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 당일치기, 2박3일 폭설 어드벤처로 • 동백꽃

계절 따라 꽃멍 숲멍(겨울) | 동백꽃 | 제주 동백수목원

by 새벽강

제주의 겨울을 붉게 물들이는 동백

제주도는 언제나 옳다! 적어도 여행지로서 제주도는 사계절 모두 매력이 넘친다. 우리 가족은 제주 여행을 참 좋아한다. 딸아이는 웬만한 해외보다 더 선호한다. 마냥 자주 갈 수 있는 건 아니지만 늘 제주 여행을 꿈꾸고 기다리며 지낸다.


특히 제주의 사계절은 온갖 꽃으로 우리에게 즐거움을 선사한다. 봄에는 가시리에 유채꽃과 벚꽃이 더불어 피어난다. 초여름이면 종달리와 보롬왓에 수국이 우아한 자태를 드러내고, 가을에는 산굼부리와 여기저기 오름에 억새가 은빛 머리를 휘날린다. 그리고 겨울이면 동백꽃이 제주를 붉게 물들인다. 제주도에는 동백 명소도 여러 곳이다. 동백동산, 카멜리아힐, 동백수목원, 동백포레스트 등이 제각자 매력을 뽐낸다.

둥글게 잘 다듬어진 동백꽃 군락을 만날 수 있는 제주동백수목원(제주 서귀포시)



바로 이거지!

기대감으로 저 구름조차 예뻐 보였던 제주공항 착륙 전 풍경

어느 해 겨울, 동백꽃이 갑자기 보고 싶어 혹시나 제주행 항공권이 남아 있는지 검색해 보았다. 주말 저녁에 돌아오는 항공권을 예매하기란 쉽지 않은데, 거짓말처럼 항공권이 두 장 남아 있었다. 게다가 아침 제주행 항공권까지 저렴하게 나와 있길래 바로 예매했다. 그리고 렌터카도 예약했는데, 비수기라 그런지 좋은 차를 많이 싸게 예약할 수 있었다. 이 기쁜 소식을 아내에게 알렸다. 당일치기 제주 여행, 준비 완료!


당일치기라 캐리어는 필요 없다. 배낭 하나로 충분하다. 가벼운 배낭보다 더 가벼운 마음으로 우리 부부는 아침 일찍 공항으로 향했다. 발걸음도 경쾌하다. 역시 예약하고 준비하는 과정과 공항 가는 길도 여행의 즐거움이다.


공항에 도착해서 여유 있게 커피도 마시고 제주행 비행기에 올랐다. 날씨를 검색해 보니 내일부터 제주에 눈이 예정되어 있다. 항공권을 예매하던 날엔 없었던 눈 예보지만, 어차피 우린 오늘 저녁에 돌아올 거니까 별로 문제 되지 않을 터였다. 오늘따라 렌터카 상태가 참 좋다. 게다가 맛집 검색도 없이 들린 로컬 식당에서의 아침 식사까지 너무 만족스러웠다. 따뜻한 성게미역국이 마음까지 풀어준다. 순조로운 여행의 시작이다.

‘그래, 바로 이거지!’

유명하지 않은 식당에 들렀으나 매우 만족스러웠던 아침 식사


예기치 못한 폭설

오늘의 목적지는 서귀포 동백수목원이다. 한라산을 넘어가야 한다. 한라산을 넘기 위해 1100 도로 방향으로 향했다. 그런데 눈발이 날리기 시작한다. 본격적으로 한라산의 경사진 길을 오를 무렵 눈발이 조금 굵어진다. 그래도 우리가 목표한 서귀포 방향으로 계속 운전하였다.


하지만 도로에 이내 눈이 쌓이면서 차들이 거북이걸음을 시작한다.

'어라, 생각보다 눈길이 장난이 아닌데, 어떡하지?'

고민하다가 유턴하기로 했다. 저녁에 다시 한라산을 넘어오는 게 걱정되어, 아쉽지만 남원에 있는 동백수목원을 포기했다. 대신 공항에서 많이 멀지 않은 선흘리 동백동산에 가기로 했다.

폭설이 시작되는 동백동산 근처


눈 내린 내리막 길이 아주 미끄러웠다. 차량 몇 대가 중심을 잡지 못하고 미끄러져 도로는 순식간에 아수라장으로 바뀐다. 우리가 오늘 빌린 좋은 차도 후륜 차량이라 앞바퀴가 말을 듣지 않는다. 우리 차도 갑자기 미끄러져 앞차와 부딪힐 상황이다. 급히 핸들을 갓길 쪽으로 틀었다. 그런데 차가 도로를 넘어 길 밖 계곡으로 넘어갈 기세다. 핸들을 쥔 손에 힘을 꽉 주고, 발은 브레이크를 뗐다 밟았다를 반복하면서 가까스로 사고를 면했다. 진땀이 났다. 겨우 한숨을 돌리고 나서야 이 또한 여행의 묘미로 여기기로 했다.


마침내 선흘리 동백동산에 도착했다. 넓은 주차장에 관광객들을 태운 버스 한 대가 있었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사람들을 태우고 떠났다. 탐방센터에서 동백동산에 대한 안내를 받았다. 그런데 동백동산은 야생 동백 군락지로서, 아쉽게도 아직 개화 시기가 멀었다고 한다. 그래도 동백나무로 이루어진 곶자왈의 숲길에 눈이 내려 멋있었다. 탐방객은 우리 부부 단 둘뿐이다.

동백동산 근처에 빨간 꽃을 피운 겹동백 몇 그루가 눈을 맞으며 서 있었다. 붉은 꽃잎 위에 흰 눈이 내려 이색적인 정취를 보여주었다.

붉은 동백 위로 쏟아지는 하얀 눈(좌), 폭설에 꽃잎이 얼 것 같아 안쓰럽다(우)


북새통 공항에서의 사투

눈발이 더욱 거세진다. 아내의 표정에도 먹구름이 몰려온다. 날씨와 제주공항을 검색하더니 곧바로 공항으로 가자고 한다. 예정보다 일찍 눈이 시작되었지만, 제주공항 사이트에는 다행히 아직 비행기 이착륙이 이루어지고 있다. 하지만 워낙 빠른 속도로 날씨가 나빠지고 있어 동백동산을 뒤로하고 공항으로 달렸다.

오는 길에 다시 확인하니 제주공항에 결항 편이 뜨기 시작한다. 아직 우리가 돌아갈 비행 편에는 지연, 결항 등의 문구가 없다. 하지만 앞으로 어떻게 될지 예측할 수 없는 상황이다. 아내는 먼저 공항에 내려 돌아갈 항공편을 알아보기로 하고, 나는 렌터카를 반납하러 갔다. 차를 수령한 지 얼마 되지 않았는데 돌아오니 직원이 '벌써 반납하시게요?' 묻는다. 반납하고 급히 셔틀버스로 공항에 돌아왔다.


공항 안은 북새통이다. 이미 비행이 취소되어 기다리는 사람들과, 우리처럼 여행 일정을 취소하고 급히 공항으로 온 사람들이 계속 들이닥친다. 아내는 그 사이 우리 비행편도 취소가 되었다는 나쁜 소식과 그 항공사에서 다른 비행 편을 안내해 주어서 지금 줄을 서 있다는 소식을 동시에 알려주었다. 김해든 김포든, 일단 제주를 벗어날 수만 있다면 좋겠다.


그러나 우리 바람과 달리 상황은 급변하였다. 조금 전까지 이착륙이 이루어지던 활주로에 비행기가 점점 뜸해진다. 각 항공사 창구에서는 긴급하게 안내한다. 모든 항공편 운항은 이제 중단되었으며 언제 운항 재개할지 알 수 없단다. 급히 제주 여객선 터미널에 전화하여 배편을 알아보았다. 배편 역시 부산행 여객선이 아직 출항 전이지만 강풍과 풍랑으로 취소될 수 있다고 한다.


공항에는 사람들이 점점 더 늘어나 발 디딜 곳이 없을 지경이다. 그리고 한쪽에는 방송국 카메라가 등장하여 이런 공항 풍경을 전하고 있다. 제주공항이나 섬에 발이 묶인 관광객들을 보도하는 뉴스를 보면서 ‘저 사람들은 왜 하필 저런 날씨에 여행을 갔을까’ 생각했었다. 그런데 이제 내가 바로 그 방송 화면에 잡히고 있다!

'날씨가 갑자기 나빠졌거나, 어쩔 수 없는 일정도 있는 거였구나.'

위미동백나무마을 돌담에 그려진 동백꽃(좌), 창문 프레임 사진 명소로 유명한 동백포레스트(우)


뜻밖의 겨울 호캉스

공항이 아예 멈춰 서면서 이제 사람들은 급히 호텔을 구하느라 바쁘다. 우리도 제주 시내에 있는 호텔을 예약하고 택시를 타기 위해 나왔다. 그런데 이번에는 공항을 빠져나가는 사람들로 택시 대기 줄이 너무 길다. 이럴 줄 알았으면 렌터카를 반납하지 말았어야 했다. 어쩔 도리 없이 기다란 줄 꼬리에 붙었다. 내 인생에서 가장 길었던 택시 잡기였다.

차가워진 날씨에 몸이 얼어붙는 줄 알았다. 한참 후에야 겨우 택시를 잡아 호텔에 도착했다. 그 사이 눈은 조금 잦아들었지만 바람의 위세가 대단하다. 바람은 웅웅 큰 소리를 내며 객실 창문에 계속 부딪힌다. 집에 있는 아이들 걱정과 출근 못 하면 처리해야 할 일을 걱정하느라 아내의 표정이 어둡다. 그 모습이 안쓰러워 별로 와닿지도 않을 위로의 말을 건넸다. 사실, 내 마음도 속으로는 창밖 거센 바람과 다를 바 없었다.


결국 눈과 강풍으로 우리의 제주 여행은 당일에서 하루씩 늘어났다. 예정에 전혀 없던 겨울 호캉스가 시작되었다. 폭설로 대중교통이 원활하지 않았다. 수시로 공항 상황과 항공권을 체크하면서 호텔 근처에 주로 머물렀다.


'이왕 이렇게 되었으니 차라리 즐기자!'

그나마 다음날부터 눈도, 아내의 걱정도 잦아들기 시작했다. 우리는 마인드를 '재무장'하고 실내 위주로 다녔다. 특히 제주박물관이 고마웠다. 빛의 벙커나 아르떼뮤지엄에 가지 않고도 제주 풍경을 담은 수준 높은 미디어아트를 구경할 수 있었다. 마지막에 스크린 역할을 하던 벽면이 창으로 열리더니 눈 내린 바깥 풍경을 보여주어 깜짝 놀랐다.

끝날 때 바깥 풍경이 열리는 국립제주박물관 미디어아트


폭설이 내린 제주 중산간 풍경은 여러 번 봤지만, 제주 시내가 폭설에 갇힌 모습은 처음이었다. 2일 차 저녁에는 눈 쌓인 제주 도심 거리로 나갔다. 길거리에 눈썰매를 끌고 가는 여행객도 있었다. 우리는 종종걸음으로 카페에도 가고 작은 기념품점에도 들렀다. 둘이서 손 꼭 잡고 조심조심 걸어 다녔다. '혹시 넘어질까 봐!'라고 해두자. 오랜만에 가져본 둘만의 오붓하고 다정한 시간이었다.

눈이 온 제주 도심 풍경(좌), 제주 도심에 눈썰매를 끌고 다니는 모습(우)


폭설 어드벤처에서 돌아오며

사흘째 되던 날, 이착륙을 재개한다는 연락을 받고 공항으로 갔다. 정말 기억에 남을 제주 여행이었다. 동백꽃 보러 여행을 떠나왔지만, 마치 봉오리째 툭 떨어진 동백꽃처럼 눈보라로 모든 계획은 한순간에 날아가 버렸다. 동백꽃 당일치기는 '장편 스펙터클 어드벤처 무비'로 바뀌었다. 그 속에서 우리는 예상치 못한 새로운 경험과 추억을 얻었다.


하지만 만개한 동백꽃을 제대로 구경하지 못한 아쉬움이 마음에 남았다.

'동백꽃 보러 다음에 또 와야지.'

그때는 선흘리 동백동산의 홑동백이 만개할 때, 무엇보다 한라산 너머 동백수목원과 동백포레스트에 겹동백이 만발할 때를 맞추어 찾아오리라. 그렇게 제주에 다시 올 '괜한 이유' 하나 더 만들고, 2박3일의 폭설 어드벤처는 끝이 났다.

동백아, 조금만 기다려줘!


결국 1년 뒤 개화 시기에 맞춰 찾아간 서귀포 동백수목원



동백꽃 꽃말: 진실한 사랑, 겸손한 마음, 그대를 누구보다도 사랑합니다.

동백꽃은 차나무과 상록교목으로 동아시아가 원산지이며, 한국에는 남해안과 제주도에 많이 자란다. 11월 말부터 이듬해 4월까지 꽃이 핀다. 벌이 활동하기 전 겨울에 피다 보니, 동박새 등 새가 수정을 돕는 조매화(鳥媒花)이다.

꽃잎의 형태에 따라 홑동백, 겹동백으로 나누어진다. 홑동백은 꽃잎이 떨어질 때 따로 떨어지지 않고 꽃송이가 통째로 툭 떨어진다. 이런 특징 때문에 문학작품이나 노래에도 자주 등장한다. (흥미로운 점은 김유정의 소설 <동백꽃>은 그 배경이 동백이 자생하지 않는 강원도로, 그곳에서는 생강나무꽃을 동백꽃으로 부른다고 한다.) 대중적인 인기를 얻은 대표적인 노래로는 이미자의 ‘동백아가씨’가 있다. 또한 유명 명품 브랜드인 샤넬의 흰색 동백꽃 시그니처도 유명하다.


여수 향일암에서 찍은 홑동백(좌), 대구 디지스트에서 찍은 겹동백(우)


전국 동백꽃 명소

제주도에 명소가 많으며, 부산과 여수도 시화(市花)가 동백일 정도로 동백꽃으로 유명한 곳입니다. 수종에 따라 피는 시기가 다르므로 반드시 개화 상태를 확인하고 떠나세요.

- 제주 위미리 동백군락지

- 제주 카멜리아힐

- 제주 동백동산

- 제주 동백수목원

- 제주 동백포레스트

- 제주 동백마을

- 여수 오동도

- 부산 동백섬

- 거제 지심도

- 고창 선운사



*오늘도 찾아주신 작가님, 독자님,

감사합니다! ^^


*금요일에 연재하던

<일상의 쉼표>가 마무리되어

<계절 따라 꽃멍 숲멍>은

이제 토요일에 연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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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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