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캘리포니아 여행 | 샌디에이고 공원 산책 1
미국 캘리포니아 여행 | 샌디에이고 공원 산책 2
"It never rains in Southern California(캘리포니아 남부에는 절대 비가 내리지 않는다)"
캘리포니아 남부에 샌디에이고(San Diego)가 있다는 것을 유학이나 연수를 다녀온 지인들을 통해 알게 되었다. 머물렀던 기간과 전공이 다름에도 그들이 공통으로 하는 이야기는 살기 좋은 도시이며, 날씨도 참 좋다는 것이다. 비가 잘 오지 않고 일 년 내내 쾌적하고 온화하다고 한다. 겨울에도 춥지 않고 여름에도 덥지 않은 지중해성 기후에 그곳 특유의 여유로운 라이프 스타일이 더해져, 미국에서 살기 좋은 도시 순위 상위권에 늘 올린다고 한다. 그런데 이 도시 알고 보니, 휴양도시라는 명성에 걸맞게 공원도 엄청 많다.
발보아 공원
샌디에이고를 대표하는 가장 큰 공원은 바로 발보아 공원(Balboa Park)이다. 발보아라는 이름은 스페인 탐험가의 이름에서 유래했다. 발보아 공원은 1915년 파나마-캘리포니아 박람회가 열린 곳으로, 흔히 생각하는 공원 규모를 훌쩍 뛰어넘는다. 샌디에이고 동물원과 미술관, 항공우주박물관, 모형철도박물관 등 무려 18개 이상의 박물관과 전시관이 있다. 또 다양한 정원과 극장이 모여 있어 하루에 다 돌아보기 힘들 정도다.
주차장에 내린 우리는 100년 넘은 야외 공연장(스프레클스 오르간 파빌리온)을 지나간다. 매주 일요일 오후 2시에 파이프 오르간 공연이 있다고 한다. 하지만 이날은 평일이라 공연은 없다. 대신 공연장에는 학사복을 입은 사람들이 여럿 보인다. 여름학기를 마친 학교 졸업식인지, 아니면 기업의 행사인지는 모르겠다. 조금 더 걷다 보니 홀로 바이올린 버스킹을 하는 할아버지를 만난다. 들어주는 이가 아무도 없어도 연주하는 그 모습에서 여유로운 라이프스타일을 실감할 수 있다.
엘 프라도 플라자에서 오른쪽으로 돌아서니 갑자기 아름다운 건물과 연못이 나온다. 바로 샌디에이고 식물원(Botanical Building)과 릴리 연못이다. 식물원은 나무 구조물만 있고, 신기하게도 유리가 전혀 없다. 유리 없는 온실이 가능한 것은 아마도 겨울에도 따뜻한 날씨 덕분이겠지. 배우 이민호가 주연한 드라마 <상속자들>의 배경이었다는 일행의 말에 우리는 사진을 많이 찍었다. 사진을 찍고 보니 정말 그림이 예쁘게 나온다. 스페인풍의 아름다운 건물들과 야자수와 연못. 이미 배경이 다했다.
가이드의 안내대로 둥근 분수가 나오고, 고가다리를 건너면 로즈가든이 나온다. 발보아 공원이 워낙 규모도 크고 아름다워 로즈가든도 기대했지만, 막상 가보니 그냥 흔한 동네 공원 같다. 에버랜드가 훨씬 낫다는 말이 들린다. 그런데 눈에 들어온 것은 로즈가든 입구의 선인장이다. 멕시코 접경 지역답게 선인장 군락이 정말 크고 인상적이다. 마치 선인장이 뿔 달린 거대한 공룡 모습 같다.
다시 천천히 돌아 나온다. 엘 프라도 플라자까지 걸어 나와 근처 파라솔 의자에 앉아 쉰다. 멀리 타워와 돔을 가진 성당 모양의 인류박물관 건물도 보인다. 거대한 발보아 공원의 지극히 일부분만 보았지만, 나른한 포만감이 든다. 판다와 코알라를 모두 볼 수 있는 샌디에이고 동물원도 있고, 피카소, 달리, 미로 등 현대 화가의 그림을 볼 수 있는 미술관도 지척이지만 여행 일정상 아쉬운 발길을 돌린다.
올드타운
발보아 파크에서 우리를 태운 버스는 서북쪽으로 이동하여 올드타운(Old Town)에 멈춘다. 올드타운은 샌디에이고의 발상지라고 할 수 있다. 스페인 선교사가 교회를 세우면서 캘리포니안 해안을 따라 올라갈 당시 이 지역은 멕시코의 땅이었다. 그 후 1848년부터 미국 땅이 되었다. 이를 보여주듯이, 타운 내 널찍한 잔디 광장인 ‘워싱턴 스퀘어’ 큰 나무 너머로 성조기가 펄럭이고 있다. 올드타운은 스페인, 멕시코, 미국의 특징이 동시에 나타나는 역사적인 장소로 우리나라의 민속촌 같은 곳이다.
멕시코풍 공예품을 파는 곳들과 멕시코 음식을 파는 식당들이 줄지어 있다. 판초와 솜브레로 같은 멕시코풍 의상, 다양한 공예품과 기념품을 팔고 있다. 알록달록 예쁜 것 같으면서도 중국 물건처럼 조잡한 느낌이 들어서 선뜻 지갑을 열게 되지는 않는다. 심지어 인도나 중국에서 만들었을 것 같은 불상도 있다. 세계화된 세상임을 새삼 체감한다.
아무것도 사지 않고 다시 버스 내린 장소로 돌아오니 후추나무가 있다. 후추는 늘 플라스틱 통 안에서만 보았는데, 이렇게 열매가 나무에 주렁주렁 달린 모습이 이국적이다. 물기 어린 밝은 갈색빛이 돌고 아직 건조되지 않은 상태이지만, 열매에는 후추 냄새가 진하다.
타운을 크게 한 바퀴 돌아 예약된 멕시코 식당 코요테(Cafe Coyote) 안으로 들어왔다. 타코와 브리또 같은 음식이 나온다. 향도 강하고 양까지 많아서 접시를 다 비운 일행을 찾기란 어려웠다.
식사가 끝나갈 무렵 식당에 중년의 두 가수가 통기타를 메고 나타났다. 우리에게도 잘 알려진 라밤바, 베사메무쵸, 라쿠카라차 등 라틴 노래를 불러 준다. 실력을 가늠하긴 어렵지만, 현지 가수가 부르는 그 지역 노래를 라이브로 듣는 것은 색다른 경험이다. 우리에게 노래를 불러 주기 위해서 유럽 공연 일정을 미루고 왔다는 가이드의 너스레에 웃음이 났다. 아마도 얼마 전에 ‘동남아 순회공연’도 성황리에 마치고 돌아왔겠지! 나오는 길에 가수분께 팁을 조금 드렸더니 좋아하신다. 그러곤 또렷한 한국어 발음으로 ‘감사합니다!’하고 인사한다. 나도 답례 인사드린다.
"그라시아스~!"
Paradise is a State of Mind
이날 기억에 남은 글귀가 하나 있다. 그 가수들이 노래할 때 식당 벽에 적혀있는 문구. 바로 옆에 앉은 일행분도 사진을 찍는다.
“Paradise is a State of Mind(천국은 마음의 상태이다)”
그렇다. 천국은 장소가 아니라 마음 상태라는 말. 크리스트교적 세계관이 담긴 말이지만 충분히 공감이 간다. 천국이나 극락은 사후에 만날 실제 장소일 수도 있겠지만, 지금 나의 마음 상태에 달려 있을지도 모른다. 행복하고 충만한 기분의 상태가 바로 천국이 아니겠는가? 건강하고 긍정적인 생각과 사랑으로 우리 영혼이 채워진다면, 우리가 머문 곳이 어디든지 거기가 곧 파라다이스일 것이다. 캘리포니아 햇살을 받으며 샌디에이고 공원을 천천히 산책하다 보면 우리 영혼이 조금씩 행복으로 차오를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