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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남애리 Jun 07. 2016

어떤 계획이든 밥이 먼저다

무기력에서 벗어나기 위한 밀 프렙(Meal Prep.)

뭘 하든지 간에 밥부터 든든하게 먹어야 한다는 어머니들의 말을 굳이 끌어다 대지 않더라도, 계획을 세우는 데에 식사는 중요한 부분을 차지한다. 다이어트 계획이라면 당연히 그럴 것이고, 요리를 하기 싫을 정도로 무기력증에 빠진 사람을 제자리로 돌리는 데에도 영양가는 무척이나 중요하다.  


그런데 여기서 문제는, 평소에 요리를 좋아하는 내가 프라이팬 하나도 손대기 싫을 정도로 입맛을 잃었다는 것이다. 무엇을 먹어도 맛이 없는 것은 둘째치고, 제대로 챙겨먹기 위해서 수고를 들여야 하는 시간 조차 의미없고 아깝게 느껴진다는 것이 진짜 문제였다. 그리하여 나는 소위 '밀 프렙(Meal Prep.)'을 시작하게 되었다.



유투브에서 밀프렙 영상을 만드는 사람들은 대개가 피트니스를 열심히 하는 사람들이나 채식주의자들인 듯 했다. 프로틴 쉐이크와 저탄수화물, 저지방식에 집중하거나 아예 채식식단으로 만들어진 밀프렙은 나와는 맞지 않았다. 나는 그저 매끼 챙겨먹기는 귀찮았지만, 아직 식사를 대체하는 알약 같은 게 개발되지 않았기 때문에 밀프렙을 하는 것 뿐이다. 다이어트를 하며 위염을 악화시킬 생각도 없었고, 단백질을 과도하게 섭취할 정도로 근력운동을 하고 싶지도 않았다.


나는 나에게 맞는 밀프렙을 위해서 원칙을 정했다.


5대 영양소가 골고루 갖춰질 것

간단히 데워먹을 수 있는 것

무엇보다도 맛이 있을 것


그렇게 정한 나의 식단은 아래와 같았다.  


1. 아침식사: 나는 오트밀을 무척 좋아하고, 아침에는 홍차 한잔을 꼭 마셔야 잠이 깨며(커피는 1년 전에 끊었다) 과일과 달걀이 빠지면 아침식사가 아니라고 생각한다.


오트밀이 좋은데 단 하나 귀찮은 것은 아침에 통에서 꺼내 그릇에 붓고 우유를 적정량 끼얹어서 부드러워질 때까지 전자레인지에 조리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찾아낸 것이 바로 '하룻밤 동안 불린 오트밀(Overnight Oatmel)'병이다. 이것과 함께 달걀스크램블을 만들어서 과일, 홍차와 함께 먹는것이 바로 나의 새로운 아침 식단이었다.  



달걀 스크램블은 귀찮지 않느냐고? 달걀 스크램블을 맛과 향이 변하지 않은 채 상하지 않고 일주일 치를 미리 만들어 놓을 수 있는 방법을 알게 된다면 그때는 그 방법을 쓰겠다. 그때까진 아침에 달걀스크램블 정도는 만드는 수고를 들일 수 밖에.  


2. 점심식사: 사실 처음에 점심까지 쭉 도시락을 싸놓을까 했다. 그런데 사실 귀찮기도 하고, 회사 사람들과 함께 자발적으로 어울리는 시간이 점심 시간밖에 없는데 그걸 없애면 고립될 것 같아서 그만두었다. 어쨌거나 한국인에게 점심시간은 업무의 연장이지 않던가.


3. 저녁식사: 기본적으로 밥과, 구운 야채, 닭가슴살이나 쇠고기를 포함한 도시락. 다행히도, 나는 좋아하는 음식이라면 같은 음식을 매일 매일 먹는 것에 대해 반감이 없는 사람이었다.


첫 주에 시도한 것은 오븐에 구운 닭가슴살과 흰 쌀밥, 그리고 검은 콩, 볶은 야채들이었는데, 사실 이게 내 식성을 생각하지 않고 급조한 것이라 양도 지나치게 많았고 무미건조한 맛이 났다. 나는 다양한 에쓰닉푸드를 좋아한다. 동남아시아 요리와 인도요리, 중동요리와 같이 향신료의 향이 듬뿍 나는 음식을 좋아하는 나로선 그냥 오븐에 구운 닭가슴살로 이뤄진 식단은 먹기 싫은 다이어트 식단이나 마찬가지였다.  


그래서 그 다음 주에는 닭가슴살로 탄두리치킨을 구워보았고, 그 다음 주에는 닭가슴살을 넣은 나시 고랭을 만들었다. 일주일 동안 거의 같은 음식을 먹는 것이니 무조건 맛있어야 한다. 그리고 무조건 내가좋아하는 걸로 해야만 한다. 탄두리 치킨을 만든 뒤 나는 식사시간이 기다려지기 시작했다. 나시 고랭은 원래 좋아하던 음식이라서 생각만해도 침이 넘어간다.  


인간의 가장 기본적인 즐거움이 바로 먹는 즐거움이 아닐까.  아무리 요리하기 귀찮거나 시간과 노력을 절약하려고 밀프렙을 하더라도, 포기해서는 안될 것이 하나 있다면 바로 자신의 취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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