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절 따라 꽃멍 숲멍(겨울) | 눈꽃 | 무주 설천봉
꽃은 아름답다. 그래서 무언가 예쁘고 아름다울 때 종종 꽃에 비유하곤 한다. '꽃다운 나이'도 있고, 아름다운 문화를 '꽃 피우기도' 한다. 사람들 사이에서는 '웃음꽃'도 피어나고, 밤하늘에는 '불꽃'이 화려하게 터진다.
그리고 차가운 겨울, 온 천지가 꽁꽁 얼어붙을 때 피어나는 하얀 꽃도 있다. 사람들은 그것을 '눈꽃'이라 부른다.
눈꽃은 겨울의 감성이자 낭만 그 자체이다. 겨울은 곧 눈꽃 여행의 계절이기도 하다. 순백의 세상에서 만날 수 있는 눈꽃은 여느 꽃들과는 아주 다른 시간과 장소에 핀다.
눈꽃 여행의 성지는 무주 덕유산이다. 아름다운 눈꽃 명소가 전국에 많지만, 덕유산이 유명한 것은 누구나 쉽게 눈꽃 풍경을 즐길 수 있기 때문이다. 비결은 바로 ‘곤도라’ 다. 곤도라는 리조트 주차장에서 불과 반 시간 안에 덕유산 정상의 상고대 앞으로 데려다준다.
무주는 남부 지역에서 눈이 '무진장(무주-진안-장수)' 많이 오는 진안고원에 위치해 있다. 겨울철 서해에서 들어오는 구름은 이곳을 지나가며 눈을 자주 뿌린다. 스키 리조트가 있는 무주 설천면은 예로부터 지명에 '눈 설(雪)'자가 들어 있지 않은가!
눈꽃이 한창인 1월에, 특히 주말에 덕유산을 다녀오려면 사전 예약이 필수다. 2주 전에 열리는 인터넷 예매 사이트는 종종 다운될 정도로 인기가 높다. 어렵게 '주말 클릭 전투'에서 성공했다.
그런데 예약일 이틀을 앞두고 뉴스 보도에 무주리조트가 나왔다. 강한 한파로 갑자기 곤도라가 멈춰서는 사고가 났다고 한다. 하루 전날, 불안한 마음에 리조트에 전화를 했다. 다행히 점검을 마치고 내일부터는 정상 운행을 재개한단다. 정말 다행이다!
당일 아침 서둘러 길을 나섰다. 시간대별로 예약을 받지만, 도착한 순서로 다시 줄을 서야 하기 때문이다. 거창을 거쳐 무주로 향하는 길에 보니 멀리 산머리가 하얗다. 며칠 전 내린 눈 폭탄을 아직도 머리에 이고 있다. 기대감이 부풀어 오른다.
무주리조트에 주차를 하고 설천하우스로 향한다. 곤돌라와 스키를 타러 온 사람들이 뒤섞여 붐비고 있다. 역시 예상대로 대기 줄이 길다. 하지만 줄을 길게 늘어선 사람들의 기대감 어린 눈빛은 햇살을 받은 설원의 눈처럼 반짝인다.
마침내 우리 차례가 되고 탑승한다. 얼마 올라가지 않아 두 가족이 함께 타고 있는 곤도라 안에 탄성이 터진다. 곤도라 아래에는 하얀 눈꽃을 피운 나무들로 은세계가 펼쳐져 있다. 감탄과 놀라움을 반복하다 보니 어느새 설천봉 정상 곤돌라 종점이다.
드디어 온통 새하얀 겨울 왕국에 발을 내딛는다. 곤도라 공사를 할 때 하늘에 제를 지냈다는 상제루가 하얀 눈을 두른 채 늠름하게 서 있다. 상제루 덕분에 설천봉의 풍경은 더 아름답다. 상제루에 들어가 아이젠을 빌리고 잠시 몸을 녹인 후 본격적으로 눈밭으로 들어간다.
발이 푹푹 빠진다. 쌓인 눈의 깊이가 놀랍다. 도시의 쌓일 듯 말 듯한 눈에도 신나 들뜨던 딸의 얼굴에 싱글벙글 함박웃음이 떠나지 않는다. 능선을 넘어가는 눈보라는 가지마다 상고대를 더 활짝 피워냈다. 여기에서 덕유산 정상인 향적봉까지는 600미터, 약 30분이 걸린다. 인파를 따라 계단을 오른다. 초입부터 눈꽃 터널이다. 이런 풍경은 태어나서 처음이다. 겨울바람을 맞으며 줄지어 눈길을 오르면서도 누구 하나 힘들다는 표정을 짓는 사람이 없다. 그저 자연의 경이로움에 감탄사만 연발할 뿐.
‘눈오리’, ‘눈곰돌이’를 만드는 집게를 가져간 딸은 바쁘다. 눈으로 곰 가족을 계속 만들어 낸다. 등산로 울타리 위에 한 마리씩 올려놓자 지나가는 사람들이 엄지척을 해준다. 어떤 이는 사진을 찍기도 하고, 또 어떤 이는 한 마리를 '분양'받아 가기도 한다. 모두 겨울왕국의 주인공들이 되어 하얀 설원을 마음껏 즐긴다.
향적봉에 도착하기도 전에 천천히 구경하느라 지체한 우리는 발길을 상제루 방향으로 되돌린다. 향적봉 정상 정복이 오늘의 목표가 아니었으니 아쉬울 건 전혀 없다. 이렇게 황홀하고 아름다운 눈꽃을 만났는데 무얼 더 바라겠는가. 눈길 등산을 준비했다면 향적봉 정상까지 가도 좋고, 아니면 설천봉 근처만 돌아보아도 곤도라를 예약한 시간과 비용이 아깝지 않다.
다시 내려가는 곤도라 안에서 보는 눈꽃도 그야말로 장관이다. 하얀 눈꽃을 활짝 피운 가지가지가 은빛으로 빛나고 있다. 나도 모르게 넋을 잃고 바라보고 있다.
“나는 진짜 눈이 어떤 건지 오늘 알았다!”
내려오는 길에 어느 등산객 말소리가 들렸다. 정말 그랬다. 눈을 처음 본 것은 아니지만 이토록 아름다운 눈은 처음이었다. '화무십일홍'이라는 말은 눈꽃에도 해당한다. 봄이 가까워지고 기온이 조금만 올라도 눈꽃은 어느 순간 자취를 감춘다. 추운 겨울에만 만날 수 있는 눈꽃을 만나러 가자. '창밖을 보라'는 캐럴에서도 알려주지 않았던가? 맑고 흰 눈이 새봄 빛 속에 사라지기 전에 이 추운 겨울을 마음껏 즐기라고.
끝없이 내리며 우릴 감싸온
거리 가득한 눈꽃 속에서
그대와 내 가슴에 조금씩
작은 추억을 그리네요
영원히 내 곁에 그대 있어요
- '눈의 꽃' 노랫말 (드라마 <미안하다 사랑한다> OST)
◉눈꽃 꽃말 - 눈꽃은 진짜 꽃이 아니어서 꽃말이 없답니다. 그래도 겨울의 낭만과 아름다움을 상징하겠지요.
◈전국 눈꽃 명소
- 무주 덕유산
- 태백 태백산
- 대관령 눈꽃축제
- 제주 한라산 1100고지, 윗세오름
- 평창 오대산, 발왕산
- 속초 설악산
- 청송 얼음골
*작가님, 독자님,
즐거운 겨울 보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