진행됐다. 회사를 나올 당시 뭘 할지 정하지 않고 나왔지만, 불안하진 않았다. 내가 그동안 순간순간 최선을 다했기 때문에 이후에 무엇을 해도 다시 시작할 수 있을 것이란 확신이 있었다.





회사를 나오길 결심하고, 이야기하고, 함께 일하던 분들에게 인사드리고 나오기까지 정말 많이 울었다. 첫 회사였고, 챙겨주시고 도움 주신 분들이 정말 많았다. 신기한 건 벌써 5년이 지난 지금도 함께 일했던 분들과 연락도 하고 뵙기도 한다는 것이다. 당시 사진첩을 뒤져보니 현장 돌아다니면서 찍었던 야드 사진, 장비 사진 추억이 방울방울이다. 오랜만에 오늘은 사수님께 연락을 드려야겠다.


막상 적고 나니 내가 왜 개발자가 되려고 했는지 썼던 글과 크게 다르지 않다는 것을 느꼈다. 이유는 내가 대기업을 다니면서 배우고 느낀 것들을 토대로 두 번째 직업을 선택했기 때문이다. 지금 개발자로 일하면서, 이전에 일할 때 개선됐으면 했던 점들은 대부분 개선이 됐다. 물론 그와 더불어 새로운 난관들이 닥치긴 했지만 말이다. 이렇게 우여곡절을 거치고 경험하면서 조금씩 더 나에게 맞는 일을 업을 찾아가는 중이다. 셰릴 샌드버그가 했던 말처럼 나도 나만의 정글짐에서 내 꿈을 찾을 것이다.


경력은 사다리가 아니라 정글짐이다. 어떤 꿈에 다다르기 위한 길은 하나만 있는 것이 아니며 마치 정글짐처럼 모든 경력과 경험들은 어떻게든 얽히고설켜있다.

-셰릴 샌드버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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