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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남애리 Jul 29. 2018

책읽기에 대한 강박관념

독서량에 대한 우려보다는 책을 읽을 여유가 필요하다

한국인들은 책을 잘 안 읽는다. 국민독서실태조사에 따르면, 작년도 절반 이상의 성인들은 공부에 필요한 참고서나 만화책을 제외하고 단 1권도 읽지 않았다. 1년에 책을 한 권 이상이라도 읽은 사람들은 평균적으로 14권 가량을 읽었다.


평균이라는 통계적 요소를 단순히 해석하자면 한마디로, 책을 읽는 사람은 책을 한달에 한 권 꼴로 읽고, 안읽는 사람은 아예 안본다는 것이다.


나는 이중에서 책을 1년에 한 권이라도 읽는 사람에 속했지만 최근 몇 년 동안 책을 거의 읽지 못했다. 좋아하는 책을 거의 외울 때까지 읽는 스토커 기질의 독서가라서 새로운 책을 안 읽는 것이 아니라, 심심할 때 책장에서 읽었던 책을 꺼내 읽는 행위조차 거의 안할 정도로 책을 안읽었다는 말이다. 퇴근하고 집에 돌아와서는 스트레스 받은 일에 대해서 전화로 떠들거나, 영화를 보고, 드라마를 보다 잠들었다. 주말에는 눈이 충혈될 때까지 미드 마라톤을 했다. 이런 생활에서 책이 끼어들 자리는 없었다.




내 삶의 질을 개선하고 무기력에서 빠져나오려고 월든 프로젝트를 시작한 뒤, 나는 자기 연민에 빠져서 전화기를 붙들고 하소연을 늘어놓거나, 스트레스 받은 일을 잊어버리려고 암체어에 반쯤 누워서 미드를 돌려보는 일을 그만두기로 했다. 대신 책을 읽거나 뭔가 생산적인 일을 하려고 했다.


뭐 당연한 얘기겠지만, 결과는 당연히 실패였다.


나는 스트레스가 주는 영향을 과소평가했던 것이다. 한 권의 책을 읽는 행위는 영상을 볼 때보다 더 많은 에너지와(손으로 책장을 넘겨야하지 않는가), 집중과(드라마 보면서는 밥을 먹을 수 있지만, 책을 한 손에 들고 밥을 제대로 먹기는 쉽지 않다), 생각을 요한다. 나는 읽으면서 생각을 해야 하며, 머리 속으로 저자와 대화를 하거나 저자가 들려주는 이야기를 생각을 통해 영상화한다.


스트레스 받아서 뇌에 과부하가 걸리기 일보직전인 사람이 그런 귀찮을 일을 할리가 없다. 나는 그냥 드러누워서 현실을 잊어버리는 일에 탐닉했다.


그리고 이따금씩, 아주 가끔씩 정신이 제대로 돌아오는 때가 오면, '아아, 책을 좀 읽어야 할 텐데'라고 생각하며 책을 구입하고, 안 읽고, 그것을 보면서 스트레스 받는 일을 반복했다.


나는 결국 모든 스트레스 요인을 놓아버리기로 했다. 그냥 아무것도 하지 않는 상태 그대로, 뭔가를 하려고 버둥대지 않고, 그때그때 하고 싶은 것을 하기로 했다. 식사를 하고, 잠을 자고, 운동을 하는 규칙적인 생활을 제외하고, 그냥 나를 놓아버렸다.


됐어, 책 따윈


책에 대한 강박관념도 놓아버렸다. 위의 통계에서처럼, 1년에 책을 한 권도 안읽는 나머지 절반의 한국인이 되기로 했다. 애초에 주말에 나초 봉지를 안고 미드 마라톤을 하는게 죄책감을 가질 일은 아니다. 나는 너무 건실하게 살아야 한다는, 바른 자세로 앉아 책을 읽으며 여유시간을 보내야 한다는 '국민학생' 식의 강박관념을 가지고 있었던 것은 아닌가.




통계에 따르면 한국인이 책을 읽지 않는 이유는 1. 책을 손에 들 여유조차 없을 정도로 너무 바쁘고 2. 책 읽을 시간에 스마트폰을 하거나 게임을 하는데다가 3. 다른 여가활동을 하는게 낫다고 생각하거나 그냥 책을 읽기 싫어서이다. 그 통계는 딱 나에 해당된다. 나는 책을 읽을 수 없을 정도로 여유가 없었고, 스마트폰으로 SNS하는 데 중독되었고, 책을 읽느니 딴 짓을 했다.


사실 책을 꼭 읽어야 할 이유는 없다. 정보를 원한다면 구글과 유튜브가 있고, 재미를 원한다면 텔레비전과 스트리밍 매체가 있다. 그 시간에 밖에 나가서 놀러다닐 수도 있고 여행을 갈 수도 있다. 당장 필요한 정보를 주기에 검색보다 너무 느리고 모호하며, 영상이 주는 총천연색 재미에 비하면 솔직히 책이라는 건 무미건조하다.


그런데도 왜 우리는 자꾸 '책을 읽어야 한다'는 강박관념에 사로잡혀 있는걸까. 책을 읽지도 않으면서, 읽고 싶은 마음도 없으면서, 왠지 책을 안읽으면 안 되니까 책을 읽어야 할 것 같다는 순환논리에 사로잡혀서 말이다. 나는 가끔씩 내가 '책을 읽어야 한다'라는 생각을 할 때면 '살려야 한다'라는 표어를 붙어놓고 사진을 찍었던 어떤 정치인이 생각난다.


나 역시도, 책을 읽어야 한다는 생각을 하고 책을 안 읽는 이유에 대해서 온갖 생각을 하면서, "책을 읽어야 한다고 생각하며 고뇌하는 나의 모습을 멋지게 연출했군. 이 정도 했으니, 나는 책을 좋아하는 사람 맞아."라고 스스로 만족했던 것은 아닐까.




 '보다 격렬하게 아무것도 안하기'를 한 뒤로, 나는 다시 조금씩 책을 읽기 시작했다. '책을 읽어야 한다'는 강박관념과 근거없는 자의식을 내려놓았다. 그냥 아무 생각없이 일상에 집중하기로 했고, 그러다 어느 순간 책이 읽고싶어졌다.


(자기계발서나 상식집같은 가벼운 책이 아닌) 책을 읽는다는 것은 소크라테스식 대화법와 같다. 책은 끊임없이 나에게 이의를 제기하고 등에처럼 왱왱거리며 귀찮게 군다. 책과의 대화를 통해서 나는 지식을 알게 되는 것이 아니라 논리적으로 받아들이게 되며, 새로운 생각을 배우는 것이 아니라 그 생각을 들여다볼 기회를 얻는다.


그런데 애초에 머리 속에 스트레스가 꽉 차있는 데다가 삶의 여유가 없는 사람에게,  미남자도 아닌 소크라테스처럼 생긴 사람이 와서 계속 약을 올리는게 달가울리가 없다. 나에게 이의를 제기하고 머리를 굴려 에너지를 쓰게 만드는 연애가 재미있을리가 없다. 마음 속에 바늘 하나 설 만한 여유공간이 없는 사람에게는, 하소연할 대상과 예쁘고 잘생긴 사람이 나오는 환상과, 현실도피가 필요하다.


내가 책을 읽고 싶어진 순간은, 스트레스가 잦아들고 마음에 여유가 생겨서 현실도피가 좀 지겨워졌을 때였다. 그 시기, 나는 이제 친구를 만나거나 전화를 걸어서 내가 얼마나 힘든지 하소연을 하는 것을 멈추고 타인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기 시작했다. 스트레스로 인한 폭식이 지겨워지기 시작했고 담백한 음식이 먹고싶어진 시기이기도 했다.

이제 '책을 읽어야 한다'가 아니라 '책이 읽고 싶어졌다'가 되었다.


책을 읽고 읽지 않는 행위 자체가 중요한게 아니다. 1년에 몇 권을 읽었는지가 중요한 게 아니었다. 얼마나 양질의 독서를 했는지 따윈 개념치 말아야 했다. 책벌레가 이제 책을 읽지도 않네, 본인이 책을 안 읽으면서 무슨 작가라고, 하는 자괴감섞인 반성도 밀어둬야 한다.


책을 읽지 않던 나에게 필요했던 것은

책을 읽을 수 있을 만큼, 책과 관계를 유지할 만큼의 정신적 여유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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