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LA 여행 2 | HOLLYWOOD 명예의 거리를 거닐다
'LA 하면 무엇이 먼저 떠오를까?'
이 질문에 대한 답은 사람마다 다를 것이다. 어떤 이에게는 최근 LAFC로 이적한 손흥민 선수일 수 있다. 스포츠팬은 2026 북미 월드컵이나 2028 하계 올림픽도 떠올릴 것이다. 영화 팬이라면 <라라랜드>의 재즈 선율이 떠오를지도 모른다. 모두 LA를 상징하는 것들이지만, LA의 중심에는 변함 없이 '할리우드'가 있다. 산 중턱에 우뚝 솟은 'HOLLYWOOD' 사인만 봐도 가슴이 두근거린다. 전 세계 영화 산업의 심장, 바로 LA 할리우드이다.
할리우드 명예의 거리(Walk of Fame)
오늘은 그 꿈의 거리를 직접 걸어보기 위해, 할리우드 명예의 거리로 향했다. 할리우드의 대표적인 메이저 스튜디오인 워너브라더스, 유니버설, 디즈니 스튜디오가 모여있고, 매년 아카데미 시상식이 열리는 곳이다. 기대에 부푼 마음을 안고 버스에서 내리는데… 어라? 스파이더맨 등 영화 속 히어로들이 길거리를 활보하고 있다!
"사진 찍거나, 주는 물건을 받으면 돈을 달라고 합니다. 그냥 지나치세요."
가이드님의 사전 당부 말씀에 따라 지나친다. 하지만 지금 생각해 보니 아쉬움이 조금 남는다. 이렇게 브런치에 글을 올리게 될 줄 그때 알았더다면 그 스파이더맨과 셀카라도 한 장 남겼을 텐데…
사람들로 북적이는 거리, 그런데 다들 하늘이 아닌 땅을 보고 걷는 풍경이 재미있다. 알고 보니 길바닥에 별 모양의 동판이 박혀 있다. 무려 2700여 개의 유명인 이름이 새겨진 분홍색 별들이 있다. 이래서 '워크오브페임(Walk of Fame)'인가 보다.
재미있는 것은 권투선수 알리의 별만 바닥이 아닌 벽에 박혀 있다. 자신과 같은 이름의 이슬람교 선지자인 '무함마드' 글자를 함부로 밟고 다니게 할 수 없다는 그의 희망에 따라 벽에 설치했다고 한다.
안필립 배우를 아시나요?
이 거리에서 우리는 자랑스러운 한국의 흔적을 발견할 수 있다. 한국인 이름이 적힌 별이다.
'PHILIP AHN(안필립)'
안필립은 독립운동가 도산 안창호 선생님의 아들로 할리우드에서 활약했던 배우이다. 필립이라는 이름은 서양 이름인 줄 알았는데, 안내를 듣고 나니 마음이 찡해졌다. 반드시 필(必), 설 립(立). 도산선생께서 조국 독립의 희망을 담아 지으신 아들 이름이라고 한다. 그 뜻을 이어 국민배우 안성기 씨가 자신의 아들 이름을 '안필립'으로 지었다고 하니 이 또한 감동스럽다!
당시 우리나라의 국제적 위상이 그리 높지 않던 시절이라 안필립 배우는 주로 중국인이나 일본인 배역을 맡았다. 당시 할리우드에서 꽤 인기 많은 배우였지만, 한국인 주연 배우의 꿈을 이루지 못하고 돌아가셨다. 지금과 같은 한류의 분위기라면 충분히 가능하지 않았을까?
자랑스러운 기생충!
걷다 보니 돌비 극장이 나타난다. 도로에서 건물 입구가 안쪽으로 길게 이어진다. 아카데미 시상식을 할 때 레드카펫이 깔리는 곳이다. 그런데 양쪽 기둥에 역대 아카데미 작품상 수상작 이름이 새겨져 있다. 배우들이 레드카펫 계단을 오르다가 한번 멈추고 카메라 세례를 받을 만한 계단참 옆 기둥에 2019년 수상작 <기생충(PARASITE)>이라는 글자가 보인다.
기생충은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최우수작품상, 감독상, 각본상, 국제영화상 4개 부문을 수상하는 쾌거를 세웠다. 한국 영화 100여 년 역사상 최초의 아카데미상 수상작이자, 아카데미 역사상 처음으로 비영어 영화가 최고 영예인 작품상을 받아 아카데미 시상식의 보수적인 벽을 허물었다는 평가를 받았다. 자랑스러운 마음에 카메라 셔터를 마구 눌렀다. 알고 보니 실제로 기생충 제작팀도 이 계단에서 사진을 찍었다.
돌비 극장은 쇼핑몰과 함께 있는데, 건물을 연결하는 구름다리로 간다. 이 거리에서 할리우드 사인이 가장 잘 보이는 포토존이 거기에 있다. 그리피스 천문대에서도 할리우드 사인을 배경으로 찍었지만, 이곳이 좀 더 글자가 크게 보인다. 인증 사진 명소인 셈이다 .
그런데 사진을 찍고 반대쪽으로 고개를 돌리자, 익숙한 얼굴이 커다란 광고판에서 웃고 있다. 바로 BTS의 진! 주변에 다른 어떤 스타의 사진보다도 압도적인 크기로 걸려있는 모습을 보며, K-팝의 위상을 느낄 수 있다.
할리우드 거리에는 유명인들을 밀랍으로 만들어 둔 마담 투소가 있다. 초록색 헐크가 입구를 지키고 있고, 그 안에 유명 영화 배우들과 NBA 농구선수 매직 존슨 등 셀럽들이 있다. 이날 최고 인기 스타는 단연 마릴린 먼로이다.
대한민국 배우 이병헌과 안성기
이어서 들른 곳은 TCL 차이니즈 극장. 이곳 바닥에는 유명 배우들의 핸드 프린팅과 풋 프린팅이 새겨져 있다.
"누구부터 찾아볼까요?"
"우선 우리 한국배우부터 찾아보죠."
한국 배우부터 찾아보기로 했습니다. 왼쪽 가장자리에서 '안성기'와 '이병헌'의 이름이 새겨진 프린팅을 발견했다. 한글로 또렷이 쓰인 '대한민국 배우'라는 글씨를 보니 뿌듯한 감정이 올라왔다. 이른바 '국뽕'이 차오른다는 게 이런 기분일까?
다음으로 찾은 건 <라라랜드>의 두 주인공, 라이언 고슬링과 엠마 스톤의 핸드 프린팅! 두 사람의 프린팅은 극장 입구의 오른쪽 해태상 바로 아래에 있다.
"어디 보자~ 엠마 스톤 손은 얼마나 작을까?"
손을 대보니 정말 아담한 크기였다. 그런데 옆에 있는 라이언 고슬링의 손에 대보니, 이게 웬일인가? 내 손바닥과 손가락 길이와 마치 맞춤처럼 딱 맞다! 나와 라이언 고슬링이 어떤 연결고리가 있나? 일행 분들도 신기해 하셨다. 예상치 못한 브로맨스(?) 덕분에 한참을 웃었다.
한국을 외치다!
할리우드 거리는 생각했던 것만큼 화려하지는 않았다. 이미 100여 전에 조성된 거리여서 그런지 오히려 다소 소박(!)하게 느껴졌다. 하지만 그곳에서 만난 한국의 흔적들은 그 어떤 화려함보다 빛났다. 할리우드에서 안필립 배우, 안성기, 이병헌, BTS, 그리고 봉준호 감독의 <기생충>까지 K-컬쳐의 자부심을 제대로 느낄 수 있었다.
문득 백범 김구 선생님의 "문화의 힘은 우리 자신을 행복하게 하고, 나아가 남에게 행복을 줄 수 있다"는 말씀이 떠올랐다. 지금 미국에는 넷플릭스에서 방영된 한국 배경의 애니메이션 <케이팝 데몬 헌터스> 열풍이 대단하고, OST '골든'은 빌보드 1위까지 차지하였다. 김구선생께서 이 모습을 보셨다면 얼마나 기뻐하실까? 문화강국이 된 대한민국의 위상을 온몸으로 느낀 오늘 하루를 이렇게 표현할 수 있지 않을까?
"세계 문화의 중심에서 한국을 외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