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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월재에 으악새 슬피 우니 • 억새

계절 따라 꽃멍 숲멍(가을) | 억새와 갈대 | 울산 간월재

by 새벽강

으악새를 아시나요?

축제는 대학 생활의 꽃이다. 그 모습은 많이 달라졌지만, 젊음의 열기는 예나 지금이나 여전하다. 그 시절 1학기에는 총학생회에서 주최하는 축제가, 2학기에는 단과대학별로 주최하는 축제가 열렸다.

그해 축제를 위해 노래패가 꾸려졌다. 각 과 1학년 신입생으로 구성된 노래패를 3학년 선배가 지도했다. 나도 노래패 일원으로 활동하게 되었다. 여러 과에서 모인 1학년 남녀 학생들이 축제 무대를 위해 파트를 나누어 연습을 했다. 그때는 뭘 모르던 때라서 그런지 긴장도 전혀 하지 않고 무대에 올라 노래를 힘차게 불렀다. 축제 무대에서 노래패로 활동한 경험은 신입생 시절의 잊을 수 없는 기억이다.


대학 축제 때 무대에 오른 또 다른 추억도 있다. 학과 대항으로 무대에 올라와서 노래를 맞히고 그 노래를 부르는 행사였던 걸로 기억한다. 우리 과에서는 1학년 남학생 5명이 무대로 올라갔다. 나름 멀끔하고 노래도 곧잘 해서 선배들이 올려 보낸 것이다. 이 중에는 대학가요제에도 참가한 친구도, 작곡을 하는 친구도 있어 우리는 자신감을 가지고 올라갔다.

"와, 잘 생겼다!"

과 선배들의 기대를 받으며 무대에 올랐다. 제 자식을 예뻐하는 고슴도치처럼 선배들은 열심히 응원했다. 짧은 인터뷰를 하고 바로 문제가 나왔다.


“아, 으악새 슬피 우니 가을인가요. …… 문제입니다. 이 노래 제목은 무엇일까요?”

분명 어디선가 들어 본 노래였다. 어릴 적부터 여러 번 들어보긴 했지만, 노래 제목을 아는 이는 다섯 명 중에 아무도 없었다. 또 으악새는 뭐지? 갑자기 꿀 먹은 것처럼 입도 뻥긋하지 못하고 그야말로 '광탈' 하고 말았다. 노래 한 곡도 불러보지 못하고 허무하게 무대를 내려왔다.


자리로 돌아오니 합창단 활동을 하는 선배가 알려주었다. 노래 제목은 '짝사랑'이고, 으악새는 진짜 새가 아니라 억새라고. 노래 운율에 맞추려고 저렇게 발음한 거라고 한다. 그 후로 방송에서 고복수의 ‘짝사랑(1936)’이 나올 때마다 그날 에피소드가 생각이 났다. (그런데 이번에 글을 쓰면서 찾아보니, 작사가가 뒷산에서 실제로 ‘으악으악’ 우는 새소리를 듣고 만들었다는 반전의 설도 있다.)


영남 알프스와 간월재 억새

어느 해부턴가 가을이 되면 억새가 눈에 들어왔다. 가을이 깊어질수록 억새와 갈대는 은빛 머리를 바람에 휘날리며 가을 정취를 더해 주었다. 꽃도 아니고 나무도 아니지만 바람이 부는 가을 풍경에서 억새와 갈대는 주연으로서 부족함이 없다. 특히 석양빛을 역광으로 받아 하얗게 빛나면서 일렁이는 모습은 감탄을 자아낸다.


몇 해 전 가을에 억새를 보러 울산 간월재에 다녀왔다. 간월재는 예전부터 억새가 가득한 만디(꼭대기)라는 뜻에서 '억새 만디'라고도 불렸다.

간월재에 오르는 코스는 네 가지이다. 그중에서 가장 난이도가 쉬운 코스인 이천리 코스(사슴농장 코스)를 선택했다. 가을 등산객 수에 비해 주차 공간이 매우 부족하다는 이야기를 듣고 아침 일찍 집을 나섰다. 그러나 도착해 보니 이미 주차할 곳이 별로 없었다. 겨우 주차를 하고 임도를 오르기 시작했다.


주차한 곳이 높은 위치였지만, 거기서부터 두 시간가량을 더 걸어 올라가야 했다. 하지만 올라갈수록 길은 평탄해지고, 등산의 수고로움은 전혀 아깝지 않을 정도의 풍경이 펼쳐져 있었다. 영남알프스라고 불리는 능선 위를 뒤덮은 갈대들은 장관이었다. 간월산과 신불산 사이 해발 900m의 평원이 '갈대의 바다'가 되어 출렁인다. 억새에 파묻혀 보는 풍경도 좋지만, 간월산 또는 신불산 방향으로 조금 더 높이 올라가서 억새 평원을 내려다보는 풍경도 일품이었다.

간월재 휴게소에서 먹는 컵라면이 별미라고 들었지만, 줄이 너무 길어 포기했다. 가장 경사가 급한 등산로인 3코스가 내려다보이는 길가에 자리 잡고 앉았다. 그런데 옆에 등산객 두 분이 우리에게 김밥을 나누어 주셨다. 하산하려면 배낭을 더 가볍게 해야 한다며 후식으로 귤까지 주신다. 거기에서 먹는 김밥과 귤 맛은 매우 특별했다. 배가 부르니 풍경도 더 여유롭다. 아름다운 억새와 바위를 배경으로 멀리 언양까지 눈에 들어온다. 그 급한 등산 코스에서 산악마라톤 하는 사람들을 감탄하며 구경하다가 천천히 가을 산을 내려왔다.


간월재 외에도 전국에는 억새 명소가 참 많다. 서울 하늘공원, 정선 민둥산, 창녕 화왕산, 합천 황매산, 밀양 사자평도 유명하다. 제주도 산굼부리를 비롯한 오름들의 억새, 순천만 등 바닷가 갈대밭도 빼놓을 수 없다.


가을에는 억새와 갈대를 만나러 가보자. 으악새가 구슬피 울고 있을지도 모르니...





갈대 / 신경림


언제부턴가 갈대는 속으로

조용히 울고 있었다.

그땐 어느 밤이었을 것이다. 갈대는

그의 온몸이 흔들리고 있는 것을 알았다.

바람도 달빛도 아닌 것.

갈대는 저를 흔드는 것이 제 조용한 울음인

것을 까맣게 몰랐다.

산다는 것은 속으로 이렇게

조용히 울고 있는 것이란 것을

그는 몰랐다.

-신경림, [문학예술](1956)

억새 꽃말: 친절

갈대 꽃말: 신의 믿음


전국 억새/갈대 명소


작가님 독자님

오늘도 감사합니다.

가을볕과 함께 좋은 하루 보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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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