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절 따라 꽃멍 숲멍(가을) | 담양 메타세쿼이아 가로수길
여행을 좋아하는 우리 부부는 결혼 1주년이 되면 뉴질랜드 여행을 가기로 했다. 그렇지만 큰애가 허니문베이비로 태어나면서 1주년 해외여행은 물 건너갔다. 백일도 안 된 아기를 두고 어딜 갈 수 있겠는가.
그래도 다시 여행을 꿈꾸었다. 언제쯤이면 아이가 커서 같이 해외여행을 갈 수 있을까? 유치원에 다닐 쯤에는 같이 가까운 해외여행이라도 다녀오리라 마음먹었다. 그렇게 몇 년을 기다렸다. 그런데 큰애가 여섯 살 되던 해에 둘째가 태어났다. 이러다가 앞으로 또 몇 년 동안 기다려야 할 것 같았다. 첫째가 일곱 살이 되었을 때 큰맘 먹고 둘째를 장인장모님께 맡기고 짧게 홍콩으로 다녀왔다.
"OO아, 엄마야!"
"아빠도 왔어!"
"......"
여행에서 돌아오자마자 서둘러 둘째를 데리러 갔다. 그런데 둘째는 우리에게 다가오려다가 다시 외할아버지 뒤로 숨어버렸다. 그러곤 큰 울음을 터뜨렸다. 그 울음이 반가움인지, 서러움인지, 낯설음인지는 알 수 없었지만 미안한 마음이 컸다. 그래, 이제 다시는 너를 두고 가지 않을게.
여전히 둘째가 아직도 등에 업혀 다닐 때지만 가족 여행을 멀리 떠나고 싶었다. 기저귀와 젖병을 챙겨야 하는 시기라 해외는 여전히 힘들었다. 그래서 국내 안 가 본 곳에 가서 1박을 하기로 했다. 그래서 우리가 고른 여행지는 전라도 화순이었다. 화순에 있는 큰 리조트에 가기로 했다.
11월의 어느 주말에 우리 가족은 들뜬 기분으로 전라도로 향했다. 담양을 지나갈 즈음 너무 아름다운 가로수길을 만났다. 바로 메타세쿼이아길이었다. 초록색 싱그러운 모습을 사진으로 본 적이 있었는데, 그날엔 주황색으로 물든 나무가 길을 따라 큰 키를 뽐내며 줄지어 서 있었다.
몇몇 차량이 갓길에 주차하고 사진을 찍고 있었다. 우리도 차를 세우고 사진을 찍었다. 귀여운 꼬마인 첫째, 그리고 지금은 엄마보다 큰 둘째가 엄마에게 안겨있는 사진이 아직도 사진첩 속에 남아 있다. 그렇게 우리 가족에게 담양 메타세쿼이아숲길과 화순 여행은 아름다운 가을 추억으로 남아 있다.
그 뒤 몇 년이 흘러 둘째가 유치원생이 되었을 때 우리 가족은 담양을 또 방문했다. 그 사이 메타세쿼이아길은 전국적으로 유명한 관광지가 되어 있었다. 도로 일부 구간은 차량이 다니지 않는 걷기 길이 되어 있었고, 주변은 공원으로 정비되어 있었다. 뭔가 반갑기도 어색하기도 했다. 그래도 키 크고 잘 생긴 나무들은 여전했다. 그 길 입구에서 두 아이들과 사진을 남겼다. 이제는 유치원생인 둘째도 내 앞에 서 있다. 그런데 사진 속 표정을 보면 걷는 게 마냥 좋지는 않았나 보다. 이 모습마저도 나에게는 귀여웠고, 두 번째 담양 나들이 역시 소중한 추억으로 사진에 담겼다.
올해 봄에 우리 가족은 담양을 또 찾았다. 즐거운 마음으로 광주대구고속도로를 달렸다. 그런데 순창에 들어설 무렵 차에서 알 수 없는 경고음이 울리기 시작했다. 멈추지 않는 경고음에 비까지 내려 운전을 제대로 하기가 어려웠다. 어쩔 수 없이 순창 나들목으로 차를 몰고 나왔다. 가까운 차량 정비소에서 겨우 급한 불을 껐다. 여행의 흥도 깨질 만했지만 이제 성인이 된 아이들 덕분에 즐거운 여행을 이어갈 수 있었다.
차가 순창에서 담양으로 넘어갈 무렵 그 길이 나타났다. 봄비에 초록빛이 더 싱그러운 길이었다. 물기를 버금은 진한 연둣빛의 메타세쿼이아 나무들이 반겨주고 있었다. 아내와 나는 차에서 내려 연신 감탄했다. 그리고 예전에 어린 두 자녀를 데리고 지나가던 그때 기분으로 돌아갔다. 감성에 젖은 부모와 달리 두 자녀는 무덤덤하다. 두 번이나 같이 여행을 다녀왔지만 어릴 때라 그때 기억이 별로 나지 않는 모양이다. 우리 부부만 봄비 내리는 그 길에서 옛 추억에 잠겼다.
걷기 길 구간 옆에는 담양 메타프로방스라는 관광 표지판이 보인다. 프랑스의 프로방스 지역의 분위기가 나는 유럽풍의 테마 마을이 들어서 있다. 마을 안에는 식당, 카페, 펜션, 기념품 가게까지 있다. 그 사이 비도 그쳐서 우리는 거기서 밥도 먹고 산책도 하며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20년 사이 세 번을 방문하는 동안 메타세쿼이아 가로수길의 모습도, 우리 가족의 모습도 많이 달라졌다. 나무들도 아이들도 많이 자랐다. 계속 멋있게 자라고 있는 메타세쿼이아 나무도, 아이들도 고맙다. 그리고 이렇게 가족이 다시 담양에 올 수 있어서 감사하다. 앞으로 또 우리 가족이 함께 담양 메타세쿼이아길을 거니는 날이 오기를...
그는 참 이국적인 모습이다. 일단 키가 크다. 외모도 시원시원하다. 가을이면 반전 매력도 보여준다. 매력적인 그 모습을 보기 위해 많은 팬들이 몰린다. 담양에 가면 그를 만날 수 있다. 서울 하늘공원에, 경주 천년숲에서도 그를 만날 수 있다. 요즘에는 특히 대전 장태산에 그를 만나러 많은 사람들이 가을에 발길을 재촉한다. 아시다시피 그는 바로 메타세쿼이아나무이다.
메타세쿼이아는 긴 원추형의 모습이다. 그래서 멀리서 봐도 좌우 대칭과 균형감이 뛰어나다. 메타세쿼이아의 반전 매력은 침엽수임에도 가을에 아름다운 단풍과 낙엽을 볼 수 있다는 점이다. 메타세쿼이아와 모습이 비슷한 나무로 낙우송이 있다.
낙우송은 한자로 '떨어질 락(落)', '깃털 우(羽)'자를 쓴다. 뾰족한 침엽수 잎이 단풍이 드는 것도 신기한데, 떨어질 때도 마치 새의 깃털이 떨어지는 모습이다. 정말 정확하면서도 멋진 작명이다. 재미있는 점은 우리가 한자 이름으로 부르는 낙우송은 원산지가 아메리카대륙이고, 영어로 불리는 메타세쿼이아는 중국이 원산지라는 사실이다.
메타세쿼이아나무는 중생대 백악기시대부터 북반구에 널리 자생했다. 멸종된 지 약 1억 년이 넘은 것으로 추정되던 이 나무가 1940년대 초 중국 쓰촨성 깊은 산골에서 기적적으로 발견되었다. 그것도 살아있는 군락으로 말이다. 화석으로만 존재하던 종이 20세기에 살아있는 상태로 발견되어 '다시 살아 돌아온 나무', '여전히 살아 있는 화석 나무'로 불리기도 한다. 그래서 변치 않는 '영원한 친구'라는 꽃말도 잘 어울린다.
프랑스 작가 장 자크 루소는 숲속 산책을 즐겼다. 그는 숲을 거닐 때 행복감과 유대감을 느낄 수 있다고 했다. 철학자 니체에게도 숲속 산책은 사유와 영감의 핵심적인 원천이었다. 그의 주요 이론과 많은 주요 저서들이 산책 중에 떠오른 생각들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고 한다. 현대에 발표된 많은 연구 결과에서 실제로 숲속 산책의 효용성이 증명되기도 했다.
오늘은 우리 가족의 몸과 마음에 메타세쿼이아 숲이라는 보약을 선물해 주었다. 하늘을 향해 쭉쭉 뻗은 메타세쿼이아 나무처럼 몸과 마음도 곧게 펴진다. '영원한 친구'라는 꽃말처럼 메타세쿼이아 숲과 오래오래 친구로 남고 싶은 늦가을이다.
◉메타세쿼이아 꽃말: 영원한 친구, 위엄
◈전국 명소
- 담양 메타세쿼이아길/관방제림
- 대전 장태산자연휴양림
- 서울 하늘공원 메타세쿼이아길
- 대구 계명대 성서캠퍼스
- 진주 경상남도수목원
- 경주 천년숲정원
- 청주 청남대
- 구미 금오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