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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울에도 수영하는 바다, 아말피 마리나 그란데

이탈리아 남부 여행기 2

by 새벽강

https://brunch.co.kr/@ethipia/40


알고 보면 '그란데' 아말피 두오모

포지타노를 지나 아말피로 향한다. 현재 4천 명 정도 거주하는 포지타노에 비해 아말피는 도시 규모가 더 크다. 높고 아름다운 절벽 길을 더 달린 버스는 어느새 조금씩 내려와 아말피 해변에서 멈춘다.

큰 바다라는 뜻의 아말피 ‘마리나 그란데(Marina Grande)’가 바로 옆이다. 하지만 일단 아말피 마을 안을 먼저 돌아보기로 한다.


아말피는 지중해의 대표적인 휴양지로 알려져 있지만, 고대 후기부터 중세에는 해상무역으로 엄청난 부를 쌓았던 도시라고 한다. 그런데 눈에 들어오는 풍경이나 규모를 보면 ‘도시’보다는 ‘마을’ 같다. 아마도 건물과 집들이 주변 자연환경과 조화롭게 어우러져서 그런 인상을 주나 보다.


나침반 발명가이자 항해사라고 알려진 플라비오 지오이아 동상

해변에서 마을로 들어가는 입구에 망토를 걸친 남자 동상이 있다. 13세기 후반 아말피 출신의 발명가이자 항해사 플라비오 지오이아(Flavio Gioia)이다. 그는 선원용 나침반을 발명하여 보급한 인물로 알려져 있는데, 실존 인물인지에 대해서는 의견이 분분하다. 아무튼 나침반의 발전이 아말피 상선들의 더 넓은 바다 진출과 도시의 번영에 크게 기여한 점은 분명하다.


마을 쪽으로 발길을 옮긴다. 그리 멀지 않아 중앙광장이 나타난다. 광장 왼편에는 분수가, 오른편에는 계단이 높은 성당이 있다. 아말피 성 안드레아 두오모이다. 안드레아 성인은 예수의 제자 중 한 명이자 베드로의 동생이다. 아말피가 번성하던 시기에 유해를 이곳으로 옮겨 오게 되었고, 지금도 그의 유골 일부가 있다고 한다.

다른 도시에서 워낙 큰 성당들을 많이 보았기에 외관이 그리 크게 느껴지지 않았다. 하지만 계단을 올라 성당 안으로 들어가 보니 실내가 '그란데 사이즈(!)'이다. 밝은 대리석과 금장으로 꾸며진 실내가 매우 화려하고 웅장하다. 과거 아말피가 얼마나 번성한 도시였는지를 짐작게 한다. 아말피 공화국은 해상무역을 통해 크게 번성한 중세 이탈리아의 4대 해상 세력(아말피 공화국, 피사 공화국, 제노바 공화국, 베네치아 공화국) 중 하나다.

해변에서 마을로 들어가는 입구(좌), 아말피 두오모 계단에서 내려다본 광장 풍경(가운데), 아말피 두오모(우)
실내가 크고 화려한 아말피 두오모


사 오지 못한 아말피의 특산품

박정현과 수현 등 비긴어게인 팀이 여름밤에 앉아서 노래했던 그 두오모 계단을 내려온다. 분수 옆에 역사가 오래된 카페가 노천 의자와 함께 기다린다. 한눈에 핫플레이스임을 알 수 있다. 이 카페를 비롯하여 광장 주위에 맛집 등 핫플레이스가 많다. 하지만 동네 구경부터 하고 싶어서 경사진 길을 따라 올라간다.


관광객들이 많이 찾는 길답게 여러 상점이 줄지어 서 있다. 아말피의 특산품은 밝은 색의 도자기라고 한다. 알록달록 화려한 도자기와 기념품에 눈길이 저절로 간다. 가장 많이 눈에 띄는 은 레몬, 오렌지, 석류 등 과일을 파는 상점이다. 말린 고추처럼 보이는 것들도 걸려 있는데 정확히 무엇인지는 모르겠다. 그리고 문 앞 매대마다 노란 레몬 사탕이 크고 작은 봉지에 담겨 있다. 레몬으로 만든 술인 레몬첼로도 여러 모양의 병에 담겨 눈길을 끈다. 이 지역의 특산품들이 뭔지 자연스럽게 알 수 있다.


도자기를 하나 사고 싶지만, 비싼 가격보다 한국까지 깨뜨리지 않고 가져갈 자신이 없어 포기한다. 날씬한 유리병에 담긴 레몬첼로도 역시 같은 이유로 포기했다. 결국 그림엽서 몇 장만 샀다. 직접 그린 그림을 인쇄한 엽서인데, 아말피 풍경과 포지타노 풍경이 주를 이룬다. 만약 도자기와 레몬첼로를 사 왔다면 멋진 기념품이 되었을까? 아니면 예쁜 쓰레기가 되었을까?


아말피 메인 거리 풍경

당나귀 분수에 동전 던지기

마을 안에는 피겨 같은 크기의 작은 조각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는 귀여운 분수가 있었다. 분수 안에는 동전이 많이 담겨 있길래 나도 주머니에서 이탈리아 동전을 하나 꺼내 던졌다. 다시 올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을 담아서. 그런데 여행을 다녀온 뒤에 이곳이 제법 유명한 아말피 '당나귀 분수'라는 걸 알게 되었다. 재미있는 것은 여기도 로마 트레비분수에서처럼 뒤돌아서 동전을 분수에 던지면 다시 올 수 있다고 한다. 그 사실을 몰랐던지라 트레비분수에서와는 달리 그냥 앞에서 퐁당 던져 넣고 왔다. 그렇다면 나는 다시 올 수 있는 걸까, 없는 걸까? 별 거 아닌 질문을 스스로 던져 놓고 씨익 웃고 있다.


골목길보다 조금 더 넓은 아말피의 메인스트리트를 계속 걷다 보니 너무 많이 올라온 것 같다. 이제는 광장으로 돌아가서 카페에서 에스프레소도 한 잔 마시고, 해변에도 가봐야 할 것 같다. 서둘러 내려오기 시작한다. 그런데 자동차가 서로 교행 하기 어려울 정도로 좁은 거리에 의외로 통행 차량은 많아서 빨리 걷기 쉽지 않다.

주위 속도에 맞추어 천천히 내려가다 보니 그 동네 집들과 주민들이 눈에 들어온다. 이웃들끼리 길에서 만나 인사하는 모습, 빨래가 걸려 있는 동네 집들을 구경하면서 내려왔다. 이런 집에 숙박하며 현지인처럼 골목길을 어슬렁거릴 수 있으면 참 좋겠다.

광장에 다 내려와서 보니 버스에 탑승할 시간까지 여유가 별로 없다. 포지타노에서 과일주스와 풍경 사진 사이에서 선택을 해야 했는데, 이번엔 에스프레소 커피와 아말피 해변 풍경 중에서 한 가지를 선택해야 하는 상황이다. 변함없이 나의 선택은 풍경이다.


겨울에도 수영하는 바다, 마리나 그란데

마리나 그란데 해변에는 1월에도 해수욕과 일광욕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아말피 마리나 그란데, 아까 엽서 속 풍경이 바로 눈앞에 펼쳐진다. 그냥 멍하게 보게 되는 아름다운 해변이다. 예전에 유행했던 표현 그대로 ‘안구 정화’가 된다고나 할까. 백사장은 하얀색 모래가 아니라 검은빛에 가깝다. 그런데 이름에 ‘그란데'라는 이름에 비해 그리 넓지는 않다. 바위 절벽으로 이어진 아말피 해안에서 상대적으로 큰 백사장이라는 것이지, 해운대나 경포대 같은 크기는 아니다. 물론 크기와 아름다움은 별개이지만...


백사장으로 향하니 사람들이 바닷가를 산책하고 있고, 한쪽에서는 일광욕 중이다. 심지어 수영하는 사람들까지 보인다. 다른 나라 관광객인지, 지역 주민인지 모르겠지만 한 가족이 물속에서 즐겁게 놀고 있다. 아빠와 자녀들이 물속에 몸을 다 담그고 있는데 표정이 전혀 추워 보이지 않는다. 지금이 북반구에서 가장 추운 1월 초가 맞나 싶다.


또 가보고 싶은 아말피 코스트

한국에는 지금 한파로 매우 춥다고 하는데 여기는 전혀 다른 날씨, 전혀 다른 세상이다. 이런 이국적인 풍경 속에 서 있다는 것이 신기하고 감사하다. 사실 이번 여행은 동행한 가족 없이 나 혼자 왔다. 출장이 아니라 여행으로 이렇게 장기간 집을 비운 적은 없다. 20여 년을 앞만 보고 달려온 나에게 아내가 허락해 준 선물 같은 여행이다. 아름답고 낯선 풍경 속을 혼자 다니고 있으니, 자유롭기도 하고 허전하기도 하고 여러 감정이 교차한다.


해변 바로 옆에는 아담한 항구가 붙어 있다. 카프리 섬을 비롯해 소렌토나 포지타노로 가는 배가 있는 아말피 항이다. 배들이 정박해 있는 항구 풍경이 여유롭다. 파란 하늘과 바다, 흰 구름 그리고 그림 같은 집들을 카메라에 담고 차에 오른다. 다음에는 다른 계절에 포지타노와 아말피에 여유 있게 올 수 있으면 좋겠다. 그때는 가족들과 여유롭게 나폴리에서 피자도 먹고, 카프리섬도 한 바퀴 돌아볼 수 있기를.


버스 옆자리에 앉은 아이가 불쑥 노란 레몬 사탕을 내민다. 덕분에 상큼하게 폼페이로 향한다. 포지타노와 아말피 해변은 노란 레몬 사탕과 파란 코발트빛 지중해 바다로 내 여행 앨범에 남았다.


죽기 전에 가 봐야 할 여행지 1위,

나에겐 또 가보고 싶은 곳인 포지타노와 아말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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